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사랑하는 사람을 날마다 늘리세요

[서평]대니얼 고틀립이 쓴 <샘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 2007.12.31 15:12수정 2007.12.3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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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할아버지가 '자폐' 손자에게 쓴 <샘에게 보내는 편지> 겉 표지 ⓒ 이윤기

'전신마비' 할아버지가 '자폐' 손자에게 쓴 <샘에게 보내는 편지> 겉 표지 ⓒ 이윤기

인간이 느끼는 감정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은 '부끄러움'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 때 부끄러움을 느낄까? <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대니얼 고틀립은 사람들이 “지금의 내가 나 자신이 바라는 바로 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남들과 비교해서 자기가 더 낫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는 사람이 훨씬 많다. 저 사람은 나보다 더 똑똑하고, 더 능력 있고, 더 잘생겼고…. 그 밖에도 많은 이유들로 나 보다 나은 사람이 많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낄까? 바로 부끄러움이다.”(본문 중에서)

 

이처럼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이 바로 대니얼 고틀립의 생각이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정신의학 전문의 대니얼 고틀립은 서른세 살에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지은이 고틀립이 언젠가 자신이 쓴 이 편지를 읽을 것이라고 믿는 ‘샘’은 그의 둘째딸이 낳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손자다. 샘은 생후 14개월만에 자폐진단을 받았으며, 그 후 일년 반이 넘도록 화가 나면 자기 머리를 바닥에 찧고, 말을 건네면 악을 쓰고 소리를 질러대곤 하였단다.

 

전신마비 장애인 고틀립은 남들과 다르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평생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할 손자 ‘샘’에게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슬픔은 어떻게 위로하는지, 좌절감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그리고 생산적인 삶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일러주기 위하여 이 편지를 썼다고 한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다르다

 

그가 ‘서로 같은 영혼을 가진’ 손자 샘에게 들려주는 첫 번째 당부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일러준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그냥 다른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명심해라. 네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네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본문 중에서)

 

만약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매달리면 그 생각이 삶을 고통으로 끌어가게 될 것이라는 거다. “네가 남과 다르고, 나도 남과 다르다는 건 하나의 사실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실은 고통일 수도 있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중에는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없으며,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점 때문에 나를 세상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사람으로 존재하게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남들과 비교하여 스스로 초라하게 느낄 필요가 없다고 한다. 고틀립은 남과 다른 점이 문제가 아니라 남과 다른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 바로 그 생각으로부터 비롯되는 ‘부끄러움’이 문제라는 것이다.

 

고트비는 샘에게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법을 일러준다. 역설적이게도 사람은 “감추고 싶은 부분이 드러나면 수치심을 느끼는 것처럼, 감추고 싶은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수치심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외모 때문에 고민이 많은 열일곱 살 소녀와 상담하던 중에 방광기능을 제대로 못해 다리에 매달아 놓은 오줌주머니가 넘쳐서 소변이 새나왔던 이야기를 손자에게 털어놓는다. 그가 너무나 창피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소녀는 그에게 다가와 꼭 안아주며 위로해주었다. 그 순간 그는 어린 소녀의 위로를 받으면서 아주 편안해졌다고 한다.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방법

 

소녀와 고트비는 부끄러움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에 관하여 각자 경험과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었고, 서로 가장 상처받기 쉬운 부분을 보게 됨으로써, 마음에 담고 있던 부끄러움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그날 상담을 통해 상대방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었다고 한다.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마침내 치유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고트비는 샘에게 부끄러움을 느낄 때면, 너를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아 가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로 자신이 드러났을 때 맺어지는 친밀감 속에는 놀라운 기회가 숨어 있다고 한다. 바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감추고 싶은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치유 받은 경험과 더불어 전신마비의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과정도 손자에게 털어놓는다.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되어 병원 침대에 누워 지내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며 용기를 내라고 설득하였지만, 결국 그에게 그 깨달음을 준 사람은 ‘자신에게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했던 낯선 사람’ 바로 아픔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할 수 없는 그를 찾아와 너무나 사랑했던 한 남자를 떠나보내고 참을 수 없는 외로움과 고통 속에 목숨을 끊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던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자기 고통과 시련 사랑을 잃은 아픔과 상실감을 이야기했을 때, 고트비는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내가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전신마비로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을 잃고 절망에 빠진 낮선 목소리가 내게 들려주었다. 아직도 내가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고 말이다.”(본문 중에서)

 

내 안의 소중한 것을 발견하라

 

그는 비로소 자신 안에 있는 소중한 것을 찾아냈으며,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훨씬 빨리 치유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만난 여러 환자들에게 탁아소, 양로원, 동물보호소와 같은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치유를 경험하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내가 세상에 꼭 필요한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마침내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다 그만한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고틀립은 여느 아이들과 다른 특별한 아이를 키우는 샘의 부모에게도 소중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고틀립의 딸인 샘의 엄마는 한시도 걱정을 하지 않을 때가 없다. 사랑해서 걱정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약하기 때문에 걱정하고, 원래부터 그렇게 타고난 사람이어서 걱정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모가 자식을 보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스스로를 잘 보살피는 것이라고 한다. 부모가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아이들도 자기 미래를 행복하게 내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지 인생을 살지 못하면, 그러니까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기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자기 몫의 삶을 누리지 못하면, 그건 자기 영혼을 저당 잡히는 것과 같다. 부모가 자기 영혼을 저당 잡히면 그 이자는 고스란히 자녀들이 갚아야 할 빚이 되고 만다.”(본문 중에서)

 

결국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보살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늘 보살핌을 받기만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럼, 부모가 자식을 보살피는 것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면, 자식이 부모를 보살피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린 자식도 부모를 보살핀다

 

“자식이 부모를 보살피는 방법은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는 것, 그리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한다. 가족이 함께 지내며 단란했던 순간이 서로를 보살피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고틀립은 손자 샘에게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그는 우리 삶이 세상을 바꾸는 생산적인 일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그저 누군가와 마주앉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관심을 보여주는 일 역시 생산적인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의미 있는 하루에 대한 고틀립의 생각은 모든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경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누군가와 친밀한 시간을 보내며 그 사람의 이야기에 누구보다 더 귀 기울여 들어주었을 때, 그로 인해 어떤 사람이 이전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하루는 의미 있는 하루다.”(본문 중에서)

 

보통 사람들이 생산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이런 삶을 통해서 고틀립은 자신의 하루를 생산적으로 살 수 있었다는 경험을 들려준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 관심을 가지면 남을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분이 좋아지고 세상을 보다 친절하고 안전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세상을 살다보면서 겪게 되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치유하는 법도 손자에게 일러준다. 몸에 난 상처를 치유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몸 속에 있다고 말한다. 상처를 입는 그 순간부터 몸은 치유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마음의 상처 치유를 방해하는 그릇된 생각들을 걷어내는 것이 자연적인 치유의 시작이라고 한다.

 

“네가 입은 상처가 아무리 깊더라도, 그 상처를 아무는데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네 안에 있다.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고통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보살펴주면 된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본문 중에서)

 

그는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는 어두운 터널 바깥으로 어서 나오라고 출구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곁에 다가와 함께 어둠 속에 앉아 있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라고 깨우쳐준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고, 그런 사람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날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늘려가세요

 

고틀립이 링컨대학 졸업식에서 학부모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샘에게 보내는 편지의 끝부분에 실려 있다. 그는 샘에게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세요. 그리고 그 사람을 온몸으로 사랑하세요. 작은 땀구멍까지도 아낌없이 사랑하세요. 내일은 그 사람을 더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사랑하는 사람을 한 명 더 늘리세요. 매일 매일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수를 늘려나가는 겁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세요.”(본문 중에서)

 

그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충만한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강조한다. 판에 박힌 상투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더 사랑하라’는 충고가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이 책에 담긴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 절절하기 때문이다.

 

고틀립은 상실과 아픔에서 탈출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상실과 아픔 그리고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아니 그것이 오히려 세상을 더 ‘생산적으로’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우쳐준다. 책 말미에 실린 먼저 읽은 여러 사람들의 소감을 보면 한결같이 ‘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느끼거나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가진 것이 없거나 부족하거나 모자란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끼는 세상의 모든 영혼들에게 <샘에게 보내는 편지>가 큰 힘이 되어줄 것이 틀림없다.

 

오마이뉴스 독자여러분! 새해에는 모두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시라. 그리고 날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늘려 가시라.

덧붙이는 글 |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 문학동네/ 245쪽, 10000원

2007.12.31 15:12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 문학동네/ 245쪽, 10000원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문학동네, 2007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전신마비 #자폐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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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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