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고개 청사포에 솟은 달, 해월정사

성철스님 맏상좌 천제스님에게 듣는 봉훈관의 의미

등록 2007.12.12 12:07수정 2007.12.1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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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정사 전경 해운대 달맞이 고개 와우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 청사포 맑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성철 스님은 수행에 지친 몸을 이 곳에서 쉬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친필을 보면 그의 종단 개혁에 수많은 저술이 이곳에서 초안이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 정근영


해운대엔 달맞이고개가 있다. 정월대보름이나 한가위 밤이면 사람의 파도로 발디딜 틈새조차 찾기 힘든 거리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달에 열광하는 것일까. 달,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달맞이길에 서서 달의 의미를 새겨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국어시간에 처음으로 배운 달 노래가 생각난다. ‘달 달 무슨 달, 쟁반 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고등학교 국어시간엔 또 이런 노래도 배웠지. ‘달아 높이곰 돋아사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달은 우리 가슴 속에 빛으로 희망으로 우리 삶의 길잡이로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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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정사 일주문 한글로 해월정사라 쓴 현판이 눈길을 끈다. ⓒ 정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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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광전 뒷벽의 벽화 절집에서 보기 드문 수묵화 벽화다. 해운대 너른 바다를 보는 듯 한 그림이다. ⓒ 정근영


해운대 달맞이 고개를 넘어 청사포에 가노라면 전통 사찰과는 사뭇 다른 절집을 만난다. 산신각도 없고 칠성각도 없다. 화려한 단청도 없다. 경내도 좁다. 하지만 이 절은 금세기 들어 생불로 존경받던 성철스님이 쉬던 절이다.

성철스님은 조계종의 종정이셨다. 종정이셨지만 조계종의 본산인 조계사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종정스님이 조계사를 외면한 것은 대통령이 청와대를 들어가지 않는 것과 같다. 바리때 하나와 가사 한 벌로 평생을 사셨던 스님은 세속의 권력은 물론 종단의 권력도 멀리하셨다. 종정, 그에겐 이름뿐인 직책이셨지민 종정으로 남긴 업적은 과거 어느 종정 스님보다 더 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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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형제의 다정한 만남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을 스승으로 모신 법형제다. 해월정사 회주 천제스님(오른쪽)이 미국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원영(왼쪽) 스님을 맞아서 봉훈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정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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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훈관안의 세계 각국의 대장경. 팔만대장경, 신수대장경을 비롯해서 세계 각국의 대장경이 진열되어 있다. 성철스님의 손때가 묻은 대장경이다. ⓒ 정근영


성철스님의 누더기 가사와 빈 밥그릇은 이 나라 불교를 법난에서 구해냈고 많은 중생의 귀의처가 되었다. 성철 스님이 있었기에 한국 불교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성철스님은 우리 시대의 달이 되어 저 하늘 높이 떴다. 아니 해운대 달맞이 고개 해월정사에서 달로 솟았다.

해월. 해운대의 달, 아니 바다와 달. 바다는 깨달음의 세계라고 한다. 그 깨달음의 빛이 달빛으로 쏟아지는 해월정사. 성철 스님의 깨달음의 광명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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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전 4층은 비로전, 3층은 시월전, 2층은 선실이다. 부처님에게 참배하고 성철스님의 체취를 느낀 뒤 선실로 내려와 조용히 마음을 찾는다. ⓒ 정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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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전 내부 좀체 보기 어려운 성철스님의 친필이다. 일력을 찢어서 그 뒤에다 글을 썼다. 종이 한 장이라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성철스님의 검소한 생활태도를 볼 수 있다. ⓒ 정근영


해월정사는 4179평방미터의 터에 건축면적은 436평방미터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관음전, 오른쪽으로는 와우산방, 가운데에는 해월전, 적광전이다. 이 뒤에 해월정사의 핵심 건물이라 할 수 있는 성철스님 봉훈관이 서 있다.


성철스님 봉훈관은 4층 건물로 1층은 사무실, 2층은 선실, 3층은 시월전, 4층은 법당이다. 시월전은 달을 보는 전각이란 듯인데 바로 성철 스님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친필을 보관한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 시대의 달로 솟은 성철스님의 그림자를 뵙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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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친필 일력의 뒷면에다 썼다. 덕분에 당시의 날짜를 분명히 알 수 있다. ⓒ 정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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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전 비로자나 부처님은 진리를 부처로 상징한 것이다. 선종의 88불을 모셨다. ⓒ 정근영


시월전에는 용성 스님, 동산 스님, 성철 스님의 초상화를 모셔 놓았다. 불교가 석가모니에서 일어났다면(기), 용성스님(승), 동산스님(전), 성철스님(결)으로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 해월정사 회주인 성철스님 맏상좌 천제스님의 견해다.

천제 스님은 경인년 6·25의 전쟁통에 병을 얻어 돌아가신 아버지의 재를 통영 안정사에서 지내게 되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성철스님을 만나게 되었고 열다섯 살 어린 나이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이후 평생을 성철스님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성철스님 문하에서 10년 넘게 행자 생활을 했지만 상좌를 두기 싫어하는 성철스님은 그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스님을 천거하며 그리고 가서 중이 되라고 했지만 한사코 성철스님 곁을 떠나지 않아 마침내 스님의 맏상좌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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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형제의 대화 성철스님 법하에서 동문수학한 법형제 두 분이 저 멀리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바다위에 솟은 달, 해월은 깨달음을 의미한다. ⓒ 정근영


- 천제 스님의 출가동기와 성철스님을 만나게 된 기연을 듣고 싶습니다.
"전란으로 병을 얻어 돌아가신 부친의 49재를 모시기 위해 성철 은사스님을 찾아가 재를 올린 것이 제 출가의 동기입니다. 그 곳이 지금은 터만 남은 통영 안정사 천재굴이었습니다. 속세의 부친을 여의고 출세의 부친을 만나 평생 모시고 산 것이 나의 생애이기도 합니다."

- 성철 스님은 생불로 존경받는 큰 스님이었습니다. 그 분의 삶은 어떠하셨는지요?
"새로운 불교의 중흥을 계획하고 계신 것이 벽발산 천재굴의 시절이시었고 불교의 가르침을 정리하신 것이 팔공산 성전암의 시기이며 그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것이 운달산 김용사 에서였습니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총림을 세우고 뜻을 펴신 것이며 가마산 해월정사에 오는 시절의 가르침을 부촉하신 것이 성철 종사님의 일대기라 할 것입니다."

- 성철 스님은 종정으로 추대되시었으나 가야산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스님은 비서실장으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서실장으로서 성철 스님의 뜻을 종단행정에 어떻게 반영하셨는지?
"해인총림 방장으로 한국 불교의 기틀을 정립하시고 종정으로 추대되시었으나 행정은 총무원장에게 맡기고 하산하지 않으시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원장스님의 간청으로 총무원에 비서실을 두고 그 연락의 사무를 제가 맡아 심부름을 한 것입니다. 일체 종무행정에는 간섭하지 말라는 당부가 계시었음으로 종단 발전과 종도들의 권익수호에 종정스님의 지혜를 전달하는 일을 한 것입니다."

- 해월정사는 언제 창건하셨습니까? 성철스님이 해월정사에 얼마나 머무셨으며 그때 해월정사에서 신자들에게 말씀하신 법문을 소개해 주십시오.
"무리한 수행 정진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서 요양하는 장소가 필요하여 물색하던 중 봉훈관 터를 훌륭한 자리라고 칭찬을 하시었음으로 서른 해 전 해월정사를 건립했습니다. 휴양차 자주 머무시었지만 신도들이나 기자들의 출입을 금지했음으로 해월정사에서는 한 번도 법회를 연 일이 없었습니다."

- 해월정사에 성철스님의 봉훈관을 만든 동기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성철 스님은 해인사에 오래 계시었습니다만 평생 메모하신 친필은 해월정사에 두시었습니다. 오는 시대의 불교는 해월정사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계시로 생각되어 친필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드는 기념의 공간을 만들기를 서원하여 봉훈관 건립을 시작하고 불자님들의 도움으로 14주기 추모재일에 친필전 시월전을 개관하게 된 것입니다.

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가까스로 개관을 한 것이 부처님의 가호로 여겨져 감사를 드리고 도와주신 불자님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종사님의 마음이 담긴 친필을 친견하고 바로 불지를 증득하는 불자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하면서 오는 시대의 지남이 되고 등대가 될 것을 기원드립니다."

- 성철스님의 가르침을 펴기 위해서 해월정사에서 하시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법회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불자들에게 법회 안내도 부탁드립니다.
"(중국) 오대산 문수전에서 봉훈관 건립을 서원 기도하고 불사를 진행하면서 음력 새달 초하루 날 봉훈의 법회를 열고 친필을 복사해 나누어 드리고 그 해설을 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벌써 여러 해가 지났지만 계속할 계획입니다. 종사님의 가르침을 기리는 불자들의 동참을 바랍니다."

- 그밖에 부산시민이나 신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새해의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성철스님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모셔온 맏상좌로서 천제스님의 크신 꿈이 해월정사를 통해서 원만히 성취되기를 기원합니다.
"올해 정해년 휘양산 봉암사 결사 60주기를 맞았습니다. 봉암사 결사는 자타가 인정하는 성철스님이 주도하신 한국불교 중흥의 첫 출발입니다. 무속불교의 타파 상업사찰의 근절 사기 승가의 배격이 그 목적이었습니다만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고, 오히려 역행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새 시대 새 불교를 위해 종사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일이 우리의 의무이며 그 역할이 해월정사 봉훈관에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정진할 것을 다짐하면서 불자님들의 더 큰 신심을 기원합니다.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에는 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www.dharmanet.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해월정사는 몇 차례 다녀온 절입니다. 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서 천제 스님을 07년 11월 17일 토요일과 12월 8일 토요일 두 차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www.dharmanet.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해월정사는 몇 차례 다녀온 절입니다. 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서 천제 스님을 07년 11월 17일 토요일과 12월 8일 토요일 두 차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해월정사 #성철스님 #천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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