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내에게 성탄절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왜냐면? 키도 작고 별로 잘 생기지도 않은
나를 구제해준 이를 만난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울 매형 말씀이, “아버님! 희용이 장가 갈 때까지만 사세요” 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던 시절, 울 아버지는 늘 여자친구 걱정을 하시곤 했다. 아버지는 내가 여자친구 없는 것이 늘 불안하셨는지, 학교 다닐 적 시골 갈 때마다 “남들은 학교 다니면 다들 여자친구 있다고 하던데, 넌 우째 여자친구 하나 읍냐?”하셨다.
울 아버지의 크나큰 걱정을 해결하지 못한 채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여자 친구 없이 지내던 내가 드디어 울 아버지 소원을 풀 기회가 찾아왔으니, 그 운명의 여인을 만난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였으니, 성탄절이 나와 아내에게 특별한 이유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1년 전!(맞나? 이거 틀리면 괜히 우렁각시에게 꼬투리 잡히는 데~) 나는 당시 새롭게 설립된 모 회사에 다니게 됐는데,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회사 설립에 자본금을 투자한 모 장학회 사무실과 함께 사무실을 썼다. 그곳에서 바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이미 2년 전부터 장학회 일을 보고 있었고, 나는 1996년 11월에 입사했다. 그렇게 지내기를 두 달이 채 안되던 어느 날, 바야흐로 성탄 이브! 회사 직원들은 다들 각자 약속장소로 떠나고, 고향도 아니고 학교 친구들도 다들 각자 살길 찾아 떠난지라 모두들 들뜬 날이라고 해도 딱히 같이 시간을 보낼 친구가 없었던 나였다.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고민하면서 퇴근도 못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내 눈에 뒤늦게 퇴근하는 아내가 들어오는 게 아닌가!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를 자세히 본 적도 없을 정도로 별 관심은 없었다. 비록 같은 공간에 있기는 했지만 엄연히 회사가 다르다보니 그냥 출·퇴근길에 마주치면 인사만 하는 그런 사이였다.
그런데 그 날(성탄 이브), 뭔 생각이었는지 두 달 동안 커피 한 잔도 함께 마신 적도 없고, 솔직히 남자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내 입에서 대뜸 “혹시 퇴근하고 뭐 하세요?”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가?
히히! 그런데, 아내도 나와 같은 처지였나 보다. 아내 입에서 나온 말, “그냥 집에 갈 건데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저도 특별히 할 일 없는 데, 같이 영화 보실래요?” 그랬더니 아내가 잠시 뭔가를 고민하다가 하는 말, “그래요 그럼.”
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아마 아내는 날 진즉에 점 찍었나보다. 그러니까 그때 그렇게 선뜻 내 데이트 신청에 응했지! 하지만 아내는 “자기는 성탄절 아니면 장가도 못 갔어! 성탄절이니까 내가 그때 자기 데이트 신청 받아줬지. 다른 날 같았으면 어림도 없어!” 하면서 나의 주장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리하여 아내와 나는 성탄절을 맞이해 저녁도 먹고 영화도 봤다. 데이트라는 것을 한 거다. 인연이라는 것이 때로는 어렵게 만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연히 만나기도 하는 듯하다. 그렇게 성탄절이 맺어준 준 인연 덕분에 나는 주말이면 종종 아내랑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셨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즐거운 연애시절을 보냈고, 드디어 2000년도에 호랑이띠 아내와 쥐띠 남편은 결혼에 골인했다. 지금은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다. 어, 그러고 보니 내년이 쥐띠 해네.
앗싸! 그동안 호랑이띠 아내에게 숨죽이며 살았는데, 나의 해이니 기 좀 피고 살겠군!
2007.12.25 13:15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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