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하나가 맺어준 인연

등록 2007.10.22 16:18수정 2007.10.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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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돌멩이에 깨진 차 유리창 사진만으로 무엇을 찍은 사진인지 식별하기 어려울까? 돌멩이가 날아와 승용차 뒤 유리를 깬 것이다. 사진 오른쪽 아래 구멍이 나 있고 유리창 전체가 작은 알갱이로 결합돼 있다. 예술 작품(?) 같기도 하다. 검정색 부분은 광고성 그림이라서 먹칠을 좀 했다.

돌멩이에 깨진 차 유리창 사진만으로 무엇을 찍은 사진인지 식별하기 어려울까? 돌멩이가 날아와 승용차 뒤 유리를 깬 것이다. 사진 오른쪽 아래 구멍이 나 있고 유리창 전체가 작은 알갱이로 결합돼 있다. 예술 작품(?) 같기도 하다. 검정색 부분은 광고성 그림이라서 먹칠을 좀 했다. ⓒ 박병춘


지난 일요일 오후, 대전 인근 야외 나들이에 나섰다. 정해진 공간에 주차를 하고 볼 일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OOOO 차주 되시나요?”
“네에, 그렇습니다만….”
“아이쿠! 죄송합니다. 제 아들 녀석 둘이 돌 장난을 치다가 그만 사장님 차량에 돌이 날아가서 뒷문 유리창이 다 깨졌습니다. 죄송합니다!”
“네에?”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일인데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헐레벌떡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여섯 살, 여덟 살 가량의 어린이와 부모가 내 차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a 돌멩이에 깨진 자동차 유리창  작은 알갱이가 모인 예술 작품같다.

돌멩이에 깨진 자동차 유리창 작은 알갱이가 모인 예술 작품같다. ⓒ 박병춘


물론 내 차 유리창은 본래 모습보다 훨씬 찬란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처럼 작은 알갱이들이 용케도 서로 달라붙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허어, 참! 저는 전북 익산에 사는데요. 오늘 제 아들 녀석 생일 맞아 놀러왔는데, 애들끼리 돌 장난을 하다가 이렇게 되었네요. 야, 이 녀석아! 얼른 죄송하다고 말씀 드려!”
“아이구, 이거 제 잘못입니다. 제 차가 여기 있어서 그런 거죠, 뭐.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사람 안 다치고 차만 다친 게 큰 다행입니다. 꼬마야~ 아저씨 괜찮으니까 다음부터 돌 장난하는 거 조심하고 생일 축하해!”


‘으이구, 이런 위선이 어딨나. 발등을 밟은 사람을 탓하기 전에 밟혀서 죄송하다고 하듯 지가 무슨 영국 신사라도 된다고 주차한 게 잘못이라고까지 하나? 뭔가 딱부러진 푸념 한 마디도 못하고 생일 축하까지 하고 그래. 일요일인 데다 유리창 고칠 데도 없을 거고, 귀가하다가 유리창이라도 무너져 내려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려고!’

본래 가진 내 악성을 숨기고 겉으로만 영국 신사처럼 차분하게 사건을 수습했다. 벌어진 일에 대해 서로 일진이 사나운 탓으로 돌렸고, 명함도 교환했다. 공업사를 운영하는 선배에게 유리창 가격을 물어 수리비 12만원도 받았다. 물론 당장 운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일요일이라서 마땅히 수리할 곳도 없고 어차피 선배가 운영하는 공업사에 차를 맡기기로 했으니 깨진 유리창을 달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금방이라도 뒤 유리창이 날아갈 것 같은 불안감에 평소보다 절반으로 속도를 줄였다. 뭔가 불안해 할 운전자들을 위해 가끔은 비상등도 켰다. 내 차를 추월하는 운전자들이 나에게 냉소나 조소를 보내는 듯했고, 혹은 미친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뒷골이 땡겼다. 수많은 운전자들이 깨진 유리창을 달고 가는 내 차를 보고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을까?


“세상 참 좁다, 좁아!”

누가 그랬더라? 몇 사람만 건너면 다 알게 되는 게 대한민국 사람 관계라고.

월요일 아침, 꼬마의 엄마가 내게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제 차 유리 때문에 마음 고생 많으셨죠? 어떻게 차 수리는 하셨어요?”
“아, 예에. 잠시 후에 맡기려고 합니다. 저보다도 아이랑 부모님께서 마음 고생 많으셨죠. 괜히 예정에 없던 지출도 하셨고요.”

“아니에요. 여러 모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 아이에게 들어 놓은 보험이 있어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네요. 차 수리하시면 견적서와 영수증 좀 받아주세요. 그리고 제 동생이 손해보험 관련 담당자인데 전화 드릴 겁니다. 제 동생도 대전에 살거든요.”

“아, 예에. 잘 알겠습니다.”

잠시 후 낯선 전화번호가 떴다. 꼬마 엄마의 친동생이었다. 악간의 사무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차 수리를 마치면 내가 근무하는 OO고등학교에 내 차를 갖다 준다고 했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리고 말이 이어졌다.

“아니, OO고등학교에 근무하세요?
“네.”
“저, 그 학교 졸업생인데요?”
“네에? 몇 회 졸업생인가요?”
“16회 졸업생인데요.”
“하하하, 제가 그때 우리 학교에 부임했지요. 세상에 이런 인연도 있군요.”

그리고 누구에서 누구로, 거기서 거기로, 어느 모임에서 어느 모임으로 연줄처럼 사람 관계가 엮어졌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야외 주차장에 내 차 → 형제 꼬마 둘이 돌멩이 장난 → 내 차 뒷유리 파손 → 수리(손해보험 처리) → 전북 익산에 사는 꼬마 엄마 남동생이 대전에 살고 있음 → 손해보험업을 하고 있는 그 남동생이 내가 근무하는 고교 졸업생 → 줄줄이 사탕 연줄연줄 인간관계 쏟아짐 → (며칠 후 술자리 예정!)

그렇다. ‘북경에서 나비가 날면 캘리포니아에 지진이 인다’는 나비효과가 과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차에 이름 모를 돌멩이 하나가 날자 소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악연도 필연도 다 인연 아닌가.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어디서 무엇을 하든 사람 관계 함부로 할 일 아니다. 결국 다 소중한 인연이다.

'세상 참 좁다, 좁아~!'

a 말끔하게 수리된 유리창 수리를 마친 자동차 뒤 유리창.

말끔하게 수리된 유리창 수리를 마친 자동차 뒤 유리창. ⓒ 박병춘


#자동차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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