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하트>를 보면 '2007 대선'이 읽힌다?

'개혁의 주도자'로 표상화하는 우리가 잃은 '원칙'과 '기본'

등록 2007.12.21 11:31수정 2007.12.2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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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개혁 성향 유권자들과 언론 사이에서 '참여정부'에 대한 이야기가 다양하게 오가고 있습니다. '참여정부'는 과연 국정실패 세력일까요? 아니면 사회 전반을 장악한 보수기득권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것일까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는 누구보다 강도 높은 개혁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기자실 문제나 과거사 청산, 사학법 통과와 관련해서는 그런 의도를 충분히 드러내 개혁 성향 유권자들에게 환영받았습니다. 하지만, 보수기득권층은 일명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막강한 권력의 보수언론을 갖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언론사 세무조사 등을 통해 이들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지만,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혈연과 학연 등을 매개로 재벌이나 보수정치세력과 전방위적인 관계를 형성한 이들을 이겨낸다는 것은 보통 각오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참여정부의 개혁 강도가 약해졌고 한미 FTA 협정이나 이라크 파병안이 통과되면서 개혁 색채는 더욱 옅어졌습니다. 게다가 김대중 정부에 이어 강도 높은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유권자들의 기대와는 다른 노동탄압과 부의 양극화 현상이 구조화됩니다.

 

사실, 보수기득권층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증오하고 종부세를 근거로 '좌파 정권'이라 증오하는 것은 명분이 약합니다.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식 경제개혁아 그네들에게 더 막대한 부와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과 삼성그룹 사이에서 제기되는 의혹도 그렇습니다. 한나라당의 슬로건 '좌파 정권 종식'과 '정권 교체'는 정치적 권력까지 완벽하게 차지하기 위한 선동이며 정치적 공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조중동'까지 가세한 이 멋진 정치적 선동을 대다수의 유권자들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명박 당선자가 추구할 '노동시장 유연화'와 '금산분리 폐지', 그리고 '한반도 대운하' 등을 생각해봅시다. 과연 이것이 우리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경기불황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때는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절차에 따라 우리 국민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MBC 의료드라마 <뉴하트>를 통해 이명박 당선자가 앞으로 꾸릴 정권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과연 '원칙'과 '개혁'이란 무엇일까요?

 

a  MBC 수목 의료드라마 <뉴하트>

MBC 수목 의료드라마 <뉴하트> ⓒ MBC

MBC 수목 의료드라마 <뉴하트> ⓒ MBC

 

'개혁'은 '원칙'을 되찾아가는 과정?

 

"과시에 급제하여 처음으로 입궐하던 때가 떠오르는구나. 나 역시 백성을 위하여 마음으로 정치하리라 수없이 다짐했었다. 허나 백성들은 고사하고 나 하나 건사하기에도 벅찬 현실…. 내가 권력만을 좇는다 경멸하였더냐? 나 역시 내 아버지에게 그리 말했었다. 허나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 된 후 어느새 나도 내 아버지처럼 됐다. 자식 한 번 낳아보거라, 너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건 세상이 아무리 뒤집히고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KBS 드라마 <한성별곡>에서 주인공 박상규의 아버지 박인빈 대감이 읊조리던 대사였습니다. 개혁이 어긋나는 이유,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가 이 한마디에 숨어 있습니다.

 

돈과 권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책임져야 할 가족과 삶이 있다는 것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과 권력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돈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법과 상식, 원칙을 어기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기득권자들이 돈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에게 편리한 편법을 구조화하면서 세상은 타락합니다.

 

<뉴하트>에 나오는 광희대학병원의 교수 사회도 그동안 숱한 의료만화와 의료드라마에서 엿보았던 '타락'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정치적 현실을 그린 장면도 제법 있습니다.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만 병원의 골치만 썩히는 흉부외과를 '구조조정'하려 하고, '돈 되는 진료와 돈 되는 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 키우겠다는 방침'을 세우는 '박재현(정동환)' 원장은 왠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보는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런 반면에, 전임 흉부외과 과장의 '부정'을 폭로했다가 지방으로 좌천된 적이 있는 '최강국(조재현)' 교수는 얼핏 봐서는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습니다.

 

<뉴하트>에서는 박재현 원장이 최강국 교수의 실력을 인정하며 그를 통해 대학병원의 인지도를 높여 환자를 많이 유치하려고 합니다. 다시 중앙무대의 핵심으로 복귀한 최강국 교수는 부패와 타락에 만성으로 젖어있던 흉부외과에 경종을 울립니다. 별다른 수단은 없습니다.

 

사람이 모자라 곤욕을 치르는 흉부외과의 현실에도, '제대로 된 마음가짐'을 품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석'과 '골통'을 레지던트에서 탈락시켜 버립니다. 의사로서의 원칙을 중시한 것입니다. 단지 일손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수석'이라는 학벌이 뒷받침된다는 이유로 아무나 뽑을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뿐입니다.

 

'개혁의 주도자'는 외롭다, 하지만 뚝심 있다?

 

a  대중문화 속의 영웅 캐릭터의 전형, '원칙주의 개혁'을 추구하는 뚝심의 소유자 '최강국(조재현)

대중문화 속의 영웅 캐릭터의 전형, '원칙주의 개혁'을 추구하는 뚝심의 소유자 '최강국(조재현) ⓒ MBC

대중문화 속의 영웅 캐릭터의 전형, '원칙주의 개혁'을 추구하는 뚝심의 소유자 '최강국(조재현) ⓒ MBC

'수석'은 동료 인턴들을 모아 파업을 시도하고 '골통'은 1인 시위에 나섭니다. 일손이 모자라 죽겠다던 레지던트들도 줄행랑을 칩니다. 최강국 교수를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기득권 집단도 이를 방관합니다.

 

최강국 교수는 이 수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전형적인 영웅적 주인공의 표상이라 할만 합니다. 특히 개혁을 추구하는 의료 관련 작품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현실에서는 찾기 어려운 캐릭터입니다.

 

게다가, 현실에서 이런 캐릭터는 기득권 세력의 압박에 눌려 고사 당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초기개혁도 그런 압력 속에서 좌절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만화 <의룡>에 등장하는 카토 조교수야말로 비상한 정치인의 자질을 갖춘 개혁가라고 판단합니다. 카토 조교수는 숙여야 할 때는 숙이고 굴욕적인 순간도 끝내 감수하면서, 정말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 자질을 보입니다. 이게 바로 능숙한 정치인의 자질입니다.

 

물론, 최강국 교수의 비현실적인 캐릭터에도 주목할만한 것은 있습니다. 카토 조교수의 이미지와도 살짝 겹치는 모습인데 그것은 바로 '뚝심'입니다. "정말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 자질"은 '뚝심'이 있기에 갖춰질 수 있는 것입니다.

 

카토 조교수는 자신이 교수가 돼 시도하려는 개혁의 방향을 늘상 다짐하며, 그 개혁에 명분과 힘을 주기 위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바치스타 수술'에 관해서만큼은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어쩌면, 5년 전에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런 것을 주문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최강국 교수의 '뚝심'은 "마인드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수석 합격자라도 봐주지 않는다"는 원칙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원칙은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뉴하트>는 아이러니해 보입니다.

 

'권력 집단의 만성'에 대한 묘사가 기대되는 <뉴하트>

 

a  <하얀 거탑>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했던 캐릭터 '장준혁(김명민)'

<하얀 거탑>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했던 캐릭터 '장준혁(김명민)' ⓒ MBC

<하얀 거탑>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했던 캐릭터 '장준혁(김명민)' ⓒ MBC

<하얀 거탑>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외과 교수 '장준혁(자이젠 고로)'의 성공 가도를 다루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말기 암환자로 만들어 '허망함'을 이야기합니다. '장준혁'은 그 '허망함' 속에서 자신의 화려했던 의사 시절과 의사가 막 됐던 시절의 순수함을 회상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장준혁'은 세속적으로 타락한 권력 집단의 중심에서, 자신이 왜 권력을 가지려 했는지 그 방향을 잃고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 된 마키아벨리스트로 변합니다. 개혁 의지를 그렇게 좌절시키는, 그리고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개혁 의지'조차 타락시켜 자신들에게 편입시키는 권력의 세계, <하얀 거탑>은 그 세계를 묘사했던 적이 있습니다.

 

<뉴하트>도 출연진들의 면모를 파악해보니, 그런 세계를 묘사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정동환, 장현성, 정호근, 이기영 등의 출연진 등은 빼어난 연기력으로 때때로 비정하리만큼 야비한 이미지를 잘 소화하는 중견배우들입니다.

 

<하얀 거탑>에서 '장준혁'과 '이주완' 사이를 오가며 챙길 것은 다 챙기는 '진정한 승자'였던 '박창식 과장(박기정)'이 <뉴하트>에서는 선한 캐릭터 '김영희 교수'를 맡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최강국 교수는 때묻은 권력 사회에서 아직 때묻지 않은 '이은성(지성)'과 '남혜석(김민정)'을 진정한 의사로 키울 것입니다. 요즘 현실 같아서는 차라리 동화 속 이야기로 보이는 일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을 고수한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씁쓸한 대학병원의 일상, 그렇듯 <뉴하트>는 왠지 우리 사회와 정치의 비극적 단면을 이야기하면서, '희망'을 꺼내는 것 같아 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2.21 11:31ⓒ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뉴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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