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군 철수에 담긴 의미

사실상의 후퇴, 미국은 고립 심화

등록 2007.10.29 21:08수정 2007.10.2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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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기 기세등등하게 이라크에 4만여명의 군대를 투입하고 7천여 명의 병력을 주둔시켰던 영국이 이라크 주둔 병력 감축에 이어 철군 규모를 점차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영국은 5천5백명 수준의 자국 병력을 연말까지 5천명 선으로 감축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는 크리스마스 전까지 바스라에 주둔 중인 영국군 병력을 당초 예정의 2배인 1천명 감축하고, 부분 철군에서 완전 철군으로 나아가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영국군은 이라크 남부의 바스라궁에서 완전히 철수한 상태이며 12월까지 바스라 지역의 치안권을 이양하고, 내년 봄까지는 병력을 2500명 수준으로 줄일 예정이다. 영국 국방부 관계자들의 입에서는 2008년 말까지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군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동안 영국군이 바스라에서 실제‘치안권’을 행사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영국군이 저항세력의 거센 공격과 주민들의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쫓기듯 철수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영국군은 그 동안 작전지역 3곳을 메흐디군 등 이라크 저항세력에게 빼앗기고 바스라궁으로 물러나 주둔해 왔다. 또한 로켓포와 폭탄 공격이 전혀 줄어들지 않아 영국군은 중무장을 한 장갑차를 타지 않고는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고 한다. 지난 8월 말에는 시아파 무장조직이 경찰서 점령을 시도하기도 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국제위기그룹(ICG)에서는 영국군이 2005년 중반부터 이미 바스라 주변지역 통제권을 잃었으므로 지금 철수한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밖에 없다는 견해를 발표했다.

 

이라크 남부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이라크 시아파 저항세력 지도자 알 사드르는 8월 20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영국군은 격렬한 저항에 부딪쳐 사망자를 내고 패배하고 있는 만큼 철수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도 이 전쟁에서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면서 나머지 5500여명의 영국군도 지체없이 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0월 1일 로이터통신은 영국군 철수 후로 바스라가 평온해졌다는 현지 주민들의 의견을 전했다.(10.1 reuter, "Iraqis say Basra quieter after British troop pullout") 영국군이 없어지자 각종 폭력 사태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은 현재 이라크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인명이 살상되는 사태의 원인이 외국군 주둔에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4년째 같은 곳에 머물렀지만 지역을 장악하기는커녕 171명이라는 사망자만 내고 결국 철수를 결정한 영국군의 모습은 이라크전의 실상을 대변하는 사례라 하겠다. 

 

한편 영국군의 철수는 미국에 실로 큰 타격이 되었다. 미국이 2만 1500여명의 미군을 추가 파병 중인 시점에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철수를 발표한데다, 영국에 이어 덴마크, 그루지야, 엘살바도르, 체코 등 파병국들이 줄줄이 철군에 들어가거나 점진적 철군 방침을 내놓아 부시 행정부에 더욱 불리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라크전은 4년 6개월여만에 사실상 미국의 전쟁이 되었고, 미국이 기댈 '동맹국'도 이제 거의 없다. 수십 명 수준으로 상징적인 숫자의 병력만 이라크에 남겨 놓고 있는 나라까지 모두 합쳐도 파병국은 20여개로 줄어들었으며 그나마도 대부분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다. 더구나 내년 중반에는 미국을 제외한 다국적군 병력이 총 7000명선으로 줄어들 예정이라니 '다국적군'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다. 

 

미국의 고립은 이라크뿐 아니라 아프간에서도 심화되고 있다. 지난 8월 9일 뉴욕타임스는 아프간에서 나토군과 미군 사이에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헬만드주에서 소탕작전을 펼치고 있던 영국군이 미군 특수부대에게 영국군 작전지역에서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나토군은 미군의 공중폭격 때문에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하고 그럴수록 아프간 민심은 탈레반 쪽으로 기운다는 불만을 토로한다고 한다. 사실 나토군이라고 해서 특별히 도덕적인 생각으로 아프간에 가 있는 것도 아닐진대 그런 불만까지 나올 정도면 미군의 만행은 도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어쨌든 미국은 패배한 두 전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고립무원이 되었다. 그런 나라를 위해 자이툰부대 파병을 또다시 연장한다면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파병철회네트워크(http://antipb.net)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2007.10.29 21:08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파병철회네트워크(http://antipb.net)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자이툰 #파병 #영국군 #파병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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