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거주 외국인 지원 조례'인가

조화로운 공존을 위협하는 거주외국인 조례 제정

등록 2007.10.23 09:46수정 2007.10.2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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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100만 시대, '다문화' 사회의 빛과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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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도서관 부천 도당동 강남시장에 위치한 이주노동자와 지역주민을 위한 작은 책방, 모두가 행복한 조화로움을 소망한다.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 꼬마도서관 부천 도당동 강남시장에 위치한 이주노동자와 지역주민을 위한 작은 책방, 모두가 행복한 조화로움을 소망한다.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외국인 100만 시대 구호가 어느새 익숙해졌다. 미디어는 연일 ‘다문화’를 외치고 국제결혼 등으로 한국 사회에 안착해 ‘모범적인 구성원’이 된 외국인을 소개하며 칭송하는 프로그램을 심심치 않게 목도한다. 곳곳에서 외국인과 함께 하는 다문화축제가 열리고, 이제 우리는 발품만 조금 팔면 가까이에서 열리는 축제를 찾아 아시아 각국의 다채로운 문화를 즐길 수 있으며 이미 우리 곁에 자리 잡온 ‘아시아’를 체감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전히 미등록노동자 단속이 횡행하고 외국인이 밀집해 있는 지역의 범죄율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며 슬럼화를 우려하는 등, 이제 막 외국인과 함께 살기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 사회에는 극명한 빛과 그늘이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쨌거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좋든 싫든 외국인은 이제 그야말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우리의 이웃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지혜를 발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행정자치부 '거주 외국인 지원 표준 조례안'의 의미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상을 반영하듯, 2006년 10월 31일 행정자치부는 지자체가 거주 이주민에 대한 지원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거주외국인 지원 표준조례안’(이하 표준조례안)을 마련하여 각 지자체에 시달하였다.


법령이나 다른 조례로 제한하지 않는 한 이주민도 주민과 동일하게 지자체의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각종 행정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발표된 ‘표준조례안’은 그러나 지원대상을 명시한 제5조에서 ‘다만, '출입국관리법'등에 의하여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법적지위를 가지지 아니한 외국인은 제외한다’라는 단서 조항을 통해, 전체 이주민의 절반에 달하는 미등록이주민에 대한 지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표준조례안’ 시달 1년이 되어가는 현재 시점에서 이미 많은 지자체들이 조례를 제정했거나 의회 상정을 준비중이다. 그러나 ‘표준조례안’이 한정하고 있는 5조의 지원대상에 대해 각 지자체의 이주노동자지원단체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지자체는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에 초점을 두고 규정된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을 상위법으로 표방한 채 ‘표준조례안’의 독소조항을 고스란히 담아 제정을 강행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시흥시, 양주시, 수원시, 성남시, 평택시, 구리시, 군포시, 하남시, 이천시, 안양시, 광명시, 안산시 등이 거주 외국인 지원 조례를 제정했으며, 전국적으로는 이미 60여 곳의 지자체가 조례를 마련했다.

 

이 중 목포시와 천안시, 안산시와 대구광역시 달서구만이 그나마 단서조항을 삭제하거나 기존 단서조항에 다시 긴급구호와 ‘불법’체류 해소 목적 혹은 인도적 차원 등의 예외조항을 첨가하는 형식으로 그 동안 수행해왔던 활동의 명맥 유지를 위한 돌파구를 겨우 열어놓은 형편이다.


이는 중앙 하달식 조례안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대다수 지자체가 지역 자체의 거주 외국인 현황에 근거한 지원 필요성을 고려하고 외국인 지원을 수행해 온 민간 단체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현실적이고도 합리적인 조례를 제정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버린 행정편의적 발상이다. 결국 비현실적이고도 비인도적인 전국 지자체의 일률적 조례 제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차별없는 조례 제정의 근거와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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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는 이주민지원 조례 제정 촉구 기자회견 2007년 10월 18일, 부천 시청앞에서 27개 시민사회단체의 연명으로 진행되었다.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 차별없는 이주민지원 조례 제정 촉구 기자회견 2007년 10월 18일, 부천 시청앞에서 27개 시민사회단체의 연명으로 진행되었다.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한편 부천시에서도 지난 10월 16일 개회한 임시의회에 ‘부천시 거주외국인 지원 조례안’(이하 부천시조례안)을 상정하고, 22일 부천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 상임위원회에서 시에서 발의한 안이 통과되었다. 부천시 역시 미등록이주민을 전면 배제하는 내용으로 지원대상을 ‘다만,'출입국관리법'등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자’(제5조)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부천시조례안’을 검토한 부천의 강호정 변호사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는 조례안이 담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은 의견서를 보내왔다. 뿐만 아니라 거주 외국인의 급격한 증대에 따라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교육인적자원부, 노동부, 문화관광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이 이미 거주 외국인을 지원하고 포용하려는 정책을 다수 내놓고 있으며, 이와 같은 흐름은 체류 형태를 문제 삼아 차별적 요소를 도입하는 방식이 아닌 인도적 차원의 인권보장을 지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현실에 대해 높은 장악력과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조례안이 행자부 지침이라는 이유로 그대로 제정된 것은, 체류 형태와 관계없이 인도적이고 긴급한 지원을 수행해왔던 기존의 거주 외국인 관련 행정을 오히려 위축시키고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치명적으로 퇴보시킬 수 있는 비현실적인 탁상행정의 결정판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조례에 근거한 거주외국인 지원, 그리고 ‘불법’이라는 주홍글씨


그러나 부천시는 외국인과 더불어 조화로운 지역사회의 초석이 될 수 있는 조례 제정을 졸속 처리함으로써, 향후 거주외국인 지원 행정에 있어 적지 않은 혼란과 왜곡된 시정 수행을 자초했다.


미등록체류자인 부모 아래 태어나는 어린아이들조차 ‘불법’으로 몰려 최소한의 인도적 의료 지원에서 배제될 수 있으며, 학교장 재량에 따라 학령기가 되면 입학이 가능했던 의무교육 역시 조례에 근거하여 얼마든지 문제 삼을 수 있다. 선구제 후조치 원칙에 따라 미등록노동자가 체불임금과 퇴직금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던 노동부의 권리구제 역시 급속히 무력화될 우려가 있다.


이와 같이 미등록체류자는 그나마 기존에 누렸던 최소한의 긴급 구호에서조차 제외될 가능성이 농후하며,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인 이러한 처사는 지역주민의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 고조에도 영향을 미칠는지 모른다.

 

‘불법’체류자를 전면 배제하는 지자체의 행정이 조례의 급물살을 타고 가속화될 경우, 최악의 경우 부천시에 소재한 영세업체가 공동화되고 지역 경제의 근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단지 ‘불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자체가 그들에게 찍어누른 ‘주홍글씨’는 더욱 커다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자명하다.


이렇듯 인간의 삶과 사회적 관계를 규율하는 법제도는 현실을 왜곡하거나 과잉이 될 경우 이해당사자뿐 아니라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기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는 분명 사회를 조화롭게 운영하기 위해 만든 도구의 하나일 뿐이며,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논의를 통해 합의한 내용으로 제정되고 또 개정되어야 하는 사회적 구성물에 불과하다.

 

게다가 명확히 상위법으로 볼 수도 없는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과 지역행정과 직접 연관이 없는 ‘출입국관리법’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며 보편 인권의 함의를 부정하는 조례 제정의 근거는 오로지 편의를 위한 일방적인 행정 처리에 불과할 뿐이다.


행정자치부의 ‘표준조례안’ 시달 1년을 넘기며 각 지자체가 상정한 ‘거주외국인조례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 이는 비단 이주노동자지원단체와 수십 만 미등록체류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우리 사회가 더욱 조화로운 다문화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기의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강호정 변호사 의견서 요지(부분 발췌 및 재구성)
▲ 부천시조례안 제5조 단서의 규정을 두지 않을 경우 위 조례가 상위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5조 단서의 규정을 둘 경우 헌법 및 관련 법률의 각 해당조항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 할 것임 ▲ 목포시는 제5조 단서와 같은 규정을 두지 않은 조례를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고, 천안시, 대구광역시 달서구, 안산시 등도 위 조례안 제5조 단서와 같은 규정을 둘 경우의 문제점을 고려하여 그 단서에 다시 단서 내지 예외조항을 두는 편법적 내지 기형적인 입법을 한 것으로 짐작됨{한편 위 조례안 제5조 단서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는 울산, 대전, 용인시 등도 그 문제점을 뒤늦게 인식하고 각 조례의 개정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위 조례안 제5조 단서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는 그 밖의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그 문제점을 인식한다면 역시 각 조례를 개정할 것이 예상됨} ▲ 결국 부천시조례를 제정함에 있어서는 위 조례안 제5조 단서와 같은 규정을 두지 말아야 할 것은 물론 천안시, 대구광역시 달서구, 안산시 등의 경우와 같은 편법적 내지 기형적인 입법도 할 것이 아니라 목포시의 경우와 같이 위 조례안 제5조 단서와 같은 규정을 두지 않는 형태의 조례제정이 가장 바람직할 것임.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정정훈 변호사 의견서 요지(부분 발췌 및 재구성)

▲  ‘출입국관리법’은 법의 기본 목적 및 성격상 지원 조례의 상위법이 될 수 없으며,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이 상위법이 될 수 있는지가 문제됨(행정자치부의 표준조례안이 지자체에 시달된 2006년 10월은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이전이며, 표준조례안 제정 이전에도 일부 지자체는 외국인 지원 조례를 제정한 바 있음) ▲ 행자부 편람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일 뿐이며, 조례에서 불법체류자에 대한 지원을 명시적으로 배제할 경우 민간단체를 통한 ‘불법체류자’ 지원과 ‘불법체류자’를 지원하는 민간단체에 대한 지자체의 지원이 충돌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등의 혼선이 야기될 수도 있음. ▲ 원칙적으로 체류 자격 문제를 제외하고 불법체류자에 대한 지자체의 지원이 법령과 충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정하기는 어려움. 설사 불법체류자에 대한 지원이 법령과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내용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제3조의 규정을 통하여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지원 사업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며, 지원 대상에서 불법체류자를 원칙적으로 제한할 필요는 전혀 없음.(이런 관점에서 안산시 조례의 규정도 매우 미흡한 것임)

중앙정부 각 부처별 미등록체류자 지원 현황
▲ 보건복지부(미등록노동자 대상 최대 1000만원까지 무료진료 혜택, 미등록가정 영유아 7세까지 국가필수예방접종 무료 지원) ▲ 교육부(미등록가정 자녀에 대한 의무교육) ▲ 노동부(미등록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노동법 적용, 노동청을 통한 미등록노동자 권리구제 및 지원활동) ▲ 여성가족부(결혼이민자 지원 센타, 1366콜센타 운영 시 불법체류 해소를 위한 지원, 상담지원) ▲ 문화관광부(각종 문화 활동 지원 시 등록․미등록 불문 지원) ▲ 법무부(법률구조공단을 통한 무료법률상담 및 무료법률구조) 

덧붙이는 글 | 아시아인권문화연대는 부천에서 활동하는 이주노동자지원단체 및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하여, '부천시거주외국인지원조례'와 관련한 긴급 공동행동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민간단체의 강력한 항의와 '차별없는 조례 제정' 촉구에도 불구하고, 10월 22일 부천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상임위원회에서는 시에서 발의한 조례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볼 때 '거주외국인지원조례'와 관련한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오마이뉴스 독자들과 함께 이 문제를 고민하고자 합니다.

2007.10.23 09:46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아시아인권문화연대는 부천에서 활동하는 이주노동자지원단체 및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하여, '부천시거주외국인지원조례'와 관련한 긴급 공동행동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민간단체의 강력한 항의와 '차별없는 조례 제정' 촉구에도 불구하고, 10월 22일 부천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상임위원회에서는 시에서 발의한 조례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볼 때 '거주외국인지원조례'와 관련한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오마이뉴스 독자들과 함께 이 문제를 고민하고자 합니다.
#거주외국인조례 #부천시의회 #행정자치부 #미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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