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포의 인간 띠, '기름 띠'를 넘어서다

[현장-복구 5일째] 복구 5일 만에 검은 때 벗기 시작한 백사장

등록 2007.12.12 20:03수정 2008.01.1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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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자원봉사하는 사람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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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포 해수욕장에서 방제작업중인 자원봉사자들 ⓒ 정대희


"처음엔 설마설마 했는디, 사람들이 너두나두 나서니께 검은 때가 지어지네유."

태안 신두리 해수욕장에서 피해복구 작업중이던 한 주민이 잠깐 허리를 펴며 한마디한다. 최악의 기름폭격을 맞은 후 복구 5일째(12일)를 맞은 충남태안 해안가.

어제의 검은 백사장이 아니었다. 검은 때를 벗고 백사장 본래의 하얀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인간 띠로 기름 띠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

이날 찾은 신두리 해수욕장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수 천명의 형형색색 작업복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백사장을 가득 메웠다. 해안선에는 인간띠를 이어 기름띠에 맞서고 있었다. 해안선 뒷쪽에서는 흡착포를 이용해 모래 속 한방울의 기름때마저 닦아 내려는 손길이 분주했다. 다른 한쪽 무리에서는 오염된 모래를 포대에 담는 작업이 분주하다.

천연기념물과 맞닿아 있는 신두리 사구 앞에는 마지막 저지선인 '기름 독살'이 등장했다. 밀물에 밀려 들어온 기름을 가두는 지혜의 웅덩이다.

신두리사구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사람들의 힘으로 며칠만에 사구 앞에 몰려든 엄청난 기름 덩어리를 해치웠다"며 "이대로 라면 모래언덕과 사구식물은 지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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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양식장 주변 오염된 돌을 하나하나 닦고 있다. ⓒ 심규상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만난 적십자사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도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한참씩 일을 하다 돌아볼 때마다 백사장이 제 색깔을 찾는 모습에 스스로도 놀랐다"며 "일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조선 사고로 처음 기름이 오염된 곳은 일리포 해수욕장이다. 이어 백리포 → 천리포 → 만리포순으로 오염이 확산됐다.  이날 돌아본 각 해수욕장은 신두리와 만리포 해수욕장 처럼 검은 때를 빠르게 벗고 있었다.

이날 찾은 태안읍내는 한산했다. 선거철이지만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장화와 고무장갑을 끼고 해안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반면 해안선 곳곳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자원봉사자들도 넘쳐났다.

실제 태안군청 상황실이 집계한 이날 자원봉사자 수는 약 2만 3800여명(누적 5만 8000명)에 달한다. 복구인력 사상 최대 규모다. 

하지만 큰 면적의 해수욕장을 벗어나면 사정은 다르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대부분의 해안선은 여전히 까맣게 줄을 긋고 있었다. 굴과 김이 자라던 양식장은 생명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터가 돼 있었다. 생명을 보듬었던 물은 악취를 머금고 있었다.

인근 소근리 마을의 한 주민은 "자식들에게 기름으로 오염된 어장을 물러 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죽기 전에 이게 웬 난리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분주히 까맣게 염색된 돌을 닦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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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독살 신두리 사구앞에 설치된 기름독살. 기름 저지선이자 오염된 기름을 잡는 구덩이다. ⓒ 심규상


주민들의 당장의 바람은 자원의 손길이다.

자원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한 물자공급도 절실한 상황이다. 현장에는 흡착포와 고무장화, 마스크 등 복구용품이 동이 난 상태다. 이 때문에 아예 먼 곳에서 자원활동을 위해 달려왔음에도 정작 백사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자원봉사자의 경우 미리 현장 상황실에 사전연락을 하고 복구장비를 꼭 챙겨서 오라는 주민들의 말은 이 때문이다. 흡착포대신 폐현수막이나 흡수력이 좋은 헌옷을 모아 보내달라는 요구도 같은 맥락이다.

복구작업 인력의 관리 운영 등 문제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엄청난 인원을 감당할 만한 지휘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종일 수거한 오염물을 다시 썰물에 실어 보내는 일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하루하루 돕겠다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고마움에 눈물이 다 나왔다"며 "하지만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까지 끝까지 도움의 손길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내일(13일)은 태안고등학교에서 학생 600여명이 피해복구 자원봉사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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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으로 오염돼 폐허가 된 수근리 굴 양식장. 방파제 검은 부분이 기름이 차올랐던 흔적이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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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규상


기름유출 사고 복구 자원활동을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 인식이 필요하다.

우선 사전에 인터넷이나 전화를 통해 자원봉사 신청을 해야 한다. 태안군 상황실 관계자는 "사전 예고없이 봉사활동을 올 경우 효율적인 작업배치를 할 수 없다"며 "반드시 군청 홈페이지에 '자원봉사 신청 코너'나 전화를 통해 미리 신청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자원봉사를 원하는 사람은  군청상황실에 전화(041-670-2645-9)를 하거나 태안군청 홈페이지(http://www.taean.go.kr)에 들어가 신청 코너란에 신청자 이름 또는 단체, 연락전화, 참여인원 및 기간, 지참 준비물 등을 적시하면 된다.

태안군 관계자는 "신청을 받으면 상황실에서 봉사대상지역을 결정하여 전화로 연락을 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작업에 필요한 개인 장구(장화, 고무장갑, 헌옷, 우의나 방제복, 도시락 등)도 반드시 준비해 와야 한다. 보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름수거작업 요령에 대한 숙지도 필요하다. 수거 작업시 반드시 ▲방제복을 입고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작업 후 비누로 깨끗히 씻을 것 ▲두통이 있을시 작업 장소를 벗어나 안정을 취할 것 ▲두통이 심할시 보건의료원이나 가까운 보건지소, 진료소에서 진료를 받을 것 등을 당부했다.

한편 사고현장에는 이날 부터 지역주민과 경찰, 군인, 민방위대원, 외부 지원봉사자 등 약 1만여명이 기름 수거를 위한 방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태안 기름유출 #태안군 #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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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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