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의료기관' 한의학 폄하하는 양의사들

[주장] 한의사가 본 최근 한의학 폄하 사태

등록 2008.01.16 21:52수정 2008.01.1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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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최근 '한의학 폄하' 논란을 불러일으킨 MBC 수목 의료드라마 <뉴하트>

최근 '한의학 폄하' 논란을 불러일으킨 MBC 수목 의료드라마 <뉴하트>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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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경영의 새판을 짜는 정권 교체적 과도기에 접어들면서, 사이버공간의 이곳저곳에서 양방의학계의 한의학 비난 글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각 언론사나 포털의 블로그는 물론, 심지어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에게까지 양의학계가 ‘자신들만의 정치논리를 홍보하는 한의학 폄하서적을 보내는 행위까지 있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주장은 다종다양한 논리를 동원하지만 결국 그들의 논리가 종착하는 지점은 ‘한의학을 없애고, 미국처럼 양방의학으로 일원화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논리를 가장 강하게 뒷받침한다고 하는 근거로서 ‘한의학은 미신적인 주장일 뿐, 효과를 검증할 수 없다’는 일방적 주장으로 축약된다.

이러한 현상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요사이 돋보이게 드러나는 양방의학계의 행태와 관련한 현상과 주장을 살펴보자면, 참으로 개탄스러움을 금치 못하게 되기에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4차 의료기관'이 된 한방의료기관

우선, 현장에서 임상에 임하는 한의사인 필자가 보기에, 그들의 ‘한방 무용론’은 참으로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로 보인다. 한때 보신의학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한의학이지만, 현재는 인삼, 당귀, 홍삼, 녹용 등을 식품으로 마음껏 활용하는 ‘건강기능식품’이라는 상업적인 영역으로 보신분야를 떼어내고도, 의료의 현장에서 ‘4차 의료기관’으로서 활약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보통 의료기관은 1차 의원급, 2차 병원급, 3차 종합병원급의료기관의 전달체계이지만 그에서 치료되지 않은 환자가 의지하게 되는 곳이 한의원이라는 의미에서 4차 의료기관이라는 표현을 빌었다.


즉, 현재(사실은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한의원은 (참으로 안쓰럽게도) ‘서양의학이 패러다임적 한계 때문에 치료하지 못한 환자들의 종착역’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나의 진료실에 내원하는 환자를 문진해보면 그들의 70~80%는 이미 양방치료를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경우로서, 우선 몇 가지 사례만 열거해 보자.

▲ 한 달이 넘도록 내과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는 허증 감기환자


▲ 만성설사병으로 8개월이 넘도록 양방1, 2, 3차 병원을 전전하면서 치료받아도 호전이 없어 한의원으로 내원하여 흡수장애로 손쉽게 치료된 팔순의 할머니

▲ 폐결핵 경력이 있고, 음허(陰虛, 진액부족현상을 일컬음)하여 조열(潮熱, 주기적인 열)이 나면서 만성적으로 기침하는 환자에게, 내과에서 억지로 기침을 멈춘다고 진해제를 투여하여 흉곽에 심각한 통증을 느끼면서 해결되지 않아 내원한 중년의 남성환자

▲ 내과에서 감기라고 두 달 이상 치료를 받다, 지인의 권유로 내원한 갱년기증상의 여성

▲  부인과에서 부작용이 심각한 여성호르몬 치료제로 오랜 기간 치료받다가 유방에 몽우리가 지면서 포기한 또 다른 갱년기 여성

▲ 어지럼증(한의학에서는 이를 현훈(眩暈)이라 함)이 심각한 환자에게, 이비인후과에서 ‘달팽이관 이상’이라며 진통소염제로 수개월을 치료받다가 호전이 전혀 없어 내원하는 환자(이 경우는 매우 잦은 편인데, 올바른 한의학적 변증과정을 거치면 비교적 쉽게 치료되는 경우)

▲ 심지어는 극단적인 경우로는, 정기검진 시 Hb(헤모글로빈)수치가 낮다고 하여 국내 최고의 대학병원을 찾아갔더니, 혈액암이 의심된다며 항암치료를 하다가 더욱 악화되어 치료를 포기한 이후, 한약제제와 홍삼 등으로 Hb수치가 정상에 가깝게 호전되어지는 경우까지 아주 다종다양한 병증들이 한의원에 찾아오는 경우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사례가 있으나, 이들의 대부분은 병의 심각성이 중해서가 아니라 공격적인 서양의학적 치료법의 패러다임과는 맞는 않는 경우로서 한의학적 치료가 주효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방치료를 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친다는 양방측 이야기와는 다르게, 올바른 한방 치료법을 제때 썼다면 남용되지 않았을 항생제, 스테로이드제, 그리고 호르몬제들이 엄청나게 남용되고도 증상이 악화되어 한의원으로 내원하는 경우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음도 한의학 임상의 현장에서 목도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사실 이러한 4차 의료기관 문제는 유독 한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서양의학의 종주국이라하는 미국에서조차, 제도권의학인 서양의학의 패러다임적 한계(더불어 극단적으로 높게 책정된 의료수가도 역할을 하지만) 때문에 대체의학이 4차 의료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미국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이라면 쉽게 알고 있으리라.

세계적 조류를 거꾸로 걷는 한국의 양방의학계

문제는 패러다임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의 침구학 도용사태는 어떠한가? 최근 서양의학의 패러다임적 한계를 인식한 구미선진의학계는 동양 침술의 효능에 눈을 돌려, 침구술이 의학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유용함을 자신들의 틀 속에 실험검증을 통해 수용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한국의 양방 의사들은 미국 의사들이 그러하니 자신들도 임상에서 침구술을 써야겠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다.

헌데, 그들의 이 논리를 보고 있자면, 참으로 한국 양방의학계의 사대주의적 속성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미 천년이 넘도록 우리 의학의 현장에서 민초들에게 실증적으로 인정받아온 침구술을, 그동안은 그저 ‘미신적 속임수’라느니 아니면 고작해야 ‘플라시보의 효과’라는 등의 막말로 폄하하기에 급급하던 그들이, 이제 그 침술의 효과가 바다건너 미국에서 인정받을 동안은 수수방관하고 있다가, 그 결과적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의료영역확장의 차원에서 권리주장을 하고 나오기 시작한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과연 그들이 생명과 치유를 돌보는 양심적인 의사라면, ‘고래 적부터 우리의 앞마당에서 우리의 선조들에 의해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유효하게 행해져온 침술과 한약들이 과연 어떤 점에서 효과를 발휘하는지 함께 연구를 해보자’고 열린 마음으로 먼저 제안해 왔다면, 한국의 한의학계가 그들의 손을 뿌리칠 하등의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일면 ‘의료일원화’란 이처럼 생명에 대한 고민과 진정 겸손한 경외심에서 출발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지, 그들이 현재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엄연히 전문가 영역으로 존재하는 한의학계를 무시하고) 침술과 한약처방의 흡수통합을 골자로 의료일원화의 논리는 그저 밥그릇에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명백하고도 솔직한 방법을 무시한 채, 실질적으로 동양침술에서 시작되어 그 연원이 일천하기 그지없는 IMS라는 서양식 의학을 근거라며 영역주장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그들에게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침술에 대한 그들의 돌연한 태도 변화는 한국의 양방의학계가 가장 중시해야할 생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빼놓은 채, 그저 미국식 내지는 서양식 의학을 추종하는 사대주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지 알기 어렵다.

드라마 '뉴하트', 그 사대주의적 정점

최근, ‘뉴하트’라는 드라마에서는, 양방의사가 '이런 것 먹고 죽으려 하느냐?'는 식의 대사를 내뱉거나 조폭으로 하여금 한약 팩을 내동댕이치게 하는 광경이 방영되어 물의를 빚고 있다. 과연 그 한약을 처방한 한의사가 환자를 죽이려고 약 처방을 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참으로 분개보다는 실소를 머금을 시나리오가 아닐수 없다.

이를 두고 한번 더 곱씹어보면, 그 장면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서양식교육에만 익숙한 드라마작가나 일본식 의학드라마의 열풍에 편승한 드라마 제작자, 더불어서 대기업이 설립한 대형병원에 소속되어 그 장면을 자문해주었다는 양방의사선생의 한의학에 대한 몰이해와 폄하의도가 다분히 표출되어진 상징적인 사건이다.

해서 그동안 언론의 한의학에 대한 여러 편파외곡보도에도 보수적인 입장에서 사회적인 불협화음을 걱정하여 자제해 왔던 한의사들에게도 너무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기에, 한의사개원의협의회에서 이 드라마에 대한 법적인 송사절차를 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다시 한번 한국의 양방의사들에게 묻는다.

과연 그들의 사대주의적 태도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그들은 자신의 앞마당에서 벌어진 침술을 효과를 일개 미신요법으로 치부하다가,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학계가 효과를 인정해주는 조처를 취한 연후에야 침술의 효과를 인정하며, 심지어는 한의사라는 엄연한 전문가집단이 존재함에도 침술의 사용권까지를 주장하는 몰상식의 극치를 보여 왔다.

한약의 효과 또한 현재 미국의 유수한 의과대학인 존스홉킨스나 하버드메디칼 등에서 한국의 한방의료진과 함께, ‘대체 그 효과가 어데서 어떤 메커니즘으로 오는지?’에 대한 다양한 공동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서양적 시각에서 그 효과를 검증해보려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헌데 침술권 주장과 같은 맥락을 연장해보면,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의 양방의사들은 한의사들이 임상의 현장에서 분명한 효능을 가지고 사용하고 있는 한약의 효과에 대해 일방적 폄하만을 일삼고 있을 뿐, 그 효능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고민은 도외시하고 있으니, 우리의 한약처방의 원리가 다시 먼 길을 돌아 서양인들에 의하여 그 효능이 밝혀진 연후에나 효능을 인정하고 권리까지 주장하는 사대주의적 태도를 보일 것인가를 묻게 된다.

누가 뭐래도, 한국에 수용된 한의학(韓醫學)은, 세계가 동양의학의 종주국이라 인정하는 중국의 파고를 넘어 허준 선생으로 대표되는 동의보감이라는 걸출한 고민과, 이제마 선생의 사상체질의학으로 대표되는 창조적 결과물을 내면서 수많은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선조들에 의해 주체적으로 발전되어왔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학사의 맥락은 뒤로한 채, 무조건 서양적인 것만을 최고로 지향하는 한국의 양방의학계는, 스스로 생명과 의학에 임하는 자신들의 자세에 대하여 겸허히 돌아보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 김준회 기자는 한의원 원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준회 기자는 한의원 원장입니다.
#한의학 #서양의학 #한의사 #양방의사 #사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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