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단 창신동 아줌마들 '바람나다'

두번째 패션쇼를 준비하는 수다공방 사람들

등록 2007.10.29 09:18수정 2007.10.2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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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 "바람나다" 준비로 분주한 창신동 의류노동자 재교육센터 '수다공방' ⓒ 김혜원




2006년 12월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라는 이름의 패션쇼를 통해 봉제 노동자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었던 창신동 의류노동자 재교육센터 '수다공방'이 올해는 그들 가슴 속에 신바람을 가득 넣어주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2007 패션쇼 '바람나다'를 준비하고 있다.

다음달 9일 패션쇼를 앞두고 준비에 한창 신바람이 난 수다공방을 지난 10월 23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찾았다.
 
편하고 아름다운 옷, 디자이너 이형우씨

작고 조금 불편한 몸이지만 반짝이는 눈빛으로 열심히 자신이 만든 옷을 손보고 있는 디자이너 이형우씨. 옷 만들기만 20~30년 해 왔다는 봉제계 대모들만 모여드는 수다공방 사람들도 그에게는 혀를 내두른다.

보통은 전문분야가 따로 있어 몇 명이 함께 이루어야 하는 옷 만들기 단계인 기획, 디자인, 패턴, 재단, 봉제, 마무리까지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척척 해내는, 옷에 관한 한 '박사'이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자신의 의상실에서 손님의 옷을 만들어 왔지만 공식적인 공모전 출품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이형우씨. 옷과 자신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그에게 '옷' 즉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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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염색에 전통문양을 살린 이형우씨의 수상작품 ⓒ 김혜원


"원래 미술에 관심이 많아 그림을 하고 싶었는데 여의치가 않았어요. 저는 그림으로 풀어내지 못한 저의 소망을 옷으로 풀고 있어요. 한국적인 선과 전통문양 천연염색 등을 사용하는 것 역시 제가 옷을 단순한 의복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죠. 한복의 배래선이나 구름 문양 등을 옷에 표현하는 일, 그것은 그림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는 적다면 적은 나이인 만 스무 살에,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작은 가게 한 칸을 얻어 자신의 이름을 건 의상실을 냈다. 남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의상실 문을 닫았던 적이 없다는 이씨. 그 자신 역시 일반적인 옷을 입기에는 다소 불편한 신체를 가지고 있어서일까, 유달리 입기 편한 옷에 관심을 갖는다.


"옷은 제2의 인격이라고 하잖아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이 옷이라는 뜻이죠.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진 옷을 입기 편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이지요. 그러려면 옷을 입는 사람의 취향과 성격, 외모도 중요하지만 체형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출산과 육아 등으로 처녀시절 몸매를 잃어버린 주부들은 돈을 들고서도 기성복을 사 입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기성복 사이즈는 44, 55, 66(소, 중, 대)이며 77, 88(특대) 정도만 되어도 백화점이든 시장이든 옷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체형을 고작 세 가지, 많아야 다섯 가지로 분류해 옷을 만들어내는 기성복. 몸에 옷을 맞추기보다는 옷에 몸을 맞춘다는 말이 있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무작정 옷에 몸을 맞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름답고 편한 옷'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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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디자인 한 옷 앞에 선 디자이너 이형우씨 ⓒ 김혜원



"대학원 졸업논문이 '복강경 불임수술 이후 여성의 체형 변화'였어요. 수십 년간 옷을 만들다보니 이상한 체형의 변화와 그 변화가 일정한 집단에서 보여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실제로 인체 계측을 통해 자료를 만들어 보았어요. 사 입는 옷이 몸에 잘 맞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 중 하나가 사이즈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거든요."

자신이 만드는 옷에 대한 자부심과 옷을 입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그. 그래서인지 그의 의상실을 찾는 손님들은 한번 찾으면 몇 십 년 단골이 되는 것은 보통이란다.

스무 살에 시작해 지금도 여전히 옷 만드는 일을 쉬지 않는 그에게는 적지 않은 수의 제자들도 있다. 패션전문 대학원에서 패션에 대한 강의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모전과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제가 했던 일과 살아온 날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동안 열심히 일만 해왔지 그것을 정리하고 체계화해서 자료로 만들거나 할 여유가 없었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관심이 있는 분야인 신체 계측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하게 될 것 같고요. 큰 욕심은 없어요. 그냥 제가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겠지요."
 
미싱과 함께 한 30년, 재봉사 김연옥씨

"사람들 앞에 옷을 입고 걸어 나갈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요. 젊고 예쁘고 날씬한 아가씨들만 모델하는 줄 알지 저 같은 사람이 꿈이나 꾸겠어요."

30년간 옷만 만들었지 모델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는 김연옥씨. 봉직공장 노동자 30년에 호강이라면 호강인 모델까지 하게 된 그지만 30년 전 처음 미싱을 잡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릿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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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에 봉제일을 시작했다는 재봉사 김연옥씨 ⓒ 김혜원



"예전부터 창신동이랑 숭인동에 소규모 봉제공장들이 많았어요. 지금도 창신동 골목엔 여전히 미싱 몇 대 놓고 일하는 영세봉제공장들이 많지요."

열일곱 꿈 많던 소녀 시절. 가난은 그에게 책가방 대신 미싱을 안겨주었다.

"학교 가고 싶었지요. 아침에 교복 입고 학교 가는 여학생들이 제일 부러웠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됐거든요."

순식간에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김연옥씨는 소녀 시절의 어려움이 떠올랐던지 잠시 눈시울을 붉힌다.

"시다를 하고 받은 첫 월급이 7천원이었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하네. 아마 미싱사는 만원 받았고 시다는 7천원 받았던 것 같아요. 한 푼도 못써보고 다 엄마 드렸지요. 그땐 그렇게 하는 건 줄 알았어요. 대부분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모두 그랬으니까…."

김씨가 처음 일을 배웠던 30년 전 봉제공장의 노동 상황에 대해 물으니 더 말할 것도 없이 열악했다고 한다.

"원래 1, 3주 일요일엔 놀려준다고 했지만 그게 어디 지켜져야지요. 한 달에 한 번 노는 것도 감지덕지고 8시에 출근하면 일찍 끝나야 9시. 밤을 새는 날도 많았어요. 그래도 뭐라고 불만을 말하지 못했어요. 그땐 다 그렇게 하는 줄 알았으니까요. 안 그러면 잘리는데 어떻게 표현을 하겠어요."
 
김씨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당시 상황도 충격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재단사로 일하던 사람이 분신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충격적이었지요. 너무나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으니까요. 저는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어요. 뭔가 불만을 말하려면 아예 목을 내놓을 작정을 해야 했으니까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지만 봉제노동자의 현실은 여전히 밝지만은 않다.

"노동자들이 깨어나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때까지는 '시키면 한다', '무조건 한다' 이랬는데 그 이후엔 노동법도 조금씩 알게 되고 또 큰 공장에서는 근무시간이나 임금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고요. 하지만 영세한 공장들은 그때나 지금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요."

70년 이후 노동법이 적용되거나 일부 임금 인상이 있었기는 하지만 규모가 큰 사업장의 경우일 뿐 영세한 작업장은 대부분 지금도 3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

"결혼 전엔 미싱해서 살림 보태고, 결혼 후엔 미싱해서 애들 가르쳤지만 우리 애들이 배운다면 무조건 말리겠어요. 나야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해서 힘들고 대우받지 못하는 일을 하지만 애들은 이런 일 시키고 싶지 않지요. 지금도 미싱사하면 가난한 집 애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고요. 존중받거나 자부심을 느끼는 일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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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 "바람나다"에 입고 나갈 의상 옆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김연옥씨 ⓒ 김혜원



김연옥씨뿐 아니라 수다공방에서 만난 다른 아줌마들 역시 한결 같은 이야기를 한다. 30년간 한 가지 일만을 해왔지만 대부분 봉제인들이 여전히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일하며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세한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주들에게 뭘 요구하겠어요. 저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인 걸요. 의료보험, 산재보험, 연금보험… 이런 거 우리에겐 다 그림에 떡이에요. 사업주 자신들도 지하 단칸 공장에서 허덕이는 상황인데 직공들을 위해 보험 들어 줄 돈이 어디 있겠어요."

값싼 중국제품의 홍수 속에 한국봉제시장은 점점 더 어려운 길을 걷게 되며 단가를 낮추는 제살 깍기 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 역시 봉제인들을 위기로 몰아넣는 요인이다. 옷 한 벌을 만들고 받는 단가가 10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으니 그런 상황에서 4대 보험을 요구하는 것은 여드레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이야기라는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몸 바쳐 일한 봉제인들이에요. 공기도 햇볕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밥 먹는 시간조차도 아껴가며 일하다보니 위장병, 호흡기질환, 관절질환, 눈병들을 달고 살고요. 그래도 산재나 직장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 봉제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이런 것만이라도 정부에서 나서서 도와주면 봉제인들도 신바람나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연옥씨처럼 수다공방에 교육을 받으러 나오는 교육생들은 대부분 제봉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들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익혀왔던 기술에 체계적이고 세분화된 교육을 더해 진정한 고급기술자가 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시달렸던 '공순이'가 아닌 기술과 실력을 고루 갖춘 봉제 전문가가 되기 위함이다.

"수다공방에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30년도 넘게 미싱을 해 온 사람들이에요. 50대, 60대… 나이야 많지만 배우는 데 나이는 문제가 아니죠. 고급 기술을 익혀서 제대로 평가받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전순옥 대표가 그렇게 해 주신다고 약속했어요. 그래서 늦은 시간에 배우고 일을 해도 즐거워요. 신바람이 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해 패션봉제기술학교 수다공방(참여성노동복지터 설립, 대표 전순옥)이 마련한 패션쇼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달다'가 전하고자 했던 봉제근로자의 노동환경과 동대문 현실에 대해 공감하고 동대문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현실적인 해법의 첫 걸음으로서 두 번째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다.

수다공방과 동대문패션산업발전센터가 함께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하고, 오는 11월 9일(금) 오후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리는 제2회 수다공방 패션쇼에는 자신이 입고 나갈 옷을 직접 만든 제봉사 아줌마들은 물론 노동부장관, 여성가족부장관, 가수 양희은과 그의 어머니를 비롯한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축하모델로 런웨이를 화려하게 장식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지난해 패션봉제기술학교 수다공방(참여성노동복지터 설립, 대표 전순옥)이 마련한 패션쇼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달다'가 전하고자 했던 봉제근로자의 노동환경과 동대문 현실에 대해 공감하고 동대문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현실적인 해법의 첫 걸음으로서 두 번째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다.

수다공방과 동대문패션산업발전센터가 함께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하고, 오는 11월 9일(금) 오후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리는 제2회 수다공방 패션쇼에는 자신이 입고 나갈 옷을 직접 만든 제봉사 아줌마들은 물론 노동부장관, 여성가족부장관, 가수 양희은과 그의 어머니를 비롯한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축하모델로 런웨이를 화려하게 장식할 예정이다
#수다공방 #참여성노동복지터 #전태일 #전순옥 #바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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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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