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마을버스 정류장 풍경

해운대 동네 한바퀴 도는 10번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등록 2007.11.22 20:04수정 2007.11.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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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직도 버스표를 파나요 ? 토큰이 사라진지 언제인데요 ?

아직도 버스표를 파나요 ? 토큰이 사라진지 언제인데요 ? ⓒ 송유미


시내버스가 시민들의 자가용이라면, 마을버스는 시민들의 자전거가 아닐까. 부산은 유달리 산복 도로가 많고 대개 주택들과 아파트들이 산자락에 많이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자전거가 교통수단으로 일반화되지 못한 듯하다. 그래도 시원하게 도로 계획이 잘된 큰 아파트 단지에는 의외로 자전거들이 많이 보인다.


자전거로 통근과 통학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부산. 주로 학생들과 차가 있어도 갖고 나오기 번거로운 사람들은 주변의 동네를 한 바퀴 도는 데 마을버스를 많이 이용한다. 시내버스보다 가격이 싸기도 하지만, 가까운 거리는 마을버스가 편하다. 여름철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버스정류장 벤치는 사랑방 구실을 했지만,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동네 마을버스 정류장 벤치는 인기가 없어졌다. 모두들 삼삼오오 양지바른 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모처럼 수인사 나눈다.

a 그늘은 싫어, 난 여기서 버스 기다릴테야. 어디 가는 길인데요 ?

그늘은 싫어, 난 여기서 버스 기다릴테야. 어디 가는 길인데요 ? ⓒ 송유미


"어디 가세요?"
"김장 했어요?"


추위로 뜸한 나들이와 시장에 가기 위해 나온 주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중 2동 마을버스 정류장은 아직도 버스표와 토큰을 파는 것을 착각하게끔 옛날 팻말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왠지 정겹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옛날식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덜컹거리는 마을 버스를 기다리면 잊혀진 여러가지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버스 차장아가씨가 있는 옛날 만원 버스 생각도 난다. 버스 값은 그래도 다른 물가에 비해 천천히 오르는 편이다. 700원하던 마을버스 요금이 850원으로 올랐다. 그래도 시내 버스보다는 150원이나 싸서 왕복 300원 아끼기 위해 자주 오지 않는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재래시장, 은행, 마트, 구청, 동사무소 등 가까운 거리의 볼일을 보려면 아무래도 시내버스보다는 마을버스가 편하다. 달맞이와 좌동, 신시가지의 아파트 단지를 지나 해운대 시내로 회귀하는 마을버스 정류장은 많지만 그중 가장 허름하고 사람냄새가 나는 버스정류장은 아래 사진에 나온 곳이다. 여기서는 누굴 만나든 푸근한 이웃처럼 정겹고 허물이 없다.


a 해운대의 좌동, 중동, 달맞이로 한 바퀴 도는 마을 버스 정류장은 너무 영화 속 같아요.

해운대의 좌동, 중동, 달맞이로 한 바퀴 도는 마을 버스 정류장은 너무 영화 속 같아요. ⓒ 송유미


a 넌 어디가니 ? 학원 다시 가야해요.

넌 어디가니 ? 학원 다시 가야해요. ⓒ 송유미


"어머 너 어디가니?"
지난 여름 마을버스 기다리는 모습이 내 카메라에 찍혔던, 꼬마 여학생을 다시 만났다.

"지금 학원에 다시 가야해요. 깜박 뭘 두고 와서요."
오며 가며 서너번 만난 동백초등학교 다닌다는 3학년의 꼬마 여학생은 울상이다.


"버스가 진짜로 안 와요."
"아니야. 금방 올거야."

낡고 낡아서 페인트 칠이 벗겨진 긴의자에는 학생들이 낙서를 했는지, 여러가지 사연이 적혀 있다. 이 마을버스 정류장에 오면, 한편의 수채화 같은 단편영화를 찍고 싶은 욕심이 난다. 푸른 대숲과 고운 단풍잎이 차곡차곡 쌓인 숲길도 있다. 여느 동네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람냄새가 나는 중2동 버스 정류장. 이 버스 정류장이 곧 재개발로 사라지면 이곳에서 만나 정을 나누던 이웃들이 그리워질 것 같다.

a 의자의 속살 깊이 새긴 정다운 사연과 이웃의 이름들 모두 모두 비망록처럼 기억하리라.

의자의 속살 깊이 새긴 정다운 사연과 이웃의 이름들 모두 모두 비망록처럼 기억하리라. ⓒ 송유미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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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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