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농(十市一農)을 아시나요?

[밥상평화 26] 농민들은 왜 노동자처럼 파업하지 못할까

등록 2007.11.02 09:19수정 2007.11.0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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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풀무생협·보건의료노조·전교조·학교급식네트워크 등이 모인 '푸른연대'와 환경농업단체연합회와 함께 우리 먹을거리의 현실을 짚어보고 현재 판로가 막혀있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기농업에서 그 대안을 모색하는 특별기획을 진행해왔습니다. 이 글은 안철환(안산 도시농부, 귀농운동본부 출판기획실장) 씨가 보내왔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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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밥... 곡물은 꼭 유기농으로 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밥... 곡물은 꼭 유기농으로 한다. ⓒ 이현숙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밥... 곡물은 꼭 유기농으로 한다. ⓒ 이현숙

 

6%대로 추락한 우리 식량 자급율을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농산물 수입이 양적으로 급증하다보니 저질의 중국산을 비롯해 광우병 의심이 가는 미국 소고기에서부터 유전자 조작 식품까지 우리 밥상을 순식간에 차지하고 말았다. 도대체 안심하고 밥상을 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의 근본에는 8% 밑으로 추락하고 있는 우리 농민 인구의 급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마저 농촌 고령화 인구가 50%를 넘어서고 있으니 농촌의 공동화는 멀지 않은 장래의 일이 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의 소비자들이 아무리 국산 농산물을 애용하고 친환경유기농산물을 애용한다 한들 우리의 농촌과 우리의 밥상이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도농 공동체운동은 지금 몇 시?

 

한 때, 도시 소비자는 농부의 경제적 안정을, 농촌의 농부는 소비자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취지하에 도농공동체 운동, 도농직거래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때는 깨어있는 소비자들이 그 운동을 주도하여, 농산물에 담겨진 우리 농민의 피와 땀의 가치를 알았다. 또한 벌레 먹고 못 생긴 것이 더 몸에 좋고 살아있는 먹거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와 가족의 건강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소비자들이 급증하여 옛날 도농공동체 운동의 의미는 많이 바랬다. 공동체의 원리보다는 시장의 원리가 더 강하게 작동하게 된 것이다.

 

나는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시장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뒤집지 않고는 우리의 밥상과 우리의 먹거리 문제를 풀 길이 없다고 본다.

 

우선 현재 시장에 종속되어 있는 생산자들부터 깨어나야 한다. 지금의 농민은 어떤 의미에서 소비자적 생산자라 할 수 있다. 거름도 돈 주고 사고, 종자도 사고, 모종도 사고, 뭐든지 돈을 주고 산다. 하다 못해 가족 먹을거리조차 시장에서 돈 주고 사다 먹는다. 이른바 단작 대량생산 방식의 모습이다.

 

이런 생산방식은 규모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생산비용도 많이 들고 품값도 많이 드는 고투입 고비용 농사다. 말하자면 생산과정 자체도 시장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판로가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농산물은 공급량이 1% 모자라도 폭등하고 1% 남아도 폭락하는 게 특성이다. 생산물 가격도 농민이 결정할 권한이 없다. 시장에서 부르는 대로  받는 수밖에.

 

도시 주택가에서 봉고트럭에 잔뜩 먹을거리를 싣고 골목을 누비며 다니는 장사가 시골에서 더 잘된다고 한다. 농민들은 내다팔 것 두 세 가지만 농사짓고 먹을거리는 죄다 돈 주고 사서 먹는데다 시골에서는 시장이 멀어서 더 그렇단다.

 

농민은 왜 노동자처럼 파업을 하지 못할까

 

농사라는 게 재배만이 아니다. 거름 만들기에서부터 파종하여 모종 키우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손으로 채종하기까지 전 과정을 실천하는 것이 농사의 참 맛인데 공장처럼 과정이 잘게 부숴져 분업화되어 있다. 이런 시장 원리가 생산과정 자체까지 장악해버리니까 정작 농민은 부채만 늘고 농사짓지 않는 비농업인들, 예컨대 농약, 비료 회사, 비닐 회사, 중간 상인, 농협과 농업관련 공무원들만 살판이 난다.

 

나는 한때 농민은 왜 노동자처럼 파업을 하지 못 하는가 의구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농민은 노동자만도 못한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노동자처럼 고용 4대 보험도 안되어 있고 노동자처럼 최소한의 권리 보장 장치라 할 노동 3권 같은 것도 없다. 농사짓다 다쳐도 산재가 되질 않고 실농(失農)했다 해서 실업보험료가 나오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시장에 종속되어 있음에도 인간시장의 비정규직 정도도 되지 못하는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업농을 확대하여 농민을 다 노동자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그럴 정도로 농민이 푸대접받고 있다는 말이다.

 

농사라는 것은 다른 생산과 다르게 생명을 생산하는 노동이다. 나는 이를 완전노동이라 생각한다. 생명을 생산하는 데 다른 노동처럼 분업화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생명을 무슨 로봇처럼 부분부분 잘라 조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명이 태어나서 열매 맺기까지 전 과정에 농민의 손길이 닿아야 제대로 된 생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농사는 도시의 임노동과 다르게 소외 없는 노동이다. 말하자면 노동의 결과가 자기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생산 과정 자체가 생산적이어야 한다. 거름도 내 손으로, 파종과 모종도 내 손으로, 채종도 내 손으로, 그 외 필요한 자재를 내 손으로 자가 제작하면 완전한 나의 생산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생산비용도 떨어뜨릴 수 있다. 또한 먹을거리를 자가 생산해야 한다. 이게 진짜 기본이다. 원리로 말하자면 자기 먹고 남는 것을 파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안 팔려도 그만, 팔려도 그만이다.

 

이렇게 시장으로부터 자유롭고 시장에 종속되어 있지 않을 때 파업이 가능할 수 있다. 물론 시장을 전적으로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농민에게는 농사를 짓지 못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의무도 있기 때문에 자기만 먹고 말자는 것 또한 이기적이다. 다만 시장에 주눅 들고 소비자에게 저자세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몫은?

 

다음으로 이제는 소비자가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돈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다는 저급한 소비의식은 퇴출되어야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한번은 밭에 끌어댄 계곡 물을 도시에서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옆 밭 사람이 제 멋대로 자기 밭에 끌어 쓰고 있었다. 내 밭도 가물어 힘들여 계곡물 끌어 놓은 것인데 한마디 양해도 없이 그렇게 가져다 쓰면 되겠느냐 했더니, 당당히 하는 말이 만나면 사용료를 주려고 했다고 한다.

 

그 계곡물은 내 것도 누구의 것도 아닌데 어떻게 내가 사용료를 받을 수 있겠는가. 얼굴 인상이나 말씨로 봐서는 전혀 경우 없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도시에서 하던 버릇대로 돈 주고 쓰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인 것 같았다. 지금은 서로 친하게 잘 지내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다.

 

또 하나는 자기와 가족들의 건강만을 생각하는 이른바 웰빙식 소비 태도도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나도 친환경 유기농사를 실천한지 10년이 되었지만 꼭 유기농 음식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는 농약으로 지은 농산물이라도 맛있게 먹는다.

 

우리 사회에도 오직 유기농산물만을 이용하려는 소비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함부로 나가서 밥을 먹지 못한다. 친구들 만나기도 꺼려지고 친척집 찾아가기도 꺼려진다. 그런 데 가면 차려주는 대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농산물에 담겨진 농부의 피와 땀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안전만 하다면 수입 유기농산물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생명이 어떻게 나고 자라고 열매 맺는지 전혀 모르는 소비자들의 생명맹(生命盲)도 퇴출되어야 한다. 우리가 먹는 작물도 나와 같은 생명이라는 인식이 없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작물을 키우는 데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모르는 자세는 고쳐져야 한다. 종이컵에 흙 담아 씨를 심고는 종이 컵 밑에 배수구멍도 뚫을지 모르는 사람, 모종을 옮겨 심는데 종이 컵 채 흙에다 심는 사람들이 과연 그 열매를 먹을 자격이 있는지 참으로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벌레먹은 배추가 맛있다

 

그래서 나는 소비만 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을 알고 생산도 할 줄 아는 소비자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도시농업의 필요성이다. 말하자면 도시의 소비자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농민의 피와 땀을 이해할 수 있고 벌레 먹은 배추가 더 맛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다. 우리 도시텃밭 회원들이 농사의 어려움을 경험하면 한결 같이 하는 얘기가 있다.

 

“왜 농민들이 농약을 치는지 이제야 알겠네요.”

 

직장을 다니며 주말마다 다섯 평, 열 평을 농사짓는 도시 농부들이 주곡을 자급할 수는 없다. 잘해야 김치나 자급하고 양념이나 자급하는 정도다. 그러나 도시농부가 되고 나서는 외식이 줄고 수입농산물 사용도 줄고 친환경 유기농산물도 애용하게 된다. 생협과 같은 유통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주변에 아는 귀농자나 농부들에게서 주곡을 구입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골의 한 농가가 도시의 도시농부 열 가정을 책임지는 근본적인 도농직거래를 생각해 보았다. 주로 주곡 중심으로 관계를 맺는데 추가로 계절에 나는 계절 음식도 공급을 해주는 방식이다. 도시의 도시농부가 생산하지 못하는 쌀이나 고춧가루 된장 같은 주곡을 일년치로 예약을 한다. 그 외에 도시농부가 생산하지 못하는 것 중에 계절마다 나는 것들은 시골 농부가 알아서 도시 자식들에게 보내주는 마음으로 정성껏 싸 보내준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하고 있는 십시일농(十市一農) 운동이 바로 이런 원리로 시작한 운동이다.

 

도심의 시멘트 걷어내고 텃밭을 일구자

 

도시농업은 또 하나의 귀농운동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우리 농장에서는 4년 동안 25명의 귀농자가 나왔다. 그 중에 2/3는 이미 귀농할 마음을 먹고 실습하기 위해서 우리 농장에 찾아 온 사람들이다. 나머지는 당장 귀농할 자신은 없고 농사는 짓고 싶은 단순한 마음으로 왔다가 자신이 생겨 내려간 사람들이다.

 

이 정도 갖고는 농민의 비율을 높였다고 흉내도 낼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젊은 사람들이 이 다음에 우리 농촌과 농업을 살릴 귀중한 동량이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도시농업은 우리 국민 모두가 농민이 되는 그날을 꿈꾸고 있다. 실질적인 농민은 30%가 넘고 그 외 국민들도 도시의 시멘트를 걷어내고 각자의 텃밭에서 푸성귀를 거둬먹는 생명이 넘치는 농경 사회를 다시 꿈꾸고 있는 것이다.

2007.11.02 09:19ⓒ 2007 OhmyNews
#밥상평화 #십시일농 #안철환 #전국귀농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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