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도심 조명에 가린 노숙자의 아픔

우리 겨레의 철학 '더불어 살기'를 생각한다

등록 2007.12.31 14:59수정 2007.12.3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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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비스타 매년 연말연시에 서울시청 앞과 청계천 들머리를 밝히는 ‘루체비스타’ 청계광장부터 광교까지 자그마치 680미터 거리의 17미터짜리이다. ⓒ 김영조




어느 세밑의 밤거리.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 앞에는 철제구조물과 함께 아름다운 조명탑이 서 있다. 십수 명의 여성들이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그들은 이 조명탑 아래서 추억을 남기기로 한 모양이다.

신문로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버스를 탔다. 좌우로 들어오는 휘황찬란한 대형 조명 경관들.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에서 시작한 연말연시 축하 조명경관은 금호아시아나빌딩, 세안빌딩을 지나 광화문에서 청계천 들머리의 화려한 루체비스타(빛의 풍경)도 보인다.

매년 연말연시에 서울시청 앞과 청계천 들머리를 밝히는 ‘루체비스타’는 이탈리아어 루체(luce)와 풍경·전망을 뜻하는 비스타(vista)의 합성어인데 원래 이탈리아의 종교의식에서 유래한 ‘루미나리’로 색깔과 크기가 다른 조명을 이용한 환상적인 빛의 잔치이다. 한국에서는 2003년 부천 루미나리가 맨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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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본점들의 경관조명 제일은행 본점 건물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성탄나무(왼쪽), 기업은행 본점 건물 전체가 연하장이 되었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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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외환은행 경관조명 삼성화재(위)와 외환은행 본점의 경관조명도 화려하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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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안빌딩·영풍문고 경관조명 세안빌딩 앞과 영풍문고 앞에도 화려한 경관조명이 펼쳐졌다. ⓒ 김영조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떠오른 ‘빛’은 20미터 높이에 바닥 면적이 60×53미터인 타원. 그리고 청계천에는 청계광장부터 광교까지 자그마치 680미터 거리의 17미터짜리이다.


이어서 영풍문고에도 색색의 조명등이 있지만 건너편 제일은행 본점에는 그야말로 악! 소리가 나올 만큼 거대한 조명탑이 그 큰 건물을 감싸고 있다. 아니 건물 전체가 성탄절 나무(크리스마스 트리)로 둔갑한 것이다. 규모가 자그마치 가로 50미터에 높이가 90미터나 되며 엘이디(LED)줄 3300개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예년보다 예산과 공을 더 들였다고 담당자는 자랑한다.

롯데백화점과 롯데호텔을 이은 조명경관은 규모가 더욱 크다. 남대문 등 여러 가지 조형물도 설치하고 작은 숲 전체를 조명경관으로 만들었다. 시민 백여 명이 들러 추억 만들기 사진 찍기에 바쁘다. 건너편 삼성화재 건물과 외환은행 본점, 기업은행 본점도 독특한 조명경관을 뽐내고 있다.


무심코 세밑을 맞는 사람들도 도심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커다랗고 화려한 조명경관들을 보면서 “이제 2007 정해년도 다 되었나 보다”라면서 회한에 잠긴다. 올 한해 나는 무얼 했을까? 흔적을 남길 그 무엇인가를 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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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롯데백화점 경관조명 1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를 잇는 거대한 경관조명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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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롯데백화점 경관조명 2 롯데호텔·롯데백화점 경관조명엔 남대문 모형물과 가시버시 인형들도 한몫을 했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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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조명 앞에서 사진 찍기에 바쁜 시민들 롯데호텔 앞 경관조명에는 백 여명의 시민이 가족, 연인과 함께 즐기고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아래 사진엔 즉석사진사가 등장하여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 김영조


그런데 그 커다란 조명탑이 있는 제일은행 본점 앞 종각 지하도와 롯데백화점 앞 을지로 입구 지하도에 들어가 본다. 여기엔 여지없이 노숙자가 종이상자로 만든 노숙집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다. 이 추운 겨울 종이상자로 만든 노숙집은 그들만의 좋은 아이디어겠지만 한파가 불어닥칠 때 혹시 동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참여정부는 계속해서 경기는 좋아지고 있다고 되뇌었다. 경기 수치상으로는 좋아졌을 것이다. 또 외국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12월 외국 여행객 수가 지난해보다 28% 늘어나면서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조사됐다는 뉴스도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당선자가 여러 가지 비리 의혹에도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까닭을 언론들은 한결같이 이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를 꼽았다. 예전과 달리 대선 투표일 투표소가 설치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고와 신사중학교 앞에는 외제차와 고급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투표소 안에는 50여 미터 가까운 긴 줄이 이어졌으며 주민들은 30여 분씩 기다려 투표를 마쳤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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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들 화려한 조명경관 아래 종각 지하도와 을지로 입구 지하도에는 여기저기 노숙자들이 많이 보인다. 무심코 지나가는 행인들 옆에는 종이상자로 노숙집을 만들어 자는 사람들이 많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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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기름유출 현장 태안 천리포 해수욕장에는 기름을 제거하기 위한 자원봉사자들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이다. ⓒ 김영조


그들은 외제차를 타면서도 더 많이 벌지 못하게 한 정부를 원망하고 정권교체를 염원한 것이며, 예전이라면 외면했을 투표 대열에 동참한 것이다. 그러나 경기가 나빠졌다고 부자들이 살기가 팍팍해지는 것은 아닌데도 그들은 더 벌지 못해서 안달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서민들이다. 현재 극도로 악화한 양극화 현상이 문제이다. 외환위기 이후 생겨난 노숙자는 여전하다. 외환위기를 잘 극복하는 듯하다가 엘지카드 사태가 폭발하면서 또다시 서민들은 고통의 나락으로 빠진 것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언제나 경기가 호전된다고 앵무새처럼 되뇐다.

이런 때 정부는 물론 각 기업도 연말이 되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걷는다 하고,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나자 자원봉사를 외친다. 하지만, 그들이 겉으로는 그렇게 외치면서 실제론 외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커다란 조명경관을 세우는 데는 열심이면서 자기 회사 앞의 노숙자들에게 팥죽을 쒀 나누어 줘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이런 화려하고 엄청난 조명경관을 보면서 즐겁다기보다는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지나칠까? 나는 정부와 기업에 호소하고 싶다. 그런 대형 조명탑경관 세우는데 정신 팔지 말고, 진정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진심으로 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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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와 까치 우리 겨레는 예부터 감을 모두 따지 않고 까치밥을 남겨두는 더불어 사는 민족이었다. 위 사진은 백양사 근처의 감나무로 스님들은 까치를 위해 아예 감을 따지 않았나 보다. ⓒ 김영조


예전 우리 겨레는 콩을 심어도 새·벌레와 함께 나누려고 한 구멍에 세 알씩 심었고, 팥죽을 쑤어도 겨울나는 짐승들을 위해 고수레를 했으며, 감나무에서 감을 따도 까치를 위해 몇 개는 남겨두는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또 우리 겨레의 세시풍속엔 마을 사람들이 곡식을 거둔 뒤 음식을 장만하여 동네 어른들에게 바치고, 동무들끼리 한 자리에서 밥을 먹는 정월 초이레의 “이레놀음”, 입춘 전날 밤에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아무도 몰래 많이 해야 일 년 내내 나쁜 일이 없다는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섵달 그믐날 곡식을 걷어 고통받는 이웃에게 아무도 몰래 던져주는 ‘담치기’ 등도 있었다.

이웃이나 자연을 외면하고 나만 잘살려고 하는 것이 불행을 불러들이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 살려고 노력했던 우리 겨레의 슬기로움을 본받아야 한다. 화려하고 거대한 조명경관 아래서 나는 그들이 하지 않는 또 다른 걱정에 휩싸인다. 이제 정해년을 아쉽지만 보내고 무자년 새해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한해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경관조명 #노숙자 #까치밥 #더불어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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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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