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 비로 산천은 푸르다
꽃과 잎
손잡고 어우러진 몸짓
그 사랑
탄성 메아리치듯
향기
확
풍긴다.”
문금자 시인의 시 '어느 봄날의 만찬' 전문이다. 어찌 이렇게 언어의 화폭이 간결하면서도 향기로울까? 나는 청소년 시절 어쭙잖은 시를 써본 적이 있지만 이후 시를 자주 접하지 못한 탓에 시를 잘 모른다. 하지만 우연히 접한 한 시집은 나를 시에 푹 빠지게 했다.
그동안 어쩌다 시집이 손에 잡히면 시인의 감정이 내게 전해지지 않아 읽다 말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현대시는 난해하기로 작정했나? 그러나 그렇게 시인과 독자가 벽을 사이에 두고 호흡을 할 수 없다면 과연 그 시가 찬란한 빛을 비출 수 없으리라.
<어느 봄날의 만찬>은 달랐다. 시인은 '눈 쌓인 시방산'으로 온몸을 떠는 눈꽃을 보여주더니 '꽃들의 유혹'으로 자신의 전생이 토종 잡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시를 써가는 내내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그저 아낙으로서 담담하게 삶을 노래한다.
'건넛집 할머니'에서 시인은 “취로사업 나가는 할머니 / 발자국 위로 / 눈이 내린다 / 눈이 내린다”라고 잔잔히 아픈 가슴을 쓸어내린다. 비가 아닌 눈이 내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또 '길'에서는 “어느새 누우런 나뭇잎 / 햇발 아래 졸고 있네”라고 자신의 심경을 묘사한다.
또 시인은 큰 동서에게도, 넷째 고모에게도, 건넛집 할머니에게도, 아파트 청소부 아저씨에게도, 구걸하는 할아버지에게도, 개미에게도, 버들치에게도, 어린 새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시집 전체에는 그 따뜻함만이 아닌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어쩌면 시인의 삶을 얘기할지도 모른다. 그 쓸쓸함, 시인은 아마 시를 쓰면서 언어로 묻어버리려 했을까? 그런데 쓸쓸함은 묻혀버리지 않고 시어 사이로 스멀스멀 삐져나온다.
그러나 시집에는 따뜻함, 쓸쓸함이 흘러 흘러 가는 대신 치열함 그것은 곳곳에서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현대시가 그저 별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독자에게 이 시집은 한 시인의 치열한 삶과 함께 따뜻함과 쓸쓸함의 향연으로 현대시에 대한 편견을 날리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다만, 이 시에서도 보이는 옥에 티는 제7부 '갈 수 없는 길'이 1~6부와는 좀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시인이 조금 욕심을 부렸을까? 또 시어의 구사에 토박이말을 좀 더 활용했다면 훨씬 반짝이는 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는 좀 지나친 요구일까?
그럼에도, 이 시집은 그동안 보아왔던 어떤 시보다 시인의 향기를 확 풍기고 있었다. 한 번도 시집 서평을 쓰지 않았던 내게 선뜻 붓을 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이 시집의 매력을 나는 독자들에게 내 가슴 넘어 던지고 있다.
- 우리는 청소년기 문학소녀, 문학소년이었다. 많은 청소년이 한 번쯤은 어쭙잖은 시 나부랭이를 써봤다는 얘기다. 하지만 장년 이후에 새롭게 시를 만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시를 쓰게 되었나?
"아이들이 모두 성장하자 나는 뭔가 잃어버린 듯했고, 괜히 허전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즐겨 읽었던 책을 다시 들췄다. 그러다 보니 허전함을 좋게 발산하려면 문학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문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밤에 자다가 문득 깨면 많은 상념이 떠올랐고, 시어가 생성되고 생성되었다. 이를 메모하고 정리하다 보니 한 권의 시집이 탄생했다."
- 어떤 이는 시를 쉽게 써야 한다고 하지만, 어떤 이는 독자가 이해하든 못하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 된다고도 한다. 시인은 시를 어떤 방향으로 썼나?
"자신의 마을을 잘 드러내기보다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나에게 시를 가르쳐 준 스승은 내게 시를 관념적으로 쓰지 말라고 했다. 한데 그것이 맘대로 되지 않았다. 그냥 대중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 형식으로 풀었고, 마음을 언어로 풀어내었다. 하지만, 의도대로 완벽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엉뚱한 길을 헤맨 듯하여 부끄럽다."
- '어느 봄날의 만찬' 가운데 “향기 / 확 / 풍긴다”라는 대목이 있다.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할 수 있었나?
"발문을 써준 서 선생님도 발문의 마지막에 이 시를 음미했다. 또 많은 사람이 좋아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향기는 마음의 향기이지 싶다. 벚꽃, 진달래가 흐드러졌을 때 뭉게구름 속에 있다는 느낌을 들었는데 그때는 아마 내가 천재였을 때 쓴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치열함을 모두 쏟아낸 지금 나는 바보일 뿐이다."
- '한 해를 보내며'라는 시를 보면 병술년이 저물어갈 때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 순하고 부드럽기를”라고 기도했다. 한데 아직도 세상 사람들의 눈길이 순하고 부드럽기는커녕 자꾸만 더 험해만 간다는 생각이다. 어째서 그럴까 시인의 눈으로 말해달라.
"한 은행에 시집 열 권을 주면서 돈 대신 어려운 사람을 좀 도와달라고 했다. 그런데 은행 직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나? 심지어는 그냥 비치만 해달라고 해도 놓지 못하게 하는 은행도 있었다. 이 모두 현대화되면서 우리 겨레의 따뜻한 심성이 상실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곧 치열한 경쟁만이 살길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회복해야 할 과제다."
- 세간에는 문학인들의 친일행적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문학과 친일은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친일을 한 사람에게서 진정한 예술이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곤혹스런 질문이겠지만 이에 대한 문 시인은 생각을 말해달라.
"독일과 일본은 똑같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하지만, 독일은 정부와 일반 국민까지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한다. 그런데 일본은 모른 체하는 것은 물론 뻔뻔스럽게 역사왜곡까지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일본을 미워하는지 모른다. 나는 이처럼 일제강점기 때 친일을 했더라도 해방 뒤 국민 앞에 사죄했더라면 용서받을 수가 있었는데 그것이 아쉽다는 생각이다."
- 시를 읽다 보면 순수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사람 냄새와 자연이 읽힌다. 그런데 그런 시인의 가슴 속에도 치열함은 존재할까? 그리고 앞으로 무슨 계획이 있나?
"시인은 치열함이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들을 쓰려고 몇 자 안 되지만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다 쏟아버렸다. 그랬더니 지금은 내 가슴 속이 텅 비었고,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이를 다시 채워야 하고 그래서 나는 다시 치열함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대담 내내 나는 문 시인에게서 향기로운 가슴과 함께 삶에 관한 한 수 지도를 받았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화롯가에 앉아있었던 듯 훈훈함은 헤어진 뒤에도 한참이나 남아있었던 것은 내가 남달리 감성적인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