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한반도 대운하를 걱정한다

등록 2008.01.08 14:47수정 2008.01.0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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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줄 사람에게 묻지도 않고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작금의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에 딱 맞는 말이다.


운하에서 떡 줄 사람은 화주이다. 30년 이상을 현장과 책상에서 운송과 물류를 관찰하고 연구해 온 내가 보기에 운하를 이용할 화주가 거의 없다. 전혀 불필요한 운하를 수십 조를 들여 건설하겠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납세자로서 답답하고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우선 운하는 느리고 번거롭고 위험하며 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못하는 등 운송과 물류 측면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물동량의 80%가 경부운하를 이용하고 연 4조5천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예측은 운송과 물류를 전혀 모르는 어떤 얼빠진 사람이 꿈꾸듯 만들어낸 수치에 불과하다. 토목건설 전문가인 이 당선인이 뭔가 정치적 발판으로 삼을만한 공약거리로 이 얼토당토않은 환상의 수치에 현혹된 것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한다.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 근본적으로 운하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근본적으로 운하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열 말이 필요 없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천연의 바닷길을 이용하는 연안해운이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도 화물이 없어 서비스를 중단한 것을 보면 경부운하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운임이 싼 연안해운이 도로와 철도에 밀려 도태된 것이다. 연안해운이 서비스를 중단한 것은 현재의 도로와 철도만으로도 화물운송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체증이 심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이곳저곳으로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교통량을 분산시킴으로써 6시간이면 서울-부산을 주파한다. 화물도 인천, 광양, 평택, 목포 등으로 분산되어 부산항의 화물처리 비중도 작아졌다. 더욱이 2011년에 KTX가 완전히 개통되면 철도의 운송능력이 획기적으로 늘어 앞으로 늘어날 화물을 소화하는데도 문제가 없다.


컨테이너 화물이 경부운하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내륙에 있는 시멘트 공장의 시멘트와 원료인 유연탄을 수송한다고 한다. 시멘트 공장도 운하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시멘트 공장 구내까지 철도가 연결되어 있다. 철도는 제품과 원료를 곧바로 싣고 내릴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강물을 시멘트 공장으로 끌어들일 수 없기 때문에 운하는 트럭으로 옮겨 싣고 내려야 한다. 그 비용과 시간이 적지 않고 번거롭기 그지없다.


또한 시멘트의 주요 수요처는 대부분 수도권(강원, 충북-수도권)이며, 경남, 전남 등 남도지역과 항만 인근 권역은 연안해운으로 커버하고 있다. 연안수송 시멘트는 생산시설이 강원도 삼척 등 항만에 근접해 자리 잡고 있다. 포항, 광양, 당진 등에서 생산되는 철강재도 대부분 연안해운을 이용 중이며, 내륙운하와 거리가 멀어 운하를 이용할 가능성이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운하를 이용할 정기 대량화물은 없다.


인수위 팀장은 운하운임이 컨테이너 1개당 15만원이라고 주장하는데 터무니없는 날조된 수치이다. 수십조원 건설비용의 금융비용만 반영해도 개당 원가가 시나리오별로 150∼300만원 선이다. 거기에 운하관리 유지비용과 하역 및 트럭킹 등 부대비용이 추가되면 엄청나서 아예 계산할 필요도 없다. 금융비용만 '150∼300만원'이라는 계산 근거는 (http://blog.naver.com/balance1202/10024720581)에 상세히 나와 있다.

 

바지선이 경부간을 24시간에 주파한다고?... 사실을 왜곡한 주장 


그리고 바지선이 경부간을 24시간에 주파한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바지선은 유선형이 아니라서 속도를 낼 수 없다. 추진팀은 바지선의 평균시속을 23km로 잡은 것이다. 통상 바지선은 시속 15km로 본다. 23km를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연료소모가 3제곱 함수로 늘어난다. 만약 15km에 10톤을 소모한다면 23km는 36톤을 소모하게 된다.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바닷길을 이용하는 연안해운은 한번 출항하면 거칠 것이 없지만, 운하는 갑문도 통과해야 하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거리는 가까워도 연안해운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연안해운은 인천-부산 항해시간 28시간을 포함하여 하역 및 트럭킹 시간을 합해 창고-모선간 총 84시간이 걸린다.


경부운하는 항해 37시간(550km/15km), 갑문통과 10시간(20개×30분), 하역 및 트럭킹 56시간, 총 103시간, 즉 창고-모선간 4.3일이 걸린다. 모든 것이 정상적일 때이다. 도로는 창고-모선간 6시간, 철도는 오봉-부산간 7∼8시간, 상황에 따라 창고-모선간 총 1∼2일이면 족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운하가 제대로 가동하기가 힘들 것으로 본다. 겨울철에는 물이 부족해서 힘들고, 여름철에는 홍수로 밀려든 토사를 준설해야 하니 바지가 운항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운하는 돈 먹는 불가사리가 되어 두고두고 나라의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실패작이 될 것이다. 양양공항, 무안공항과 함께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용할 고객이 없기 때문이다.

 

나룻배 타고 '소양강 처녀' 부르기 위해 수십조 낭비?


인수위에서 운하에 대한 여론조사를 해본 결과 찬반이 비슷해서 의기양양하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TV 화면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현란하게 조작되어 소개되는 운하를 뭔가 낭만적(romantic)인 이미지와 결합시켜, "뱃놀이 유람도 하고 좋은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룻배를 타고 '소양강 처녀'를 부르기 위해 수십조의 돈을 낭비할 만큼 이 나라는 돈이 넘치지 않는다.


경부운하의 경우 민간회사에 맡긴다고 하지만, 정부의 보조가 없는 한 어떤 회사도 이 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구태(舊態)를 벗지 못하고 권력의 요구에 굴복하여 수익성도 없는 사업을 차입금으로 시작해 놓고 파산을 하면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이 된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운하추진팀은 네덜란드 등 자꾸만 외국을 들먹이는데, 그들은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 용역이나 따볼까 해서 부추기는 것이다.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무용(無用)한 운하가 아닌 유용(有用)한 프로젝트에서 해법 찾아야


많은 사람들이 운하건설을 서두르는데 놀라고 있다. 이 당선인이 "당선의 기쁨은 순간이고 걱정이 어깨를 짓누른다"고 했다는데, 조급증과 강박감이 원인인 것 같다. 재임기간 내내 운하공사로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활성화로 미봉(彌縫)하여 이른바 '7-4-7' 공약달성을 노리는 것 같다.


전혀 효과가 없는 물류의 이름을 빌려 대규모 취로사업을 벌이려는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의 TVA를 모방한 것이다. 이는 단발성 전시효과는 있겠지만, 국가 백년대계에 대단히 해로운 유물로 남을 것이다. 경제사에서는 미국의 불황은 TVA가 아닌 2차 대전으로 해소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무용(無用)한 운하가 아닌 유용(有用)한 프로젝트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정된 재원으로 투자할 곳이 무수히 많은데, 왜 하필 무용한 운하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고 걱정스럽다.


한번 시작을 해놓으면 물러설 수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다. 지금 운하를 서둘러야 할 정도로 물류 문제가 시급하지 않다. 이 사업을 추진해 온 사람들에게는 속이 쓰리겠지만 과감하게 폐기할 것을 권고한다.

덧붙이는 글 | 임석민 기자는 한신대학교 경상대학 교수입니다. 

2008.01.08 14:4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임석민 기자는 한신대학교 경상대학 교수입니다. 
#경부운하 #물류효과 #연안해운 #바지선 #7-4-7 공약 #한반도대운하 절대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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