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 후보가 왜 사과해야 하는가

[반론] 박상규 기자의 "그래도 문국현은 믿었는데..." 기사를 보고

등록 2007.11.28 10:51수정 2007.11.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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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칙에 가장 크게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면, CEO 아버지도, 억대의 주식과 통장 잔액도 없는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일 것이다. 문 후보의 진심어린 사과는 그래서 필요하다."-<오마이뉴스> "그래도 문국현은 믿었는데..." 중에서

 

왜 문 후보의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다. 경실련, 시민의신문 등 시민사회 내부에서 그를 지켜봐온 경험적 판단이었다.

 

향후 한국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의 모임을 만든다는 취지의 한 카페가 있다. 그곳에서 필자는 문 후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다음과 같이 거론한 적이 있다.

 

"시민의신문에 있을 때 문 사장 스스로가 한 말을 기억합니다. '저는 자본가입니다. 세련된 자본가'… 결론은 한국 기업가와 달리 '양심적이다' 내지는 '세련됐다'는 정도다. 즉, 삼성, 현대, 대우, 엘지 등을 비롯한 한국 대기업들이 그동안 얼마나 비양심적이고 반환경적이고 비윤리적이며 반노동자적이었는지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잘못된 기업풍토에서 소신을 가지고 기업을 운영했고, 성공신화를 이루었다."

 

비정규직 자녀 문제에 대한 사과 요구는 적절한가

 

a  17대 대통령선거의 공식 선거일정이 시작된 27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을 찾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가 거리유세를 벌이고 있다.

17대 대통령선거의 공식 선거일정이 시작된 27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을 찾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가 거리유세를 벌이고 있다. ⓒ 남소연

17대 대통령선거의 공식 선거일정이 시작된 27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을 찾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가 거리유세를 벌이고 있다. ⓒ 남소연

나도 문 후보가 두 딸이 비정규직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한국 노동자의 6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현실에서 다국적 기업의 동아시아 CEO의 딸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언론이나 일반적인 시각은 문 후보의 두 딸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에 집중할 뿐,  후보의 두 딸이 어떻게 비정규직이 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아버지가 다국적 기업의 동아시아 CEO라는 사실은 별개의 사실인 것처럼 인식하는 듯 했다.

 

성공적이고 양심적이고 세련된 다국적 기업의 CEO가 가난해야 하고 그 자녀들도 가난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자체가 비이성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 후보의 경력이라면 당연히 그에 걸맞는 대가 즉, 부의 축적이 뒤따른다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이치다.

 

137억원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땡전 한푼 건네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상상 속에서 문 후보를 포장하고 이미지화한 언론의 무책임성에 기인한다.

 

문 후보의 재산을 사망 후 전액 사회에 기부하거나 의미있는 일에 사용하는 것과 자신의 능력에 따라 거둔 성공의 결과를 자녀들에게 일부 투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두 딸이 비정규직이라서 문국현 믿었나?

 

박상규 기자는 문 후보처럼 성공을 이룬 다음에도 자녀들에게 1원 한푼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신념의 소유자인지 모르지만, 평범한 시민들은 그 중 일부를 자녀들에게 이양하는 것을 고민하게 되고 일부는 기쁘고 뿌듯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문 후보만큼의 자산을 보유하지 않았어도 말이다.

 

박 기자의 논리를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모두가 비정규직이 되어야 하고 모두가 자신이 노력한 대가를 자녀들에게 주면 죄악이 되는 것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문 후보가 재벌 2세, 3세처럼 자신의 노력없이 기업의 CEO가 되었다면 문제가 된다. 그러나 문 후보는 그런 경우와 전혀 다르다. 자신의 노력으로 다국적 기업의 동아시아 CEO가 되지 않았는가.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우열이 존재하고 그 결과에 따른 대가가 달라진다. 민주주의 사회는 기회의 균등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거둔 성과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는 문국현 후보에게 신뢰를 보낸 이유가 두 딸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 때문인가. 그렇다면 박상규 기자는 <오마이뉴스>에서 비정규직인가? 정규직 기자 아닌가?

 

만약, 독자들이 박상규 기자가 오마이뉴스 비정규직 기자여서 '그래도 믿었는데' 알고 보니 정규직이어서 '정말 믿을 사람 하나도 없구만'이라고 하면 수긍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문 후보에게 비판적이라는 박 기자의 선배가 '능력 여부를 떠나 정치 입문 4개월 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 정당정치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는 것도 매우 우려스러운 인식 수준이라는 점에서 더 우려스럽다.

 

한국 사회가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냉전수구시대, 개발독재시대로 회귀할 정도로 빈약한 민주주의라면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이나 사장이 바뀌면 <오마이뉴스>의 개혁성, 진보성이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천박한 인식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그토록 수준이 낮고 깊이가 얕은 것인지 되묻고 싶다. 

 

한나라당·통합신당이 문 후보 비판할 자격 있나

 

"물론 그의 두 딸은 비정규직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억대의 재산을 갖고 있는 비정규직을, 우리 사회 85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등치시킬 수 없다. 신념과 정치적 이유로 가난을 선택한 사람과, 피할 수 없는 가난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생각하는 '가난'의 의미가 다르듯 말이다.'-<오마이뉴스> "그래도 문국현은 믿었는데..." 중에서

 

물론 문국현 후보가 두 딸의 재산 총액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논란의 불씨를 남긴 것은 사실이다. 두 딸은 총 5억8000만원의 주식과 통장예금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1억이란 돈도 만져본적 없는 소시민인 필자에게는 매우 큰 금액이다. 

 

현재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경우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 대선후보로 나설 때 재산총액이 10억원을 초과했다. 당시 필자는 노동자·서민의 후보라던 권 후보가 10억원대 자산가라는 사실에 내심 혼란스러웠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는 권영길 후보나 문국현 후보 모두 전세에 살아야 하고, 비정규직이어야 하며, '88만원 세대'여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닌 논리다.

 

한나라당이나 통합신당의 비판을 언급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국민을 위한답시고 선거운동을 하는 한나라당은 이미 그 정책과 의정활동에서 부자들의 정당인 것이 드러났으며, 통합신당은 한나라당과 별 차이도 없는 그 밥에 그 나물인 정당이라는 이야기가 주변에서 쉽게 들린다.

 

문 후보가 두 딸을 자신의 선거운동에 '알게 모르게 활용'했다는 것이 비난받을 일이라면,  기성 정당은 사실로 드러난 일도 사실이 아니라며 남의 탓만 해왔는데 그런 정당들의 비판 주장을 인용하며 문 후보에게 비판의 삿대질을 할 수 있을까.

 

한나라당, 통합신당의 비판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옛말에 꼭 들어맞는 경우다. 이런 정당의 논리를 인용하여 자신의 서운함을 표명하는 것은 4살짜리 어린 아이의 투정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신념과 정치적 이유로 가난을 선택한 사람과, 피할 수 없는 가난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생각하는 '가난'의 의미가 다르다는 지적도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80년대와 90년대 학생 운동권에서 자신의 운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웠던 논리다. 변화한 시대에 걸맞지 않는 명제라 할 수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다국적 기업 아시아 CEO가 스스로 가난을 택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문 후보는 테레사 수녀처럼 성자가 아니다. 그도 지극히 평범한 동시대 인물이며 인간은 시대적 한계를 뛰어 넘기 어려운 존재다.

 

스스로 선진적 자본가라 칭하고 있는 그에게, 일반적으로 가난을 탈피하기 위해 피땀 흘려 노동하는 이들에게도 맞지 않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아닌가 싶다. 심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2007.11.28 10:51ⓒ 2007 OhmyNews
#문국현 #대선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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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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