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타작을 하는 도리깨질

[슬라이드] 들깨기름의 고소함은 농부들의 노고 맛

등록 2007.11.05 11:57수정 2007.11.05 15:3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들깨를 타작하는 도리깨질 들깨타작을 하는 84세 이기세 할아버지의 도리깨질은 능수능란이었다.

들깨를 타작하는 도리깨질 들깨타작을 하는 84세 이기세 할아버지의 도리깨질은 능수능란이었다. ⓒ 임윤수


들녘 풍경이 달라졌고 논배미에서 듣던 소리도 달라진 지 오래다. 눈길을 잡아둘 만큼 정겨웠던 길, 팔짝거리는 메뚜기만큼이나 제멋대로 구불거렸던 논둑길이 칼로 벤 듯 반듯반듯해지니 마음이 머물만한 길을 보기 힘들어진 게 이미 오래다.


풍악을 앞서가던 날라리소리 대신 기계 소리가 윙윙거리고, 기울이던 막걸릿잔에서 울려 나오던 고수레 소리 대신 한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지도 벌써 오래다.

풍경만 달라진 게 아니라 인심도 많이 야박해졌다고 수군거리지만 그게 어디 농촌사람들의 잘못이며 농부들의 탓이란 말인가. 세상이 그렇게 만들고 사회가 그렇게 조장해가니 생존하기 위한 자기수단이며 자구책인 걸.

농촌이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나 그래도 시골길을 걷다 보면 아직은 마음이 푸근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농촌 풍경을 만나게 된다. 이렇듯 푸근함과 따뜻함이 있기에 농촌을 찾아가는 마음은 보물찾기다.

가을걷이하는 농촌, 도리깨질하는 할아버지

구부리고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다고 할 만큼 허리가 굽어 버린 84세의 이기세 할아버지. 등걸만큼이나 앙상하고 구부정해진 허리를 한 할아버지가 가을걷이하느라 도리깨질을 하고 있다.


모종을 하고 김매어주며 길렀을 들깨, 거름을 주고 해충을 방제하며 길렀을 들깨가 가을 햇살에 탱글탱글 어물어 가니 일찌감치 베어 말렸을 들깨, 몇 번쯤은 뒤집어 널며 말렸을 들깨를 펼쳐가며 도리깨질을 하고 있다.

이불솜을 펼치듯 파란 비닐 멍석에 나란히 줄 맞춰 들깨를 펼치더니 도리깨질을 한다. 허리는 굽었고 손목은 앙상하지만 들깨를 때리는 도리깨질은 암팡지다. 도리깨질을 하는 할아버지의 손놀림은 자유자재다. 왼손 도리깨질인가 했더니 어느새 오른손 도리깨질이다.


확대 ( 1 / 7 )
ⓒ 임윤수

팍팍 소리를 내는 도리깨 끝에서 정말 깨알 같은 들깨 알들이 톡톡 튀어 오른다. 젊은 사람이 도리깨질하는 할아버지를 구경만 하고 있다는 게 죄송하고 민망하지만 고소한 모습이다.

자근자근 발자국을 옮기며 촘촘하게 도리깨질을 해 나가니 들깨 한 자락 놓치지 않는다. 한 줄을 다 털고 도리깨질을 멈춘 뒤에야 들숨소리가 들린다. 구부정했던 허리를 잠시 펴는가 했더니 다시 다음 줄을 도리깨질한다. 줄이 그어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금이라도 그어놓은 듯 똑바로 도리깨질을 한다.

한 줄 한 줄, 줄 띄우기라도 하듯 꼼꼼하게 도리깨질을 다하고 나더니 고스란히 들깨 자락을 뒤집어 펼친다. 그리고 다시 도리깨질을 한다. 이렇게 턴 들깨는 키질을 하거나 체로 쳐 티끌과 같은 이물질들을 골라내고, 다시 한번 물에 일고 햇볕에 말려 기름으로 짠다.

들깨기름에서 나오는 고소함은 모종을 하던 할아버지의 손맛이며, 김을 매주던 땀과 구부정한 허리로 팍팍 도리깨질을 하던 할아버지의 일상이 만들어낸 인고의 맛이며 서글픔이다. 들깨기름이 갈색이거나 검은빛을 내는 건 햇볕에 그을린 할아버지의 피부색이며, 농사를 짓느라 탄 농부들의 마음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가을 하루의 입맛이 씁쓸하기만 하다.
#도리깨질 #타작 #들깨 #모종 #이기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