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스터리 멜로는 바로 이런 것

등록 2007.11.21 11:54수정 2007.11.2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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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가 미스터리 멜로를 들고 나왔다. 이는 < M >이 멜로를 미스터리화하는 방식을 취한 영화라는 의미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는 한 주제에 몰입하기 위해 애써 멜로를 지웠다. 신파적인 부분, 구원되는 부분을 과감히 삭제함으로써 '인간은 누구나 가해자다'라는 콘셉트를 밑바탕에 깐 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버젓이 폭력은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은 생소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데 성공했다. 이렇듯 감독들은 자기들의 콘셉트에 맞추기 위해 장르를 일부러 죽이기도 혹은 다른 장르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 M >은 태생이 멜로다. 그것도 전형적인 멜로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오해, 그리고 이별 , 더욱이 가슴 아픈 비명들을 어김없이 이 영화에서도 찍어내고 있다. 더욱이 그 오해를 일으키는 방식은 몇 번이나 다른 영화에서 울궈먹었던 고전적인 수법. 즉, 핸드폰이 없던 시절. 그녀의 급작스러운 사고를 소설가 한민우(강동원)가 알지 못하게 되고 거절당한 것으로 오인한 그가 처절하게 괴로워한다는 것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 M >은 여기에다 소설가 한민우(강동원)가 그녀의 기억을 지워버린다는 것을 첨가한다. 뒤늦게 그녀에 대한 기억을 찾아가는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 M >이 미스터리적 요소 또한 끌어 들이기도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M >은 통속적인 멜로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다른 멜로와는 달리 미스터리적인 맛이 강하다.

 

그것은 초반부 1시간 동안 혹은 끝나기 10분 전까지도 미스터리의 비릿한 냄새를 걷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속의 그녀와의 사연은 10분 전부터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감독은 장장 60분 가량을 소설가 한민우(강동원) 고유의 행적을 미장센으로 삼아 '콱' 박아 놓고 있으며 플롯을 뒤죽박죽해 놓은 것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정보만을 아주 조금씩 조각들을 제시하고, 미스터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는 후반부에 배치하는 등 미스터리 장르의 공식 또한 답습하고 있다.


즉, 초·중반부에는 누군가에 쫓기는 두 남녀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데 여기서 남자는 한민우고, 여자는 미미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한민우가 기억 속의 그녀를 완전히 지워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증상이며 미미 역시 자기가 죽은 것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채 저승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세상에 남아 있는다는 설정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기억을 없애버릴 수 있다는 것. 순간적으로는. 그러나 언젠가 그 기억은 수면을 뚫고 현실에 펼쳐진다는 것. 과거에 이겨내지 못한 채 지워진 기억은 언젠가 꼭 풀어야 할 숙제처럼 기억 어딘가 처박혀 있다는 것.


< M >에서 미스터리의 진수는 가능한한 이 작품의 뼈대가 멜로라는 정보를 늦게 노출한다는 것이다. 결국 후반부에 그것도 거의 끝날 무렵에 '멜로'는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진실은 한 여자를 사랑했고 순식간에 닥친 집안 풍파에 그녀를 버려두고 온 두 달. 그 두 달 후 그녀를 찾고자 했지만 그녀는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는다는 진실은 애써 그녀와의 기억을 지우려는 그의 의지에 힘입어 수년 후에야 그녀에 대한 기억은 소설가 한민우(강동원)에 의해 발각된다.

 

초반의 한 시간은 이런 의미에서 뒤에 나올 통속적인 멜로를 부각시키기 위한 중요한 포석이다. 이러한 미장센이 없었다면 그저 영화 < M >은 통속적인 멜로로 그것도 모든 공식을 변형할 의지도 없는 짜집기로서 그저 그런 영화로 전락할 뻔했다. 그러나 멜로를 미스터리화한 초반의 60분 덕분에 통속적인 멜로가 아닌 그의 첫사랑인 그녀의 절절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피부에 와닿게 현실화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명세 감독만의 색감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1시간에 자신의 스타일을 철저하게 아로새긴 것이다. 첫 장면에 타자로 친 것이 비로소 미미(이연희)의 입으로 토해져나올 때 감각적인 리듬과 함께 말이다. 즉, 나는 나중에 당신이 아주 많이 슬퍼했으면 좋겠어. 슬픈 영화 말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다가도 문득 내 생각 나서 펑펑 울었으면 좋겠어…. 그것이 미미(이연희)의 말이었음이 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진다.


강조하지만 이명세는 초반 1시간을 한민우(강동원)에게만 집중한다. 바로 여기서 소설가로서 예술가의 감수성이라든지 그네들의 머릿속을 한껏 관음할 수 있다. 후반부에서도 역시 특히 소설가의 시니컬한 창작 과정의 세밀한 묘사가 압권이며 이렇듯 제작자가 하는 행동을 자신이 한 것으로 바꿔 창작하는 행위를 목격한 순간에는 폭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다. 그것을 타자를 치며 연기해내는 강동원의 모습에서는 신들린 듯한 느낌조차 난다. 이것이 현실인가 상상인가 혹은 꿈인가 현실인가, 끊임없이 이 작품에서 나오는 화두는 흥미롭다.

2007.11.21 11:54 ⓒ 2007 OhmyNews
#M #이명세 연출 #미스테리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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