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 아저씨, 믿어줘서 고맙습니다"

신뢰의 사회가 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등록 2007.12.12 13:48수정 2007.12.1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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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물분리 학교에서 막 돌아온 아이들이 '더아모 15인승' 옆에서 고물을 분리하고 있다. 오늘(금요일) 고생하고 내일('놀토')에는 쉬려는 생각 때문이다.

고물분리 학교에서 막 돌아온 아이들이 '더아모 15인승' 옆에서 고물을 분리하고 있다. 오늘(금요일) 고생하고 내일('놀토')에는 쉬려는 생각 때문이다. ⓒ 송상호

▲ 고물분리 학교에서 막 돌아온 아이들이 '더아모 15인승' 옆에서 고물을 분리하고 있다. 오늘(금요일) 고생하고 내일('놀토')에는 쉬려는 생각 때문이다. ⓒ 송상호

 

딸아이와 고물수집 협약(관련기사 - 딸아이와 고물 수집 협약 맺다)을 맺은 지도 벌써 세 달 째다. 그동안 두 차례나 아이들과 함께 한 달 내내 고물을 모아 팔아 왔다. 2만 2천원, 2만 6천원 등이 2번에 걸쳐 고물 팔아 번 돈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하면 3번째가 되는 셈이다. 

 

딸아이는 그 돈을 가지고 애당초 협약대로 충실하게 휴대폰 사용료를 내고 있다. 휴대폰 사용료를 자동 이체할 통장에서 빠져나가게 만들었기에 딸아이의 고물 판 돈은 바로 통장으로 직행이다. 두어 번이지만 그동안 이상 없이 통장에 돈은 잘 빠져나가고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딸아이와 친구는 고물 모으는 일에 소홀해진 듯이 보인다. 학교 공부하랴 바쁘기도 하겠지만, 처음에 먹었던 ‘초심’이 조금씩 빈틈을 보이기 시작한 것일 게다.

 

 “이렇게 힘들여 한 달 가까이 모아도 이 정도의 액수라면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낫겠다.”

 

딸아이와 친구의 불만이다. 이런 제안을 먼저 한 나로서는 그 불만에 대한 대답을 안 해줄 수가 없다.

 

“야. 아르바이트는 아무나 시켜준다니.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면 거기에 매어서 계속 시간을 투자해야지 않아. 고물 수집은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할 수 있고,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니 시간에 얽매이지 않잖아. 너희들 어디 가서 이런 돈 이렇게 쉽게 못 번다.”

 

협약이 깨질지 모른다는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지만, 빈틈을 수습하기 위해 내가 한 수를 떴다. 내일 바로 그동안 모았던 고물을 팔러 가자고 제의한 것. 오늘이 금요일이니 내일 ‘놀토’에 가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거 웬 걸. 나에게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 내일 고물상에 차로 함께 가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오늘 부리나케 서둘렀다.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차를 대기 시켰고, 함께 차를 타고 와서 고물을 정리했다. 오늘 가기 위해서였다. 초스피드로 고물을 챙기니 벌써 어둑어둑 해졌다. 고물상에 전화를 넣었다.

 

“고물상 사장님. 고물 가지고 우리가 지금 출발하려고 하는데요?”
“아, 이거 곤란한데요. 지금 이제 마치고 다른 모임에 가려던 중인데.”
“사장님. 아시잖아요. 아이들이 중학생이라 평일에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요.”
“그럼. 목사님. 차로 고물을 실고 오셔서 직접 무게를 재시고 그 무게를 적어놓고 가세요. 그럼 제가 온라인으로 붙여 드리죠.”

 

이렇게 고물상 사장과 이야기를 끝맺고 나니 왠지 횡재한 기분이다. 이렇게 여과 없이 믿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싶다. 아이들과 함께 ‘더아모 15인승’에다가 고물을 가득 싣고 고물상에 도착하니 약속대로 고물상 문이 열려있고 불이 켜져 있다.

먼저 ‘계근대(차량 단위로 고물의 무게를 재는 저울 기계)’ 위에 차량 총 중량을 체크했다. 그리고 종이를 내리고 또 차량무게를 쟀다. 그다음은 옷, 고철, 플라스틱, 병 등의 순으로 일일이 내리고 난 후 차량 무게를 쟀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스테인리스로 만든 부엌그릇을 내려 따로 조그만 저울에다가 재었다. 사실 이 스테인리스가 제일 돈이 된다.

 

이렇게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뭐가 얼마나 무게가 나왔는지 계산하여 적고 난후 총 가격을 알아보니 3만원이 넘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야단이다. 우리도 고물을 모으다 보니 요령이 생긴 게다. 돈이 되는 것을 많이 모으게 되는 것이다. 전에는 무턱대고 많이만 모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주인도 없는 고물상에서 1시간 동안 고물 무게를 재고 고물을 내리고를 반복했다. 아이들과 나는 신이 났다. 생각해보라. 주인도 없는 넓은 고물상에서 차량에 실린 고물들을 하나하나 내리면서 고물이 몇 kg 나왔을까를 일일이 재어보는 그 기분을 말이다.

 

a 고물상 주인도 없는 고물상에서 아이들이 폼을 잡고 있다. 기념으로 찍자고 하니 아이들은 신이 났다. '주인 없는 고물상에서 우리 양심대로 고물 무게를 재고, 우리의 손으로 고물 무게를 적어 놓은, 그러니까 서로 신뢰한' 그런 기념 말이다.

고물상 주인도 없는 고물상에서 아이들이 폼을 잡고 있다. 기념으로 찍자고 하니 아이들은 신이 났다. '주인 없는 고물상에서 우리 양심대로 고물 무게를 재고, 우리의 손으로 고물 무게를 적어 놓은, 그러니까 서로 신뢰한' 그런 기념 말이다. ⓒ 송상호

▲ 고물상 주인도 없는 고물상에서 아이들이 폼을 잡고 있다. 기념으로 찍자고 하니 아이들은 신이 났다. '주인 없는 고물상에서 우리 양심대로 고물 무게를 재고, 우리의 손으로 고물 무게를 적어 놓은, 그러니까 서로 신뢰한' 그런 기념 말이다. ⓒ 송상호

 

그렇게 고물을 모두 내리고 계산된 무게를 다 적고 나서 고물상 사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사장님. 저희들 무게 다 재어서 메모지에 남겨 뒀습니다.”
“그래요. 제가 가서 확인하고 난 후 온라인으로 부쳐드리죠.”
“암튼 우리를 믿어주시니 고맙습니다.”
“뭘 그 정도를 가지고.”

 

아이들과 나는 고물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 것과 함께 우리를 여과 없이 믿어주는 고물상 아저씨의 마음으로 인해 마음이 뿌듯했다. 며칠 뒤 우리가 써 놓고 온 고물의 무게만큼의 돈이 나의 통장에 입금이 된 것을 확인했다.

덧붙이는 글 | * 각종 비리와 거짓으로 얼룩진 대통령후보가 지지율 1위로 달리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 모두의 수준이자 책임이라고 본다. 돈 보다 사람의 말을 더 믿어 주는 고물상 사장의 신뢰가 이 사회에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2007.12.12 13:48ⓒ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 각종 비리와 거짓으로 얼룩진 대통령후보가 지지율 1위로 달리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 모두의 수준이자 책임이라고 본다. 돈 보다 사람의 말을 더 믿어 주는 고물상 사장의 신뢰가 이 사회에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더아모의집 #송상호목사 #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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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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