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기운이 마음까지 활활 태워

절정에 이른 지리산 가을에 젖어 삶의 활기를 얻다

등록 2007.10.29 17:57수정 2007.10.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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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을 견딜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하면 해소시킬 수 있을까?”
“고운 단풍을 보면 나을 것 같은데---.”
“그래? 그럼 지리산에 갈까?”

 

만성 두통을 호소하는 집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겁다. 병원을 찾아도 큰 효험을 얻을 수가 없으니, 난감한 일이다. 진통제에 의존하여 겨우 버티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두통을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였으니, 짐작만 할 뿐이다. 두통이 시작되면 못 견뎌 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에는 차라리 대신 아프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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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산 ⓒ 정기상

▲ 붉은 산 ⓒ 정기상

뉴스에 지리산의 곱게 물든 단풍의 모습이 보도되었다. 지리산은 만산홍엽이었다. 금방이라도 단풍의 고운 빛깔이 뚝뚝 떨어질 듯 아름다웠다. 화면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지리산의 모습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사람의 하소연이 없다 하더라도 지리산의 단풍에 취하고 싶었다.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좋은 기회였다. 단풍에 취할 수도 있고 집사람에게 생색도 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전주에서 출발할 때에는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단풍은 햇살에 비추어야 반짝인다. 그런데 일기예보에도 비가 내린다고 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단풍 구경을 나섰으니, 단풍에 푹 빠지고 싶었다. 그런데 하늘이 협조를 하지 않으니, 걱정이 되었다. 마음속으로 해님이 환하게 웃어주기를 간절하게 기원하였다.

 

남원으로 향하는 도로를 질주하게 되니,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스쳐 지나가는 주변의 풍광들이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일상의 무거움을 함께 가지고 날려버리니, 시나브로 가벼워졌다. 근심 걱정이 바람과 함께 뒤로 밀쳐지니, 마음은 하늘로 가볍게 떠오르는 듯, 하였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지리산 아래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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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마음 설레고 ⓒ 정기상

▲ 노란 마음 설레고 ⓒ 정기상

남원시 이백면을 지나 산내면에 이르게 되니, 점심때가 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리산에 왔으니, 지리산의 산채 맛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각종 산채들을 말려 무친 산나물에서는 산의 고운 향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산의 정기를 마시는 것 같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서 목기를 구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무를 이용한 각종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식기며 제기 그리고 각종 목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다. 너무 좋아서 가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가격표를 보니, 너무 비쌌다. 저렴한 가격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을 접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야 ! 곱다.”

달궁 계곡 쪽으로 들어서니, 눈이 시려서 제대로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입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사는 마음으로 느끼는 단풍에 대한 극히 일부분의 표현일 뿐이었다. 오관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다. 눈은 눈대로, 후각은 후각대로, 청각은 청각대로, 아니 온몸이 붉게 물든 지리산의 단풍에 푹 젖어들었다. 어디를 보아도 단풍이 예쁘게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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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활기 ⓒ 정기상

▲ 지리산 활기 ⓒ 정기상

만산홍엽 바로 그 자체였다. 단풍이 아름답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상상하고 있는 단풍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니,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선에 들어오는 그 어느 곳이라도 온통 붉은빛이다. 거기에다 시원한 바람과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고 있는 계곡의 물까지 아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덕동을 지나 정령치로 향하니, 단풍은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리산의 단풍을 보기 위하여 매년 찾아오고는 있었지만, 그 시기를 제대로 잡지 못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에도 단풍에 매료되기는 하였지만, 오늘처럼 아름다운 단풍을 본 적은 없었다. 지리산 단풍이 왜 으뜸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령치를 넘어서면 주변의 환경은 판이하게 달라졌었다. 달궁 쪽에 단풍이 들었어도 육모정 쪽으로는 소나무가 많아서 단풍하고는 거리가 멀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고개를 넘었어도 단풍이 곱게 물들여져 있었다. 감탄사가 터져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삼천리금수강산이라는 말이 헛 명성이 아니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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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물들어 ⓒ 정기상

▲ 마음도 물들어 ⓒ 정기상

지리산의 단풍에 취하다 보니, 내 마음까지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고운 단풍의 빛깔이 그대로 마음까지 물들여버린 것이다. 심장에서부터 손가락 발가락까지 곱게 물들어 버린 단풍의 오색 빛깔이 고스란히 배어든 것이다. 단풍 구경의 참 맛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가을의 깊은 정취에 완전히 젖어들어 버렸다.

 

“머리가 아직도 아파?”
“아뇨. 다 개 버렸어요. 어찌나 단풍이 곱던지.”

 

한하게 웃는 집사람의 얼굴에도 고운 단풍이 물들어져 있었다. 고통은 바람과 함께 날려버리고 지리산 가을과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가을 여인이 된 아내를 바라보면서 내 마음도 흐뭇해진다. 지리산 단풍이 삶의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 가을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하루였다. 단풍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지리산에서 촬영(2007.10.28)

2007.10.29 17:5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사진은 지리산에서 촬영(2007.10.28)
#지리산 #단풍 #활기 #가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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