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에서만 감동을 찾아 내는 <조선만평>

그 신문 만평은 원래 그래?...비판의 잣대는 동일해야

등록 2007.10.17 23:40수정 2007.10.1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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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시사만평의 묘미는 날카로운 비평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평에 등장하는 인물치고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부고란만 아니면 어디든 실리길 원한다는 정치인들의 경우에도 만평의 소재가 되는 건 그다지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다. 갖은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이명박 후보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많이 쓰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지만 유독 만평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그림자조차 찾아 보기 힘든 게 다 그런 이유다. 기사는 우호적으로 써 줄 수 있어도 만평을 통해 특정 정치인을 노골적으로 띄워 주는 건 만평의 본령을 해치는 일이라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이 쉽지 않은 일을 <조선일보>가 기어코 해 낸 적이 있다. 지난 8월 21일자 <조선일보>의 만평(☞보러가기)에 등장하는 박근혜 의원의 모습을 보자. 경선에서 패배한 뒤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하는 박근혜 의원의 모습을 그렸는데 만평만 보면 없는 감동도 '뭉클' 피어 오를 것 같다.

 

이 만평은 겉으로는 박근혜 후보를 치켜 올리고, 속으로는 박근혜 후보로 하여금 경선 승복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두 가지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그 날 <조선일보> 독자들은 풍자와 비판 대신 감동을 담뿍 담은 만평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지난 15일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끝났다. 정동영 후보가 대선후보로 확정되고 손학규 후보와 이해찬 후보는 승복을 다짐했다. 경선 과정에 날선 공방이 없지 않았지만 마무리는 제대로 한 셈이다.

 

<한나라당> 경선 직후, 경선 결과에 대해 승복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근혜 의원을 "온 국민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인물로 치켜 세운 <조선일보> 만평이라면 손학규 후보와 이해찬 후보의 경선 승복에 대해서도 덕담 한 마디 할 줄 알았다. 손학규 후보는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당적까지 바꾸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경선에서 패하고도 결과에 승복했다면 박근혜 의원에게 쏟아진 찬사를 그대로 옮겨다 주어도 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6일자 <조선일보> 만평(☞보러가기)은 '선거인단, 휴대전화, 여론조사'에서 모두 '꼴찌'를 한 '별 볼일 없는 친노 단일화 후보'를 조롱하는데 그쳤다. 물론 비슷한 소재라고 해서 같은 그림을 그려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같은 결과물을 두고 한 쪽은 '온 국민 가슴에' 감동을 주는 것으로, 또 다른 한 쪽은 마냥 조롱의 대상이 되는 건 아무래도 공평하지 못하다. 기계적인 중립은 아니더라도 비판의 잣대는 같아야 한다.

 

비판의 대상이 어떤 일을 해도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 비판은 더 이상 아프지도, 귀 담아 들을 꺼리도 되지 못한다. <조선일보> 만평에 대한 분석 기사를 쓰면 주변에서 이런 반응이 나온다.

 

"그 신문 만평은 으레 그래. 신경 꺼."

 

노무현 정부와 '대통합민주신당' 역시 <조선일보> 만평에 대해 진작에 신경 끄고 지내는 건 아닐까? 필자 역시 대선 기간 중 신문만평 분석 작업에 <조선일보> 만평은 빼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 해 봐야겠다. 제일 많이 팔리는 신문의 만평이면 뭘 해. 맨날 똑 같은 걸.

2007.10.17 23:40ⓒ 2007 OhmyNews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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