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이 아닌, 남겨진 이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까?

<오마이뉴스> 태안 자원봉사 참가기

등록 2008.01.07 11:48수정 2008.01.1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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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일 ,우리는 태안으로 달려갔다. 또 무슨 말이 필요하랴.

지난 5일 ,우리는 태안으로 달려갔다. 또 무슨 말이 필요하랴. ⓒ 정대희

지난 5일 ,우리는 태안으로 달려갔다. 또 무슨 말이 필요하랴. ⓒ 정대희

 

지난 토요일 5일 새벽,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향하는 길. 오랜만에 입어보는 군복바지가 낯설다. 오늘 나는 많은 이들이 다녀왔다는 충남 태안으로 간다. <오마이뉴스>의 자원봉사에 신청을 한 이들은 130여명 정도. 도착하니 버스 세대가 나란히 불을 밝히고 있다.

 

안개를 가르고 달리는 길. 창문에 낀 이슬을 닦아보지만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혹 우리가 가는 바다 빛이 저럴까…' 까무룩 잠에 빠져들 때쯤 "도착했다"는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태안에 위치한 '백리포' 해수욕장이다. 

 

버스에서 내려서니 해안가 특유의 신선한 공기가 밀려든다. 조용한 시골마을, 기름이 덮쳤다는 사실이 언뜻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방제복을 입고 해안가로 나서자 백사장의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의 현실은…

 

 흡착포를 나르기 위해 줄지어 선 자원봉사자들.

흡착포를 나르기 위해 줄지어 선 자원봉사자들. ⓒ 정대희

흡착포를 나르기 위해 줄지어 선 자원봉사자들. ⓒ 정대희

모래 색은 자연 그대로지만 바위들은 거뭇거뭇하다. 이미 여러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닿은 곳이지만 기름이 휩쓸고 간 흔적마저 지울 수는 없다. 그나마 정리가 된 모습이라 한편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봉사단의 목표는 그곳이 아니다. 바로 백사장 너머라고 한다. 가는 길이 평탄치가 않다. 해안가 굴곡 많은 바위를 힘겹게 타넘던지, 절벽 비슷한 산길을 돌아가야 한다. 그리 편치 않은 복장이라 조금씩 숨이 차오른다.

 

그리고 눈앞의 현실은… 참담하다. 한숨부터 나온다. 아직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기름 범벅 그 자체다. 한숨을 쉬고 있을 겨를도 없다. 일단 배로 해안에 가져다 놓은 흡착포를 옮겨야 한다. 긴 줄을 서고 서로의 힘을 보탠다. 이어 각자의 자리를 잡고 기름을 닦기 시작한다.

 

그런데 너무 많다. 바위 틈 사이 숨어있는 덩어리를 건져내기가 수월치 않다. 숟가락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간밤 잠들기 전, 분명히 챙겨 오리라 마음먹었건만 게으름에 그만 잊고 말았다.

 

한참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바짝 바위에 들이대다 보니 속이 울렁거린다. 봉사 경험이 많은 이가 일하는 도중 자주 허리를 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셔야 한다고 일러준다.

 

남녀구분 없이 함께 한 봉사의 시간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기름 냄새에 시달려서인지 입맛은 없지만 먹어야 한다. 어차피 한정 된 시간, 조금이라도 열심히 하기 위해선 속을 채워야 한다. 분홍색 식판에 여러 반찬이 어울린 군대식 식사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도 봉사라고 믿고 싹싹 비워낸다.

 

국까지 한 그릇 더 청해먹고 커피까지 얻어 마시니 울렁대던 속이 가라앉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러 봉사단체에서 음료와 빵, 컵라면과 식사를 제공한다. 적어도 도와줄 의지만 있다면 봉사현장에서 배곯을 일은 없으리라.

 

다시 일과가 시작된다. 오전에 다른 곳을 맡았던 여성 참가자들도 나머지 시간을 함께 하기로 했다. 가는 길이 무척 험한데도 모두 군말 없이 따라 나선다. 봉사라는 단어가 지닌 뜻을 생각해본다.

 

모두 오전에 비해 손길이 능숙해졌다. 작은 돌을 집어 샅샅이 닦고, 바위 틈 사이로 힘껏 팔을 집어넣는다. 이어 천으로 어느 정도 기름을 닦아 낸 곳은 흡착포를 끼워 넣는다. 그래야 물이 다시 들어왔을 때 기름을 빨아들일 수 있다.

 

"다 좋은데, 해도 해도 일한 티가 안 나네. 끝이 안 보여."

 

어느 참가자의 하소연처럼, 닦고 돌아서도 사방이 기름 천지다. 몸이 하나인 것이, 팔이 두 개밖에 없는 것이 아쉽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우리 뒤에 올 다른 봉사자들을 위해서라도 짧은 시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아침에 받았던 하얀 방제복에 얼룩이 지고, 콧잔등이 새카매진다. 닦고 닦아도 검은 색이 지워지지 않는 바위들. 첫사랑이 할퀸 상처는 때론 아름답게나 기억되지만, 이곳을 덮친 기억은 과연 주민들의 가슴에 어떻게 남아있을까. 과연 그 눈물은 누가 닦아 줄 수 있을까.

 

다시 일상으로 향하는 길. 남겨진 이들은…

 

 흡착포 반, 사람 반. 기름 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흡착포 반, 사람 반. 기름 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 정대희

흡착포 반, 사람 반. 기름 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 정대희

물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더 하고 싶어도 손을 놔야만 한다. 뒤에 올 이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천을 모아놓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열심히 했지만 그리 홀가분하지만은 않다.

 

남겨진 이들의 몫이 너무 커 보인다. 감당할 수 있을까. 분명 우리 뒤에 다른 많은 이들이 오겠지만, 그리고 최선을 대해 봉사활동을 다하겠지만…. 봉사가 끝나면 기쁘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켠다. 웹상에 태안 자원봉사를 다녀 온 이들의 후기가 많다. 천천히 읽어본다. 모두 마음 착한 우리 이웃들이다. 그런데 때로는 섭섭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간 내고 돈 들여갔는데, 그곳 주민들의 반응이 마음 같지 않은 경우도 있었나 보다.

 

한편 일리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곳 주민들을 위해 갔는지, '우리의 바다'를 위해 갔는지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결국 서해바다는 그곳 주민들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결국 그들은 남겨진 이들이라는 점이다.

2008.01.07 11:48ⓒ 2008 OhmyNews
#태안 기름 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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