▲주춤거리는 발걸음, 반쯤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봐 보살은 누군가에게 등이라도 떠밀려 나오는 모양이다.
임윤수
예정된 3시, 끝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조금만 더 참아주면 되는데 심통이라도 부리듯 빗방울이 떨어지니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과 우산을 꺼내드는 사람들로 주변이 어수선해 질 때 솥뚜껑이 등장한 거다.
두 번째 보는 비오는 날 솥뚜껑 비가 나리기 시작할 때 솥뚜껑을 머리 위로 든 보살을 보고 있으려니 기억 속에 있던 그 모습,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솥뚜껑을 뒤집어쓰고 집 안팎을 돌며 벌을 키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벌써 39년 전이나 되는 1968년 음력 7월 7일, 필자의 나이 9살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임종을 하시던 날에도 필자는 저런 솥뚜껑을 본 적이 있다. 여행을 다녀오다 갑자기 지병이 돋아 입원하였던 아버지는 들것에 들려 집으로 돌아오셨다.
지금이야 자동차가 쌩쌩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지만 그때만 해도 리어카 하나 다닐 만한 길이 못돼 거동이 불편한 환자라도 발생하면 들것을 만들어 운반해야만 했던 까마득한 시절이다.
아버지는 집에 도착하였고, 후텁지근하긴 했지만 비가 올만한 날씨는 아니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아버지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임종하셨을 때, 천둥번개가 치며 때 아니게 소나기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그때, 아직은 청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머니는 집에 와 계시던 어르신 중 누군가의 지시(?)로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집둘레를 돌며 잘못을 빌고, 비를 멈추게 해달라고 기원을 하던 걸 본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벌이라도 서듯 어머니가 솥뚜껑을 뒤집어쓰고 그렇게 집 안팎을 돌고 났을 때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멈췄었다.
한여름에 내릴 수 있는 소나기, 한 줄금 퍼붓고 지나가는 소나기였기에 그 시간만 내리고 그친 것일 수도 있지만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참 신기하다’며 수군대던 걸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9살이라는 어린나이였기에 기억하기 힘든 세세한 일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 제삿날에 비라도 오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그때 일들을 아픔처럼 꺼내곤 하니 또렷하게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