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 '장영실의 날', 장영실은 없다

위대한 과학선현 장영실을 홀대하는 대한민국

등록 2007.10.26 10:08수정 2007.10.2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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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영정 호서대학교 총장실에 있는 장영실 영정. 아산장씨 평균 얼굴을 추출하여 최근 그렸다고 한다. ⓒ 호서대학교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는 누구일까?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세종시대의 장영실을 꼽는다. 장영실은 부산 동래현 출신의 노비지만 인재임을 알아챈 태종이 발탁했고 세종이 정4품 호군까지 올려놓았다.

그는 자격루는 물론 대·소간의(大小簡儀), 휴대용 해시계 현주일구(懸珠日晷)와 천평(天平)일구, 고정된 정남(定南)일구, 앙부(仰釜)일구, 주야(晝夜) 겸용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圭表) 등을 만든 위대한 과학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사)과학선현 장영실기념사업회(www.jangyoungsil.or.kr)를 만들고, 매년 10월 26일을 장영실의 날로 정하여 행사를 하며, 장영실과학상을 주고 동상을 세우는 등 최고의 과학자임을 드러내기에 애를 쓴다. 장영실기념사업회말고는 현재 우리나라는 장영실을 얼마나 기리고 있을까?

우리는 이를 확인하고자 몇 군데 답사를 하고, 문헌을 확인한다. 맨 먼저 지난 8월 여주의 세종영릉을 방문했다. 이곳에는 장영실이 만든 각종 과학기구를 복원 전시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부터 실망을 안아야 했다.

먼저 오목해시계(앙부일구:仰釜日晷)를 보자. 세종실록에 보면 글자를 모르는 백성을 위해 12지신 그림을 그려 넣었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여기엔 그림은 없다. 나중에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 덕수궁 오목해시계, 서울 홍릉 세종대왕기념관의 오목해시계, 아산 호서대학교의 오목해시계도 역시 그림은 없다. 무엇을 보고 복원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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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해시계 세종영릉에 복원해놓은 오목해시계(앙부일구). 세종실록에 글씨를 모르는 백성을 위해 12지신 그림을 그려 넣었다고 했지만 여기엔 보이지 않는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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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일구에 댄 쇳조각 세종영릉에 복원해놓은 정남일구 아래 쪽에 고정하려 했는지 쇳조각을 대어놓았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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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시보장치 없는 자격루 세종영릉에 복원한 자격루. 자격루의 중요장치인 자동시보장치가 없다. ⓒ 김영조



앙부일구만이 아니었다. 해시계의 하나인 정남일구에도 큰 흠이 보인다. 아래쪽에 고정하려 한 것으로 보이는 쇳조각이 붙어 있다. 복원한 것과 전혀 다른 것으로 눈에 띄게 쇳조각을 붙인 것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문화재에 대한 감각이 이렇게 없단 말인가?


최초의 자명종 시계 자격루는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원래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자동시보장치가 달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 복원한 것은 인형이 나와 시간을 알려주는 자동시보장치는 생략하고, 그저 파수호, 수수호, 그리고 부전 등 시계장치만 있다. 자격루는 자동시보장치가 위대한 것인데 정작 중요한 것은 빼놓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천문∙과학기구 복원이 이 지경인데 다른 것들은 어떨까? 먼저 동래현이 있던 부산 동래구와 부산시에 확인을 해본다. 동래구 축제에 장영실 이름을 단 학생 과학체험 행사만 있을 뿐 그 어디에도 행사나 시설은 없다. 그런데 다행히 아산시가 장영실을 아산시 인물로 정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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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아산역 앞에 방치된 장영실 동상 관리하지 않고 방치해 공사장 안에 외롭게 서있는 장영실 동상 ⓒ 김영조



먼저 지난 10월 중순 천안아산역 앞에 동상이 있다 하여 달려가 봤다. 그런데 이 어찌 된 일인가? 공사장 안쪽에 온통 건축 자재들 속에 묻혀 있다. 물론 공사 이전에도 방치되어 있었다. 그렇게 장영실 선현은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움 속에 서 있다. 동상 옆에는 장영실상을 세운 내력이 적혀 있다. 하지만 온통 한자 투성이여서 읽기 거북스럽다.

아산시 문화관광과에 확인해보았더니 아는 사람이 없다. 분명히 장영실기념사업회와 아산시가 공동 건립한 것으로 쓰여있는데 모른단다. 이런 난감할 데가 있나? 장영실기념사업회에 확인하니 아산시장실에 관리 소홀을 여러 번 항의했지만 묵묵부답이라고 하소연한다.

아산시는 현재 아산시 인물을 장영실로 선정하고 장영실과학관을 민자사업으로 건립하려고 제안서를 받고 있다는 말을 아산시 시설경영과 담당자에게 들었지만 동상 하나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뭘 기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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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연구소 호서대학교(아산)에 있는 장영실연구소. 연구소를 알리는 비석이 차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같은 건물에 근무하는 직원도 연구소를 몰랐다. ⓒ 김영조



포기하고 장영실연구소가 있다는 호서대학교 아산교정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아무도 장영실연구소를 알지 못한다. 심지어 교무과 직원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이곳저곳에 묻다가 대학 홍보과에서 도서관 뒤편 어디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겨우 차 뒤편에 숨어있는 연구소 비석이 보인다. 하지만 연구소장은 외출중이고, 관련자는 아무도 없다. 1층에 있는 직원조차 장영실 연구소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다. 연구소장과는 전화 통화도 되지 않는다.

겨우 총장실에 있다는 영정과 오목해시계 복원품만 확인한다. 영정은 당시에 그린 것이 아니고 최근 장영실기념사업회에서 아산 장씨의 표준 얼굴을 추출하여 그렸다고 한다. 오목해시계 복원품은 창들에 방치되다시피 해 안타까웠다.

이제 아산에서 기댈 곳은 안산장씨대종회가 조성했다는 장영실 묘소와 추모비다. 물어물어 인주면의 아산 장씨 선산에 당도했다. 묘역 근처에 이르기까지 그 어디에도 안내판은 없었다. 아산에서 10년 택시를 몰았다는 기사도 모르고 그 기사가 전화한 아산이 고향이 지역 유지도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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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묘소 들머리의 안내판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장영실 묘소는 가는 길에 전혀 안내팻말이 없었고, 15년 경력의 택시운전사도 몰랐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겨우 더러워진 안내판이 보인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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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묘소 아산장씨대종회에서 가묘지만 묘소를 잘 만들어 놓았다. 옆에는 추모비를 세웠다. ⓒ 김영조



대신 가묘지만 번듯하게 해놓았다. 추모비도 한자가 지나친 것 말고는 그럴싸하다. 우리는 간단한 재물을 상석에 올려놓고 절을 했다. 후손들의 잘못을 우리라도 빌고 싶었다.

그 며칠 뒤 우리는 광화문에 있는 장영실기념사업회에서 이만길 상임부회장을 만났다.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장영실을 기리려고 그동안 한국과학기술원(KIST), 국립서울과학관, 기상청 뜰앞 등 7곳에 동상을 세우고 장영실과학상을 주어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정근모 전 과학기술부 장관, 이수성 전 국무총리 등이 회장을 맡아 많은 일을 했지만 정부와 언론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23일 늦은 2시 국립서울과학관에서 장영실을 기리는 과학기술전국대회가 있다 하여 가보았다. 아쉽게도 좌석 161개의 행사장은 차지 않았고, 젊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공동주최자인 아산시 관계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무대 뒤편 위에는 행사를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지만 토씨 “의 날” 자 빼고는 모두 한자뿐이다. 축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글이 위대한 과학이라고 말했지만 공허한 외침이었다. 또 이승만과 박정희 예찬론이 난무한다. 어디 딴 세상에 온 듯 정신이 없다.

이래서 장영실을 기린다는 것이 제대로 될 것인가?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이런 방법은 재고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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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기념사업회 이만길 상임부회장 이 부회장은 장영실 기리는 많은 일을 했다. 지폐에 실린 자격루 그림을 보면서 장영실을 얘기한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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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전국대회 공동주최자인 아산시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고, 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대 위 펼침막에는 "~의 날" 밖에는 온통 한자투성이다. ⓒ 김영조



답답하다. 건국대학교 전기공학과의 한 교수는 장영실에 관한 한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인물이다.  그 교수는 그동안 자격루 등 많은 천문과학기구를 복원해왔다. 그런데 그는 대담 요청에 미리 질문 요지를 보내라며 하고,  본인이 복원했다는 자격루도 11월에 하는 일반 공개 전에는 보여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대담은 포기했다.

여주 세종영릉관리소에 복원유물 문제를 거론해본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어서 전문가의 검토를 거친 뒤 적절하게 보완하겠다는 답변만 들었다.

26일 '장영실의 날'에 장영실은 없다. 아니 대한민국엔 장영실은 없다. 조선시대 최고의 양반 지식인인 사관들은 장영실이 자동 물시계를 발명한 것을 추켜세우면서도 그 끝머리에는 그가 관노 출신임을, 마치 천형의 도장을 찍듯 낙인을 찍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그를 천민 출신이라 멸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도 우리는 주장한다. 과학발전은 나라 발전의 주춧돌이다. 대한민국이 발전하기를 바란다면 장영실을 기리는 일에 온 정성을 쏟아달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장영실과 갈릴레이>라는 책의 출판을 앞둔 목원대학교 김슬옹 겸임 교수와의 동행취재로 이뤄졌다. 차후 세종영릉 복원유물 문제를 기사로 다루면서 문화재청의 생각을 들어볼 예정이다.


이기사는 다음, 대자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영실과 갈릴레이>라는 책의 출판을 앞둔 목원대학교 김슬옹 겸임 교수와의 동행취재로 이뤄졌다. 차후 세종영릉 복원유물 문제를 기사로 다루면서 문화재청의 생각을 들어볼 예정이다.


이기사는 다음, 대자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장영실 #장영실기념사업회 #아산장씨대종회 #아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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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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