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공화국'... 자포자기할 때 아니다

[손석춘칼럼] 지역 곳곳에서 일어나는 정치운동을 보라

등록 2007.11.19 08:07수정 2007.11.1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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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7일 오후, 동화면세점 앞 인도에서 참여연대 회원들이 삼성 불법 규명을 촉구하는 국민운동을 진행하면서 삼성 이건희 회장의 탈을 쓰고 여러가지 퍼포먼스를 펼쳤다.

17일 오후, 동화면세점 앞 인도에서 참여연대 회원들이 삼성 불법 규명을 촉구하는 국민운동을 진행하면서 삼성 이건희 회장의 탈을 쓰고 여러가지 퍼포먼스를 펼쳤다. ⓒ 윤대근

17일 오후, 동화면세점 앞 인도에서 참여연대 회원들이 삼성 불법 규명을 촉구하는 국민운동을 진행하면서 삼성 이건희 회장의 탈을 쓰고 여러가지 퍼포먼스를 펼쳤다. ⓒ 윤대근

 

한국 정치는 지금 ‘겨울’이다. 돈에 휘둘려 정치가 실종되고 있다. 대통령선거를 30일도 남겨두지 않았음에도 그렇다.


기실 정치에 철학이 없을 때 자본이 판칠 수밖에 없다. 조직이 오직 돈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어서다. 삼성그룹의 ‘비자금’은 생생한 증거다. 더러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장삼이사가 두루 안다. 문제는 검찰이 얼마나 증거를 확보할까, 아니 확보할 의지의 여부에 있다.


삼성이 천문학적 규모의 검은돈을 만들어 정계를 비롯해 검찰, 국세청, 금감원, 언론으로 이어지는 국가 체계 전반을 부패의 사슬로 묶은 게 확인된다면, 이는 명백한 ‘반국가사범’이다. 민주공화국의 국가 기구 전반을 뇌물로 더럽힌 극악 범죄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란 쉽지 않다. 보라. 겉으론 언죽번죽 특검에 찬성하며 뒷전에서 딴 전 부리는 저들을. 은근히 특검 도입을 가리트는 저들을. 그 행렬에 청와대까지 줄 선 풍경은 돈이 한국 정치판에 얼마나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그래서일까. 한국 사회는 어느새 돈에 무덤덤하다. 평범한 노동자가 보기엔 천문학적 재산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건물관리 회사에 자녀들을 위장 고용해가며 월급을 주는 탐욕을 보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다못해 미국이나 일본 정계를 가정해보라.

 

이명박 후보의 자녀 위장고용은 당장 사퇴할 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전혀 아니다. 말로 사과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탈세나 불법이 아니라며 되레 도끼눈을 홉뜬다.

 

미국이나 일본 정계라면 사퇴할 후보가 사과했다며 당당

 

돈은 심지어 풀뿌리 민주주의까지 샛노랗게 물들인다. 전국 곳곳에서 지방의회 의원들이 자신의 활동비를 큰 폭 올리고 있다. 대선 정국을 노렸다. 경쟁적이다. 기막힌 일이다. 1년 전만 하더라도 무급이었기에 더 그렇다. 그들이 대변한다는 지역주민 대다수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겠다고 나서는 부라퀴들은 되레 당당하다. 최고 98%까지 올려놓고도 그렇다.


딴은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지방의회 의원들로서는 왜 사소한 것에만 화내느냐고 눈 흘길 수 있다. 비단 이명박 후보의 자녀 위장고용 사건만이 아니다. 삼성 공화국 아래 썩어 문드러진 정치판에서 굳이 지방의회 의원들을 겨냥하기란 민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찬찬히 짚어볼 일이다. 풀뿌리마저 썩어간다면 이 땅의 민주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캄캄한 절망이다. 지방의회만이 아니다. 지자체 단체장들은 대한민국에서 저마다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돈 뿌리 왕국’으로 변질 된지 오래다.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한나라당이 모두 장악한 지역이 대다수라 더 그렇다.


그러나 결코 절망만 할 일은 아니다. 희망이 싹트고 있지 않은가. 지방의회를 살리려는 ‘민초’들이 곳곳에서 일어서고 있다. 가령 ‘구리바로세우기 시민연대’(구바세)는 의정비 인상반대 1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갑자기 의정비를 연 4950만원으로 39.83%나 올렸기 때문이다.

 

구바세의 정경진 대표는 “시민들이 뜨거운 반응을 넘어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의정비를 53.3%나 올려 연 5700만원으로 결정한 서울 송파구에서도 시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의정비 인상에 반대하는 조례개정안을 직접 발의했다. 서울과 경기도 만이 아니다.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도 비슷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중앙기구에서 지방의회까지 부라퀴들의 정치 독점

 

그렇다. 언론이 모르쇠할 뿐이다. 전국 곳곳에서 풀뿌리들이 정치운동에 나서고 있다. 전국적 연대로 조직화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망할 일이 결코 아니다.


기실 지방의회만의 문제가 아니잖은가. 무릇 대통령과 장차관, 국회의원, 고위공무원, 지자체단체장, 지방의회 의원에 이르기까지 저들이 달마다 받는 돈은 모두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 국민이 주권자임을 헌법에서 규정한 까닭이기도 하다. 

  
바로 그래서다. 중앙 국가기구는 물론이고 지방의회까지 문어발처럼 뻗치고 있는 저 부라퀴들의 정치 독점을 방관만 할 일이 결코 아니다. 대선 여론조사 앞에서 자포자기할 때도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아래로부터 힘을 모아 정치 주권을 찾아올 실천을 모색할 때다. 언론이 눈길 주지 않는 지역 곳곳에서 일어나는 정치운동에 눈 돌릴 때다. 전국적 연대도 모색할 때다.


한국 정치를 바로 세울, ‘돈 공화국’을 바로 세울, 범국민적 정치운동의 새싹이 ‘겨울 정치판’에서 맹렬하게 돋아나고 있다.

2007.11.19 08:07ⓒ 2007 OhmyNews
#풀뿌리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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