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궐 속 역사에 관한 간명하고 친절한 안내서

[서평] <동궐도>

등록 2007.10.29 10:45수정 2007.10.2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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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宮闕)은 왕을 비롯한 왕실 사람들의 삶과 일터였다. 그 곳에서 만들어진 문화를 우리는 궁중문화(宮中文化) 또는 왕실문화(王室文化)라고 부른다. 궁궐은 궁중문화의 생생한 현장이자 왕조의 상징이었다.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궁궐은 모두 다섯이다.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경운궁(慶運宮, 지금의 덕수궁), 경희궁(慶熙宮)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궁궐의 모습 속에서 이 곳이 궁중문화의 생생한 현장이자 왕조의 상징이란 느낌을 찾기는 힘들다. 마치 거대한 공원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제의 고의적인 변형과 왜곡, 그리고 해방 이후의 우리의 무관심과 무지가 숨어 있다.

 

나에게는 몇 년 전 참으로 뼈아픈 경험이 하나 있었다. 군대를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창덕궁을 답사할 때였다.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그 때문인지 개별 관람이 금지되어 있다. 그 때도 안내원의 설명을 받아 이곳 저곳을 보고 있었는데, 우리의 눈이 어차고에 이르렀다. 안내원은 어차고를 소개했고, 그 때만 해도 궁궐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나는 그것을 무심히 받아들였다. 집에 와서 궁궐에 관한 좋은 서적을 읽으며 어차고의 사연을 알았고 그 순간 너무나 부끄러웠다. 어쩌면 그런 경험이 나에게는 궁궐과 궁중문화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이는 다른 문화유산도 예외가 아니지만 궁궐 속 건물의 간단한 연혁과 겉모습을 소개하면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건축 용어가 나열되어 있는 안내문을 보면 참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궁궐의 한 면일 뿐이다. 더구나 건축 전문가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를 가지고 일반 대중이나 외국인들에게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닐까. 안내문의 내용을 열심히 적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참 안타깝기 그지 없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사람의 겉모습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라든지 마음, 성품 등 속모습도 같이 바라보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한다. 궁궐도 이와 같이 바라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궁궐은 그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속에도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궁궐 속에서 어떤 역사가 펼쳐졌을까?”, “궁궐 속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이 궁궐의 참 모습인가?” 등등.

 

이 책은 지난 2006년 출간된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열화당·효형출판, 2006) 가운데 '동궐도'(東闕圖)에 실린 중요한 전각에 관한 설명과 동궐도사진, 실경 사진을 추려내 만든 것이다.

 

동궐도란 말 그대로 동궐을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여기서 동궐(東闕)은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이들의 후원(後苑)을 아우르는 말이다. 경복궁 동쪽에 창덕궁과 창경궁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동궐이라 한데 묶어 부른 데서 알 수 있듯이 본디 창덕궁과 창경궁은 지금처럼 끊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일제가 임의로 구역을 잘라 지금은 두 궁궐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동궐도는 1820년대에 100여 명의 화인들이 집단으로 그림 궁궐 그림인데, 모두 16폭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그림은 가로가 무려 567cm, 세로가 273cm에 이른다. 19세기 회화의 백미로 꼽힐 만큼 그 아름다움과 치밀함이 돋보여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높은 회화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줌은 물론 동궐의 참모습을 아는 데도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이 책은 그동궐도를 바탕으로 동궐 속에 담긴 우리의 역사를 간명하게 추적해가고 있다.

 

안내문과 같은 간명한 글인 만큼 동궐도와 비교해가면서 보더라도 30~40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안내문을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단순한 겉모습이 아닌, 동궐에 담긴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정조대왕은 어디서 태어나고 승하했을까?”, “왕들은 어디서 즉위했을까?”, “희빈 장씨가 사사(賜死, 사약을 받고 죽음)당한 곳이 어디인가?”, “사도세자가 죽은 곳은 어디인가?” 등등. 이런 지식들이 故 김대벽 선생이 찍은 아름답고 격조 있는 동궐 사진과 함께 짧게, 그러나 명확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우선 본문의 내용이 영역된 영문도 실려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들도 동궐의 아름다움과 역사를 생생하게 맛볼 수 있는 배려인 셈이다. 양장본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선물해도 아주 괜찮을 만큼 잘 만들어졌다. 다음으로동궐도 전부를 축소한 휴대용 인쇄물을 첨부하고 있어 언제 어디든지 들고 다니면서 동궐의 어제와 오늘, 동궐의 아름다움을 살펴볼 수 있다.

 

다만 궁궐에 대한 좀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부족할 수 있다. 이 책은 동궐에서 펼쳐진 역사에 관해서만 짤막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간명한 안내서라는 이 책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한계다.

 

동궐은 일제에 의해 참으로 모진 수난을 겪었다. 신하들이 국사를 논하는 창덕궁의 빈청이던 곳이 어차고로 바뀌고, 창경궁에는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섰으며 이름마저 창경원으로 바뀌었다. 후원은 비원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되었다가 근래에 와서야 제 이름을 찾았다. 궁궐에 동물원이 들어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지는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지금은 옮겨갔지만.

 

아직도 궁궐은 겉으로는 참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없어진 것이 너무나 많고 남아 있는 것조차 잘못되어 있는 것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무조건 복원이나 재건만이 능사가 아니다. 또 겉모습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도 답사의 올바른 태도는 아닐 것이다.

 

궁궐은 많이 변했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것을 제대로 읽어낼 수만 있다면, 아울러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꿈과 생각을 읽어낼 수만 있다면,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고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제대로 더듬어볼 수만 있다면, 그것이 궁궐의 참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여겨진다. 이 책은 그 기본적인 답을 충실히 줄 것이라 생각한다. 

 

동궐은 창덕궁(1405년 준공)과 창경궁(1484년 준공)을 모두 이르는 말로, … 세계 역사상 가장 긴 왕조의 하나로 고급스러운 유교문명을 찬란하게 꽃피웠던 조선의 국왕들이 가장 오래 머문 공간이며, 자연경관은 한껏 살리고 인공은 최대한 줄이는 한국 건축의 미(美)를 잘 간직하고 있다. …… (한영우 글·김대벽 사진·김진숙 영역,『동궐도』, 효형출판, 2007, 3쪽)

2007.10.29 10:45ⓒ 2007 OhmyNews

동궐도 - Donggwoldo, Painting of Eastern Palace

한영우 지음, 김대벽 사진,
효형출판, 2007


#동궐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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