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8.01.07 20:26수정 2008.01.08 10:53
초원의 아침은 상쾌했다. 지난 밤 거뜬하게 새벽 2시까지 젊은 친구들이랑 맥주를 따라 마시다가 기억도 없이 잤다. 6월의 씨라무런 초원의 밤은 꽤 추운데 술기운으로 잘 버틴 셈이다. 6월 23일 날이 밝자 청아한 공기를 실컷 마시며 아침을 먹었다. 간단하게 만두와 죽으로.
원래 빠털은 가이드 경력이 5년이 넘자 봉고차 한 대를 장만해 부인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부인이 주로 운전을 한다. 초원과 사막 여행은 최소한 5명 이상 인원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여러 팀이 고객을 통합해 운영하는가 보다. 그래서 이번에는 빠털이 빠지고 그의 부인이 동행했다.
아침을 먹자마자 네이멍구 다라터치(达拉特旗) 쿠부치(库布其) 사막을 향해 갔다. '쿠부치'는 몽골어로 활시위(弓弦)라는 뜻이라 한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쿠부치 두쟈춘(度假村)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오후 1시 즈음이다. 4시간이나 걸렸다.
입장권(30위엔)을 사고 나니 양말을 사라고 한다. 샤와(沙袜)라고 하는 사막 모래를 막는 커다란 양말을 10위엔에 빌렸다. 양말 신고 나니 사막 지프차인 위에예처(越野车)를 타야 하는데 또 30위엔을 내라고 한다. 일행이 대부분 학생들이니 부담스러운가 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6월의 한낮은 아무리 북쪽 지방이라 해도 덥다. 게다가 사막 코 앞 아닌가.
지프차는 거의 20~30명을 타도 될만큼 컸다. 게다가 바퀴는 탱크다. 그 옆에 4인용 지프차가 있어서 물어보니 그것은 더 비싸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하나 보게 되면 그것은 곧 '비용'과 직결된다. 아무 이유 없이, 자연이건 인공이건 이곳에 있을 까닭이 있겠는가.
사막 역시 두쟈춘 또는 뤼여우취(旅游区)라고 일정한 영역 내에서만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사막을 꿈꿨던 도지는 약간 실망한 눈빛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비'나 '타클라마칸' 사막을 동경했다고 내내 이야기했으니 이런 '안전한 사막 바캉스'가 마음에 찰 리가 없다.
지프차는 그야말로 적진 앞으로 진격하는 탱크 자체였다. 큰 덩치의 30인승 '탱크 지프차'는 시속 40~50킬로미터로 쌩 달린다. 평지라면 대수롭지 않겠지만 사막이다. 모래 능선을 타고 올랐다가 내려갈 때는 거의 폭포처럼 떨어진다.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다. 이 예상하지 못한 쾌감은 30위엔을 지불한 것에 못마땅하던 우리 일행들을 완벽히 입막음했을 정도다. 그렇게 10분 채 안 돼 도착한 곳. 거기에 낙타가 있다.
낙타들은 주인을 기다리며 맑고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부드러운 털이 바람에 살짝 날리며 계속 눈길을 마주치고 있는 낙타들이 귀엽다. 도지와 함께 사막 위를 걷는 낙타를 찍느라 낙타를 타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사막을 걷는 낙타들의 행렬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꽤 인상적이다.
도지는 나를 찍고 나는 도지를 찍었다. 그리고 사막의 깨알같은 모래도 담았다. 사막 한가운데를 유유히 거니는 낙타가 있어 메마른 사막을 아주 '영화'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가 보다. 1시간 동안 사막 곳곳을 걸었다. 사막 언덕을 올라도 가보고 내려도 가보고. 사막 위에 글씨도 써보고 지워도 보고.
갑자기 사막을 달리는 ATV, '사륜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4대에 8명이 탄 이 차량은 사막 언덕을 순식간에 내려가더니 멀리 사라진다. 정말 쿠부치 사막에서 한나절 즐길 만한 놀잇감이 참 많다.
사막의 별미 모래썰매도 있다. 무더위에 무슨 썰매일까 의아해 할 수 있는데, 휭 내려가는 모습이 참 재미있어 보인다. 몸무게가 무거울수록 더 빠르게 내려온다. 학생들은 이 놀이가 재미있는지 두 번씩 탄다.
한 번 타는데 10위엔. 점점 가속도가 붙어 바닥에 닿을 때면 거의 속도가 장난이 아니게 빠르다. 겁도 없다. 그런데 나뭇조각을 이어 만든 썰매 판을 들고 다시 올라가야 하는 일은 참 느릿느릿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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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부치 사막 몽골고원의 쿠부치 사막 관광지에서 낙타와 사막, 썰매 등으로 재미있게 즐긴 하루였다. ⓒ 최종명
▲ 쿠부치 사막 몽골고원의 쿠부치 사막 관광지에서 낙타와 사막, 썰매 등으로 재미있게 즐긴 하루였다.
ⓒ 최종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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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후허하오터로 돌아가야 한다. 대부분 일행들은 이날 밤기차로 베이징과 텐진으로 돌아간다. 사막을 나오니 샤와를 걸어놓은 모습이 보인다. 200여 장은 될 듯하다. 그만큼 사막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사실 쿠부치 사막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치는 황사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생태 숲을 만드는 일로 자주 소개되는 곳이기도 한데 이렇듯 즐겁게 놀고만 가기엔 좀 아쉽기도 하다.
후허하오터에 다시 돌아오니 오후 6시가 조금 넘었다. 나는 하루 더 묵을 예정이다. 도지와 몇몇 친구들은 늦은 밤 기차를 탄다. 빠털이 약속대로 훠궈로 저녁을 먹자고 왔다. 그리고 빠털의 딸 주어린(卓琳)도 왔다. 네이멍구(内蒙古)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만난 몽골족 다오여우(导游) 빠털(巴特儿)은 부인과 함께 일을 하고 예쁜 딸 주어린은 여동생이 돌봐준다.
주어린은 표정이 상큼하고 약간 고집도 있어 보이는데 웃거나 노래하고 춤출 때는 영락없이 예쁘다. 우리 일행은 마치 ‘전지현 같다’고 칭찬했다.
도지 왈, 평소 얼굴은 평범하지만 연기를 하거나 노래를 하면 번득이는 끼가 드러나 표정이 180도 바뀌는 '전지현'과 너무 비슷하다며 계속 추켜세웠다.
훠궈에 술까지 먹어 약간 취기가 올라 좀 과장이긴 하지만 너무나 귀여운 ‘여우’ 같은 표정 때문에 우리 모두 즐거웠다.
노래 한번 해보라고 하니 뺀다. 엄마 품으로 쏙 들어가서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계속 몇 번 '예쁜 주어린 노래가 듣고 싶어요'하며 '예쁘다'를 강조하니 드디어 노래를 한다. 그러더니 신이 났던지 춤도 춘다.
아주 열심히 우리에게 공연을 벌인 주어린에게 100위엔을 주니 받지 않는다. 빠털이 괜찮다고 하니 그때에서야 쑥스럽게 받는 모습을 보니 우리 풍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빠털은 그런 주어린이 기특한가 보다. 우리가 계속 예쁘다, 재능 있다 하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여행 중에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부담도 없고 즐겁다. 게다가 이렇게 탤런트 기질이 있는 아이를 만나면 더욱 그렇다. 몽골족이지만 중국어도 배울 터이니 한국에 데려다 가수로 키우면 좋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 했더니 빠털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만큼 딸에 대한 애착과 기대가 큰 것이리라.
빠털은 훠궈를 먹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노래 한자락을 불렀는데 '멍구런(蒙古人)'이란 노래다. '저쓰멍구런러아이(这是蒙古人热爱~)하면서 부르는 모습이 애잔하다. 한족의 나라 중국에서도 드넓은 초원을 휘젓던 유목민족 몽골족 자치의 땅에서 듣는 노래가 왠지 가슴도 아파져 온다.
그래서, 우리는 답가로 '아리랑'을 불렀는데, 꼭 노래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가사를 적어주고 그 밑에 발음도 달아줬다. 아마 한국 관광객이 오면 '아리랑'을 부르는 빠털을 볼지도 모르겠다.
저녁을 먹고 헤어지려는데 빠털이 맥주 한잔을 더 하자고 했다. 양뤄촬(羊肉串儿)에 맥주를 마시는데 빠털 부인이 한국말을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역시 몽골족이고 빠털과 함께 일하는데 열심히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 노트에 일일이 발음을 몽골어로 적어가면서 묻고 또 묻는다.
빠털의 딸 주어린은 너무 늦은 시간이라 좀 피곤해 보였다. 그래도 그 귀여운 표정을 본능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 말을 좀 가르쳐 주려고 했더니 아주 비싸게 군다. 몽골어를 배워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你好)는 '센 베이 누(sain-bai-noo)'라 한다. '고맙습니다'(谢谢)는 '바이 엘 라(by- yar-la)'라 하고 글자는 'Баярлалаа'라고 쓴다. 정말 어렵다.
우리말과 같은 알타이어 계통이라 친근하게 접근했는데 막상 너무 낯설다. 인사 두마디 겨우 배운 것으로 만족한다.
빠털 가족과 헤어진 후 호텔에서 푹 잠을 잤다. 다음날 6월 24일. 후허하오터에 오자마자 예매했던 티켓을 바꿨다. 원래 란저우(兰州)로 가려던 일정을 인촨(银川)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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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족 아이 '주어린'의 재주 '주어린'이 춤추고 노래한다. 정말 귀엽다. 조금 까다롭기 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늦게까지 힘들면서도 애교는 남아있다. 한국말을 배우는 주어린 엄마, 노래하는 아빠. 그들 가족을 뒤로 하고 몽골초원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 최종명
▲ 몽골족 아이 '주어린'의 재주 '주어린'이 춤추고 노래한다. 정말 귀엽다. 조금 까다롭기 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늦게까지 힘들면서도 애교는 남아있다. 한국말을 배우는 주어린 엄마, 노래하는 아빠. 그들 가족을 뒤로 하고 몽골초원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 최종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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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허하오터 플랫폼에 노란색으로 선명하게 '우리 직원들은 여러분 곁에 항상 있다'는 글씨가 보였다. 서둘러 자리에 오르느라 몰랐는데, 자리에 앉으니 새삼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중국도 갈수록 서비스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낮 12시 조금 지나 출발, 네이멍구 초원을 서쪽으로 가로질러가며 장장 10시간을 가야 한다. 대낮에 드넓은 고원 지대를 지나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매번 밤 기차로 움직이다가 낮에 기차를 타고 가니 색다르다.
중국은 크게 4개의 고원지대가 있다. 황토고원(黄土高原), 운귀고원(云贵高原), 청장고원(青藏高原)과 함께 지금 달려가고 있는 내몽고고원(内蒙古高原)이다.
해발 1000~1400미터에 이르며 남북으로는 네이멍구 자치구와 몽골공화국에 이르며 동서로는 중국 최북단이기도 한 헤이룽장(黑龙江)의 따씽안링(大兴安岭)에서 깐쑤(甘肃) 허씨줘랑(河西走廊) 북쪽에 있는 마종산(马鬃山)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말한다. 내몽고 고원의 남쪽을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서서히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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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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