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 가을 대지에 흩뿌려진 듯 하더이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53] 둥근잎꿩의비름

등록 2007.10.17 13:39수정 2007.11.0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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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둥근잎꿩의비름 꽃모양 하나하나는 작은 별들을 닮았다.

둥근잎꿩의비름 꽃모양 하나하나는 작은 별들을 닮았다. ⓒ 김민수

▲ 둥근잎꿩의비름 꽃모양 하나하나는 작은 별들을 닮았다. ⓒ 김민수
 
작아서 행여나 찾는 손님 찾아오지 못할까 무리지어 피어나는 작은 꽃들이 있다. 꽃 중에서도 별을 닮은 형상을 가진 작은 꽃들이 그렇다. 그 중에서 단연 꿩의비름들이 올망졸망 피어있는 모습을 보면 모여있는 작은 꽃들 하나 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별 하나, 별 둘, 별 셋…. 그렇게 하늘의 별을 세다가 잠들어버린 그 어느 여름밤의 꿈처럼 다가온다.
 
어릴적 여름밤이면 모깃불을 놓고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이들끼리 키득거리며 이불을 가져다가 밤공기의 싸늘함을 피하여 하늘의 별을 세다 잠이 든다.
 
잠에서 깨어보면 방이었다. 부모님이 곤하게 잠든 자식들을 안아 방에 재웠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꿈 속에서 혹은 비몽사몽 간에 마당인 줄 알고 방안에 오줌을 싸기도 했다. 분명히 담벼락에 기대고 일을 본다고 봤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방에 있었다.
 
멍석이 아닌 원두막은 이슬을 피할 수 있었지만 새벽에는 어찌나 추운지 깨어 하늘을 보면 유성이 긴꼬리를 남기며 밤의 끝을 향해 달리고, 샛별이 흐릿흐릿 그 빛을 가물거릴 때면 하늘이 쪽빛으로 밝아오곤 했다. 풀잎마다 맺힌 이슬들을 뒤로 하고 빈 속에 참외나 오이를 따서 한 입 베어먹던 그 아삭거리는 향기는 고향의 향기요, 유년의 향기다.
 
a 둥근잎꿩의비름 손님이 있어 아름다움은 더욱 빛나고, 존재의 의미를 있게 한다.

둥근잎꿩의비름 손님이 있어 아름다움은 더욱 빛나고, 존재의 의미를 있게 한다. ⓒ 김민수

▲ 둥근잎꿩의비름 손님이 있어 아름다움은 더욱 빛나고, 존재의 의미를 있게 한다. ⓒ 김민수
 
둥근잎꿩의비름, 그는 습한 계곡의 바위 틈에서 자란다. 습한 것을 좋아한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척박한 바위틈에서 잘 자라니 척박한 것을 좋아한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는 것이다. 너무 물이 많고, 영양이 좋으면 키만 멀대같이 크고, 꽃이 허술하게 피어난다.
 
비단 꿩의비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 야생화는 그렇다. 야생의 상태에서는 그렇게도 예쁘다가 사람의 손길이 타면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너무 많은 유기질들을 몸에 모시기 때문이다.
 
적당한 갈증과 목마름과 부족함, 고난의 상징들과 같은 것이 그들을 더욱 화사하게 피워내고, 깊은 향기를 간직하고 피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고난은 어쩌면 피해야할 것들이 아니라 감사하면서 인내해야 하는 귀한 선물인 것이다.
 
a 둥근잎꿩의비름 이파리를 보면 둥글둥글, 그래서 둥근잎꿩의비름이다.

둥근잎꿩의비름 이파리를 보면 둥글둥글, 그래서 둥근잎꿩의비름이다. ⓒ 김민수

▲ 둥근잎꿩의비름 이파리를 보면 둥글둥글, 그래서 둥근잎꿩의비름이다. ⓒ 김민수
 
둥근잎꿩의비름, 그 이름에서 이미 그의 이파리가 둥글다는 것을 아셨을 것이다. 선인장을 닮은 다육질의 이파리, 그들은 물이 풍성할 때에는 이파리에 물을 저장했다가 부족할 때 저장해 둔 물을 조금씩 사용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가진것이 많다고 펑펑 쓰지 않고, 자기가 필요하다고 무작정 소유하지 않는다. '너무 많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가 그들의 삶의 지혜인 것이다. 다육질식물이 아닌 것들은 제 몸에 물이 많으면 스스로 물을 배출한다. 비 온 뒤 여름날 풀섶을 바라보면 이슬방울보다 더 영롱하게 규칙적으로 맺힌 물방울을 만날 수 있는데 그것이 모두 일액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다육질 식물은 제 몸에 있는 물을 빼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다육질 식물들은 이파리만으로도 충분히 또 다른 자기가 된다.
 
a 둥근잎꿩의비름 작은 별들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듯 하다.

둥근잎꿩의비름 작은 별들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듯 하다. ⓒ 김민수

▲ 둥근잎꿩의비름 작은 별들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듯 하다. ⓒ 김민수
 
둥근잎꿩의비름도 그렇다. 줄기를 잘라 흙에 잘 뭍어두면 그 줄기에서 뿌리가 나와 새로운 개체가 되고, 줄기가 아닌 이파리만 잘라서 뭍어두어도 뿌리를 내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개체가 된다. 다육질 식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선인장도 그렇다. 그냥 뚝 꺾어서 모래땅에 꼽아놓으면 또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가 되고, 때론 그냥 땅에 던져놓아도 그 몸 어디에선가 뿌리가 나와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 다육질이파리를 가진 식물들의 특징이다.
 
둥근잎꿩의비름을 본 아내가 홀딱 반했다. 우리 집에 가져다가 심었으면 하는 눈치, 작은 줄기 하나 정도 가져다 심으면 안 될까 하는 눈치, 저기 줄기가 부러진 것이 있는데 그건 괜찮지 않아 하며 동의를 구한다. 아니, 그렇게 줄기가 끊겨 그 곳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했다.
 
고백하건데 들꽃산행을 하다 너무 예뻐서 집으로 옮겨온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키운들 그들은 자연에서 만나는 것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이다. 난을 제대로 키우려면 게을러야 한단다. 지나친 관심이 그들을 부담스럽게 하는 것이다. 일년 걸러 아니 몇 년 걸러 만나게 되더라도 자생지에서 만나는 것들이 진짜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식물원이나 원예종을 만나면 밉기까지는 아니지만 친근감이 가지 않는다.
 
a 둥근잎꿩의비름 가을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어 가을대지를 비친다.

둥근잎꿩의비름 가을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어 가을대지를 비친다. ⓒ 김민수

▲ 둥근잎꿩의비름 가을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어 가을대지를 비친다. ⓒ 김민수
 
별 중에서 보랏빛을 간직한 별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별빛은 무슨 색이라고 단정짓기가 어렵다. 작은 별들이 옹기종기 바위에 기대어 앉아있고, 그 바위 아래로는 붉게 물든 단풍잎을 띄운 소가 조용하게 그들을 바라본다.
 
소로 흘러오는 물줄기들은 음악이 되어 가을 숲을 흐르고, 그 소리에 장단을 맞추듯 가을 바람이 나뭇잎들을 흔들고 지나간다. 그때 한껏 물올랐던 나뭇잎들이 바람을 타고 하나 둘 떨어진다. 오선지 위에 그려지는 음표를 닮았다. 아, 자연이 어우러져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마음을 떨리게 하듯 감동으로 밀려온다. 이것이 자연의 음악이구나 싶다.
 
하늘의 별, 가을 대지에 흩뿌려진 듯 하더이다.
흩뿌려진 별들 옹기종기 모여 빛나는 듯 하더이다.
하늘의 뜻 땅에서 이뤄지듯, 인간의 몸 입고 화육하듯 하더이다.
하늘의 별, 가을 대지에 흩뿌려진 듯 하더이다.
 
<졸시-꿩의비름>
2007.10.17 13:39ⓒ 2007 OhmyNews
#둥근잎꿩의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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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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