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유리문, 흉기가 따로 없어요

예쁜 엽서 붙이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등록 2007.11.13 15:57수정 2007.11.1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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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마루와 부엌방을 구분하는 미닫이 유리문이 있다. 좁은 방을 가로지르는 문이라 보온도 할 겸, 공간도 시원하게 보일 겸 투명 유리문으로 달아 놓았다. 투명 유리문으로 달아 놓으니 시야도 훤히 트이고 빛도 들어와 좋은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말았다.


주인이나 손님이나 조금만 부주의해도 닥치기 십상인 불상사, 바로 유리문을 들이받는 것이었다. 이마에 혹이 생기는 것은 그렇다 치고 자칫 잘못해 눈이라도 상하면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다.

매사에 조심성이 없는 내가 어제(12일)도 한 건 하고 말았다. 한여름에는 내내 한쪽 문을 열고 살아 마음대로 드나들던 그 습관이 그대로 굳어져 닫힌 유리문을 그대로 들이박고 만 것이다. 앞짱구에 혹하나 더 단 것은 물론 안경테 한쪽이 그대로 비틀어지고 말았다.

a  차 한 잔의 여유, 나무 받침에 올라앉은 하얀 찻잔의 품위가 옛 여인의 앉음새를 닮았다

차 한 잔의 여유, 나무 받침에 올라앉은 하얀 찻잔의 품위가 옛 여인의 앉음새를 닮았다 ⓒ 조명자


a  부엌방 쪽의 엽서. 어느 사찰의 만세루일까? 시원한 능선이 찻상에 따라나오는 유과맛을 닮았다

부엌방 쪽의 엽서. 어느 사찰의 만세루일까? 시원한 능선이 찻상에 따라나오는 유과맛을 닮았다 ⓒ 조명자


몸무게를 있는 대로 실어 유리문을 들이받았기 때문에 충격도 더욱 컸다.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벌겋게 부풀어 오른 이마를 잡고 쩔쩔매는데 그 와중에도 눈 다치지 않은 것만도 '하느님'이란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 후배 남편이 어느 빌딩 유리문을 들이받아 얼굴을 수십 바늘 꿰매는 중상을 입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후배 남편도 유난히 거구라 그 체중만큼 충격이 강해 유리문이 그만 깨져버렸다는 것이다.

깨진 유리문을 뚫고 얼굴이 나갔으니 어쨌겠는가. 유리 파편에 찢긴 얼굴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조폭’ 패싸움 몰골을 보는 참상이었다. 다친 얼굴을 치료하고 흉터까지 성형을 하느라 생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지만 그래도 실명을 면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두 ‘불행 중 다행’이란 말로 위로를 대신했다.


나와는 달리 매사에 조심성이 있고 찬찬한 성격인 남편도 들이받는 형편이니 이 유리문을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투명 창을 뿌연 창으로 바꾸자니 돈도 들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예쁜 스티커를 붙어 유리문이라는 걸 표시하자는 것이었다.

a  사찰 창살 무늬 엽서. 마루 쪽 유리문에 붙였다

사찰 창살 무늬 엽서. 마루 쪽 유리문에 붙였다 ⓒ 조명자


a  또 다름 창살무늬, 혹시 그 유명한 내소사 대웅전 창살 무늬인가?

또 다름 창살무늬, 혹시 그 유명한 내소사 대웅전 창살 무늬인가? ⓒ 조명자


문방구를 뒤져 보고 백화점도 나가 봤지만 아이들 수준을 벗어난 고상한(?) 스티커를 찾기가 쉽질 않았다. '궁즉통'이다. 스티커 대신 예쁜 엽서를 사용하기로 했다. 언젠가 여기저기에서 받아놓은 엽서 종류가 꽤 여러 장 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책상 서랍을 홀딱 뒤집어 그중에 거실 겸 부엌방에 어울리는 그림을 찾아냈다. 한쪽만 붙이면 맞은 편 쪽이 허옇게 드러나니까 그쪽도 똑같이 붙이기로 했다. 방 쪽으론 분위기에 어울리게 찻잔이 있는 풍경을 붙이고 마루 쪽엔 사찰 창살 무늬 엽서를 붙였다.

양쪽에 엽서 네 장을 붙이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허공에 엽서가 나란히 붙어 있으면 들이받으려고 준비 '땡' 하다가도 주춤할 것 아닌가. 부엌방과 마루를 가로지르는 허공에 차상이 놓여있다. 그 차상을 올려다보며 차 한 잔 우리는 여유, 나름대로 운치를 만끽하는 기분이 그럴 듯하다. 투명 창 밖의 풍경. 담장 위를 덮은 빨강 색 마삭(삼으로 꼰 밧줄) 줄 단풍에 내려앉은 가을빛, 해맑다.
#투명 유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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