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마을'충효의 고장 어진 다인'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착하고 어진 사람들인가 봐요. 여기에서 나는 쌀도 '어진쌀'이랍니다.
금오바이크 (배상철 회장)
자전거를 타고 여럿이 달리다 보면, 두세 개 조로 나뉘는데, 나는 오늘따라 '선두 조'에 끼어서 갈 때가 많았어요. 오르막길을 천천히, 그러나 온힘을 기울여 올라가고 있는데, 손전화 음악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어요.
"어디로 간 거야? 마을로 올라간 거 아니야?" 하하하, 이럴 수가! 남편이 아까 마을로 들어서기에 앞서서 오줌이 마렵다고 한쪽으로 비켜 서 있더니 그새 우리를 놓친 거였어요. 나중에 들었는데 볼일을 보고 바로 따라와 보니, 사람들이 마을로 올라가는 걸 틀림없이 봤는데 아무도 없더래요.
더구나 거긴 갈림길이라서 너른 쪽 길을 따라갔더니, 난데없이 남의 집 대문만 있는 막다른 골목이었대요. 그렇게 헤매는 바람에 우리와 많이 뒤처져 있었던 거죠.
길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나니 애고, 그새 나와 같이 가던 이들은 저기 고갯마루까지 올라가서 막 모퉁이를 돌고 있었어요.
"에잇! 전화받다가 선두를 놓쳤잖아!"이렇게 투덜대면서(?) 부지런히 따라갔어요.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충효의 고장 어진 다인'이란 돌비가 우뚝 서 있어요. 이 마을에서 나는 쌀을 '어진쌀'이라고 한다는데, 어진 사람이 많은 마을인가 봐요.
나는 앞서간 사람 따라잡을 욕심에 이 돌비밖에 못 봤는데, 나중에 회장님 이야기를 들으니 여기가 바로 '비릿재'라는 고개래요.
'비로재'라고도 하는 이 고개는 지난날 신라 진흥왕(360년)이 이곳을 지나다가 지름 50cm 남짓 되는 차돌을 보고 이상히 여겨 몸소 들어보았다고 해요. 그런데 그 뒤로 이 길을 지나가던 선비나 장수 가운데 이 큰 돌을 들지 못하면 재를 넘다가 도둑한테 목숨을 잃었다고 해요. 그리고 도적떼한테 당하여 흘린 피가 이 바위에 스며들어서 비린내를 풍긴다 하여 '비릿재'로 일컫는다고 합니다.
비릿재 고개를 지나 곧장 달려가니, 얼마 앞서 우리가 와봤던 '대곡사' 들머리가 나오고 그 앞에 '독점산 임도'가 보였어요. 본디 오늘 계획에는 이 임도까지 모두 타보려고 했지만 시간을 가늠하니 너무 빠듯한데다가 날씨까지 추워 지보에 가서 점심을 먹고 곧장 간다고 해도 구미까지 닿으려면 꽤 늦을 듯했어요. 아쉽지만 이 임도는 해가 긴 여름으로 미루고 지보마을로 바로 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