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잡이, 발김쟁이, 모도리의 뜻은?

[서평] 장승욱의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

등록 2007.12.28 15:56수정 2007.12.2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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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 ⓒ 하늘 연못


한글이 되살아나고 있다. 술 이름을 '대포'라고 짓고, 아파트 이름도 '푸르지오'라고 정한다. 거의 모든 도시가 슬로건을 영어로 정했지만, 경남 진주는 '참 진주'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휴대전화에도 한글바람이 불고 있다. 엘지는 특별상품 '샤인 디자이너스 에디션' 제품 뒷면에 윤동주의 <별헤는 밤>을 세겼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우리말을 많이 모른다. 한자와 영어에는 익숙하지만 순우리말은 사전을 찾아보지 않으면 뜻을 잘 모른다. 두꺼운 사전을 찾기는 불편하다. 이럴 때 장승욱이 지은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는 우리말을 배우는 일에 보탬이 되기 충분하다.


'도사리'는 토박이말 말로 익는 도중에 바람이나 병 때문에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 또는 못자리에서  난 어린 잡풀을 말한다. 떨어진 열매는 아무 쓸모가 없다. 잡풀은 농부 손에 금방 뽑혀 나간다. 우리말은 우리들에게 쓸모 없고, 뽑혀 나간 신세가 되었다는 안타까움을 장승욱은 말하고자 한다.

일반 사전이 그냥 뜻풀이 정도로 끝나지만 장승욱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에누리'라는 말을 설명한 것을 살펴보자.

"이 세상에 에누리가 없는 장사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에누리는 흔히 물건 값을 깎는 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에누리는 장사하는 사람이 물건 값을 더 얹어서 부르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파는 사람이 에누리를 한 물건을 사는 사람도 에누리를 해서 샀다면 그것은 결국 제값을 주고 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에누리없다'는 말은 두 가지 에누리가 다 없는 상태, 다시 말해 깎거나 보탬이 없다는 뜻이 된다."(16쪽)

제값이 10000원인데 파는 사람은 2000원을 더 얹고, 사는 사람은 2000원을 깎는다. 결국 10000원이다. 우리는 깎는 것만을 에누리라 생각했지만 더 얹는 것도 에누리라 한다. 세상 살이가 다 이런 것 아닌가? 장사하는 사람들이 손해보고 판다고 하지만 손해보고 파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에누리'를 통해서 더 잘 알 수 있다.

소쿠리와 광주리 차이를 아는가? 요즘 아이들은 거의 모를 것이다. 어머님이 시렁과 선반위에 온갖 먹을거리들을 보관했던 기억이 난다. 설날, 한가위 때만 되면 광주리에 담은 온갖 음식들은 군침을 돌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소쿠리와 광주리는 우리 눈에서 사라졌다. 기억을 더듬이 소쿠리와 광주리를 머릿속에서 꺼집에 내어본다.


"소쿠리는 앞이 트이고 테가 둥글게 결은 대그릇이고, 바소쿠리는 지게에 얹어 짐을 싣는 물건으로 발채라고도 한다. 싸리나 대오리로 둥글넓적한 조개모양으로 엮어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광주리는 크고 둥글게 엮은 그릇으로 바닥이 평평하게 된 것이 특징이며, 바구니는 둥글고 속에 깊게 결어 만든 것이다."(28쪽)

바소쿠리에 사람이 직접 손으로 모내기를 하던 시절, 쪄낸 모를 지고 산을 넘었던 기억이 난다. 바소쿠리는 경운기가 없던 시절에는 가장 중요한 농기구였다. 갯벌에서 동죽, 가리맛 조개, 가무락 조개, 농게, 바지락을 잡아 바구니에 가득 담아 집에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우리말에는 '바람'이름도 많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와 작은 형님이 돛단배를 사셨다. 돛단배를 타고 사천만에서 고기잡이를 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바람이름을 말할 때는 북서풍, 남서풍이라 하지 않는다. 샛바람, 하늬바람, 갈바람, 갈바람이라 불렀다.

"뱃사람말로 동쪽은 새쪽, 서쪽은 하늬쪽, 남쪽은 마쪽, 북쪽은 노쪽이다. 따라서 새쪽에서 부는 바람은 샛바람, 하늬쪽에서 부는 바람은 하늬바람, 서쪽에는 부는 바람은 갈바람, 북풍은 높바람, 남풍은 게가 눈을 감추게 만드는 마파람이다."(101쪽)

아직도 동네에 가면 어른들은 갈바람, 샛바람, 갈바람이라 부른다. 참 좋은 이름이다. 요즘은 남풍이라 하지 않고 마파람이라 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뱃사람외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말이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남풍보다는 마파람이 더 정감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어정잡이'는 실속은 없고, 겉만 있는 사람이다. 어정잡이 같은 이가 많으면 별 재미 없는 누리가 될 것이다. 겉만 부리다가는 어정잡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결국 어정잡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

못된 짓은 도맡아 하는 이를 '발김쟁이' 조금도 빈틈 없는 사람을 '모도리'리 한다. 발김쟁이와 모도리가 많으면 삭막한 누리다. 어정잡이도 있고, 발김쟁이, 모도리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곳이 어쩌면 참 좋은 누리일 수 있다.

2784가지 우리 토박이 말을 찾아 떠나는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는 우리에게 매우 생경한 말과 알고 있으면서도 뜻을 잘 알지 못하거나 잘못 사용되는 말들을 만나는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 장승욱 지음 ㅣ 하늘연못 ㅣ 12,000원


덧붙이는 글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 장승욱 지음 ㅣ 하늘연못 ㅣ 12,000원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 - 개정판

장승욱 지음,
하늘연못,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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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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