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행 고수들만 아는 '호젓한 여행지'

[책으로 읽는 여행 15] 한국여행작가협회가 만든 <호젓한 여행지>

등록 2007.12.17 11:11수정 2008.01.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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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호젓한 여행지> ⓒ 열번째행성


많고 많은 직업들 중에 ‘여행 작가’만큼 부러운 것도 없다. 노는 일과 밥벌이를 병행할 수 있다니 얼마나 즐거운 직업인가. 많이 돌아다니고 좋은 곳을 소개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 이들이 손꼽는 여행지라면 한번쯤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호젓한 여행지>는 한국여행작가협회 소속 회원들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곳은 참 좋은데 아직 안 알려졌네’ 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 꽤 있다. 이런 여행지들을 발굴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바로 여행 작가들의 주된 임무다.


책에서 소개하는 곳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국토 최서남단에 위치한 가거도, 해안일주 드라이브가 정겨운 고흥의 거금도 등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한 온갖 섬들은 으뜸의 경치를 자랑한다. 게다가 바다에서 금방 낚아 올린 싱싱한 회와 조개 등 풍부한 해산물 먹을거리를 챙길 수 있으니 섬 여행이야말로 유유자적할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어떤 섬은 식당이 하나도 없어서 미리 취사도구와 부식거리를 챙겨야 하고 울릉도보다 더 멀리 떨어진 섬은 민박집이자 거주 세대가 단 하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방문객의 수도 적고 자연이 잘 보존되어 더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나 보다. 책에서 소개하는 장소들을 따라가다 보면 ‘아, 나도 가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이 먼 오지를 찾아가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하나도 없다. 매 장마다 친절하게 가는 길과 맛 집, 숙박, 주변 명소 등을 소개해주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서울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들도 꽤 있지만 여름휴가 등의 넉넉한 일정으로 찾아가 보면 되지 않을까?

책에서 안내하는 곳 중 흥미를 끄는 곳은 밀양에 위치한 만어사라는 절이다. 이 절을 소개하는 여행 작가는 영남루와 밀양아리랑, 표충사 그리고 얼음골 정도만 알고 있던 밀양에 신비로운 볼거리가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여행 작가라고 명함을 내밀고 다닌 것이 민망했다고 고백한다.

“만어사 이정표가 확실하지 않아 무작정 임도를 따라 승용차를 몰고 가는데, 찾는 만어사는 나오지 않고 산 아래 경치만 너무도 멋지게 펼쳐진다. 도대체 만어사란 절은 어디 있는 거야!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아 난감할 때쯤, 길 위쪽으로 크고 작은 바위 너덜이 나타났다. 와! 웬 산 속에 이렇게 돌이 많으냐,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볼거리라고 생각하고는 보물이라도 주운 듯 기뻐하며 이곳저곳 사진을 찍는데 너덜겅 위쪽으로 자그마한 사찰이 보인다.”


이렇게 우연히 좋은 풍경을 만나면 얼마나 기쁘고 보람 있을까. 엄청나게 많은 돌무더기가 널려 있는 곳을 뜻하는 돌너덜은 쉽게 만나기 어려운 풍경이다. 국가에 어려움이 닥치면 비 오듯 땀을 흘린다는 표충비각을 비롯하여 고즈넉한 경치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절 만어사는 살면서 꼭 한번쯤 가보고 싶다.

서울과 가까워서 자주 찾게 되는 남양주에도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독특한 공간들이 숨어 있다. 길을 따라 명소를 좇다 보면 다다르게 되는 곳, 명당들이 바로 그것. 한 여행 작가는 아무리 둘러봐도 이해되지 않았던 명당 석실 마을을 이야기한다.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의 석실마을은 지금이야 축사가 들어서고 미나리꽝이 있는 평범한 동네지만, 예전에는 그 위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세도가 서울의 신안동 김씨 집안의 뿌리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 묏자리 하나 쓰는 데에도 가족 간에 갈등이 벌어질 정도니 얼마나 대단한 명당이기에 그럴까?

“그 묏자리는 옥호저수형(옥으로 된 술병에 술이 담긴 형국)으로, 술병의 힘이 모이는 손잡이 부분이라고 한다. 산의 흐르는 정기를 병목처럼 생긴 지점에서 틀어막아 흡수하는 천하명당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 묏자리 덕에 안동 김씨가 불 일 듯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 후손들을 보면 불길을 확인할 수 있다.”

묏자리 하나 덕에 자손들이 번창했으니 후대 사람들이 한번쯤은 구경 갈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곳을 방문한 작가는 풍수의 상식이 없는 눈으로 봐서인지 아무리 보아도 명당터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긴 석실 마을에 가서 땅의 기운과 한 가문의 기운, 역사의 기운을 맛보는 것도 재미있는 추억이 될 법하다.

많은 작가들이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정선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자가 없다. 한때 정선은 마치 오지의 대명사인 양 불리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손쉽게 찾는 여행지로 탈바꿈했다. 황동규의 시 <몰운대행>을 따라 길을 걸으면 그 절경에 푹 빠져든다.

“산길을 따라 걷다가 길이 끝나는 자리에 커다란 소나무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그 아래로는 아찔한 절벽. 벼랑 끝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절벽 밑으로는 강물이 휘돌아 나가고, 오른쪽으로는 층층화벽과 너럭바위, 아름드리 소나무로 이루어진 계곡이 눈에 들어왔으며, 왼편으로는 너른 들이 펼쳐졌다. 너무나 아름다워 구름도 쉬어 간다는 그곳에서 나는 소나무에 기대앉아 해질녘까지 넋을 잃고 풍경에 취해 있었다.”

정선의 또 다른 볼거리에는 가을 억새로 유명한 민둥산, 병방치 고개, 구절리와 아우라지를 잇는 레일바이크 등이 인상적이다. 정선을 소개하는 여행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사람 붐비는 여행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자신이 좋아하던 몰운대도 민둥산도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접수’되었다.

여행 책을 읽은 사람들은 작가들이 소개하는 숨은 명지를 한번쯤 꼭 방문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면 숨어 있던 공간이 드러나고 결국 유명세를 타게 되어 사람 들끓는 곳이 되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붐비는 공간은 싫지만 그래도 좋은 곳을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굴뚝같다. 여행 작가야말로 이런 작업을 하는 가장 좋은 직업이 아닌가.

대한민국 여행 고수들만 아는 호젓한 여행지

한국여행작가협회 엮음,
열번째행성(위즈덤하우스), 2007


#여행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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