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업고 산 타는 예순 할머니

경남 밀양시 재약산 수미봉을 다녀와서

등록 2007.10.27 18:36수정 2007.10.2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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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손녀를 업고 산행하던 광주 할머니  

손녀를 업고 산행하던 광주 할머니   ⓒ 김연옥



지난 21일 나는 유치원에서 놀이 수학을 가르치는 조수미씨, 지긋한 나이에도 마음은 늘 청춘인 김호부 선생님과 함께 밀양 재약산 수미봉(1108m) 산행을 떠났다. 오전 9시에 마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10시 50분께 표충사(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a 층층폭포 앞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 등산객들.  

층층폭포 앞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 등산객들.   ⓒ 김연옥



우리는 옥류동천을 끼고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산길을 느긋하게 걸어갔다. 갑자기 몹쓸 병에 걸려 입원을 하게 된 내 직장 동료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소리바람이 불던 올 3월 초, 조수미씨도 그와 함께 봄 나들이한 인연으로 산행 전날에 문병을 다녀왔다.

며칠 동안 그의 병실을 드나들면서 나는 산다는 것이 참으로 외롭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래서 더욱 산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어느 산이든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a 밀양 재약산 층층폭포  

밀양 재약산 층층폭포   ⓒ 김연옥



25분 남짓 걸었을까. 우렁찬 소리로 떨어져 내리는 흑룡폭포가 우리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먼 거리에 있어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폭포이다. 마치 깊은 산속에 숨겨진 신비스러운 폭포 같다. 남몰래 짝사랑하는 심정이 그런 것일까. 그 아름다운 풍광만큼이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a 밀양 재약산 흑룡폭포  

밀양 재약산 흑룡폭포   ⓒ 김연옥



그날 생후 19개월 된 손녀를 업고 산행하는 광주 할머니가 산행 내내 화제에 올랐다. 나이가 예순인 그 할머니는 힘들지도 않은지 나보더 더 빨리 걸었다. 김호부 선생은 "25년 동안 산행하면서 아이 업고 산을 타는 분은 처음 봤다"며 대단한 할머니라고 감탄했다.


하늘 아래 첫 학교인 사자평분교, 30년 동안 졸업생 36명 배출

a 수미봉 정상 바로 밑에 있는 거대한 바위  

수미봉 정상 바로 밑에 있는 거대한 바위   ⓒ 김연옥



두 번째 폭포인 층층폭포에 이르렀다. 누군가 재미 삼아 마구 흔들어대는 다리를 건너서 층층폭포로 내려갔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전에는 폭포 하면 무더운 여름에만 찾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가을 폭포 또한 매우 운치 있다. 게다가 가까이에서 몸으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폭포라서 그런지 그곳에는 끼리끼리 모여 앉아 쉬고 있는 등산객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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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옥


a 재약산 수미봉 정상에서  

재약산 수미봉 정상에서   ⓒ 김연옥



고사리분교터와 재약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김호부 선생은 남아 있기로 하고 둘이서 재약산 정상을 향했다. 하늘 아래 첫 학교였던 고사리분교. 가난으로 힘들어도 순박함을 잃지 않았을 것 같은 아이들의 얼굴을 내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산동초등학교 사자평분교가 그 학교의 정식 명칭으로 지난 1996년에 폐교되었다 한다. 30년 동안 졸업생 수는 36명. 사자평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살던 화전민들의 자녀들이 배움터로 삼았던 곳이다.

재약산(載藥山)은 신라 흥덕왕의 아들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흥덕왕 4년(829년)에 나병에 걸린 왕자가 고생을 하다 현재 표충사 자리에 있는 영정약수(靈井藥水)와 좋은 약초로 병이 낫게 되었다 한다. 그 뒤로 산 이름을 재약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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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옥


a 작은 무지개가 예뻤던 층층폭포.  

작은 무지개가 예뻤던 층층폭포.   ⓒ 김연옥


진불암 갈림길을 지나 재약산 수미봉 정상에 오른 시간이 오후 1시 40분께. 사람들이 북적거려 정상 표지석 사진을 찍기도 어려웠다. 거기서 재약산 사자봉(1189m), 능동산(982m)으로 이어지는 억새 능선길은 참으로 아름답다. 올 2월에 산행을 했던 코스로 반짝반짝 햇살 받은 금빛 억새밭이 지금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재약산은 영남알프스에 속하는 산이다. 마치 유럽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 하여 가지산, 신불산, 재약산, 운문산, 간월산, 영축산, 고헌산을 영남알프스라 일컫는다. 그 높이가 모두 1천 미터가 넘고 경남 밀양시 산내면,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등에 모여 있다.

사명대사 충혼 기린 표충사서 만난 베트남 스님들

a 표충사 삼층석탑과 석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베트남 스님들  

표충사 삼층석탑과 석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베트남 스님들   ⓒ 김연옥



우리는 그날 억새 산행이 목적이 아니라서 수미봉 정상에서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김호부 선생과 만나 김밥과 컵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했다. 하산길의 층층폭포에는 벌써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리고 예쁘게 걸려 있는 작은 무지개. 비록 크기는 작지만 그 예쁜 무지개가 내 마음을 잠시 흔들어 놓았다.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에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표충사에 잠시 들렀다. 원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인데 신라 흥덕왕 4년에 영정사(靈井寺)로 바뀌었다. 그러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고향 무안면에 세워져 있던 표충사(表忠祠)를 조선 헌종 5년(1839년)에 그곳으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고치게 되었다.

표충사 경내에는 사명대사를 기리는 '사명제전' 행사등이 아직도 달려 있었다. 우리는 영정약수 한 바가지 들이켜고 통일신라 시대에 세운 것으로 높이가 7.7m인 삼층석탑(보물 제467호)과 석등(경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을 구경했다. 마침 베트남에서 온 스님들이 그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여기부터 시작이라는 것인가

내리꽂히는 황홀함에 길들여져 왔으나
물이 뛰어내린 자리에 발 담그며 환호했으나


폭포는
물의 계단


폭발하는 바닥의 빛!
- 함순례의 '폭포'

흑룡폭포, 층층폭포의 아름다움을 안고 마산으로 돌아갔다. 커피 한 잔에도 맛과 정성이 늘 느껴져 자주 가는 단골 카페 '하얀집'에 가서 맥주를 조금 곁들이며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었다. 추락하는데도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폭포. 나는 그 떨어지는 폭포들의 찬란함을 떠올리며 직장 동료 또한 몹쓸 병을 털고 다시 일어나리라 믿고 싶었다. 그리고 따뜻한 시선을 지닌 우리들의 또 다른 삶을 꿈꿔 보고 싶었다.
#영남알프스 #재약산 #폭포 #사자평 #고사리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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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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