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

[중년 들여다보기 11] 책 <아버지와 함께한 하루>

등록 2008.01.18 17:10수정 2008.01.1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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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말, 나보다 두 살 위인 남편 선배의 간암 발병 소식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집 남매의 나이가 우리 두 아이와 같아서 더했을까. 가슴이 먹먹하고 안타까웠다. 색전술 후 환자와 가족 모두 씩씩하고 담담하게 투병을 하고 있다.  

 

며칠 전 들은 대학원 동기의 폐암 발병 소식 역시 충격이었다. 건강하고 건실한 모범생에, 복지관의 관장 일이며 어머니 노릇까지 얼마나 참하고 성실하게 해내시는지 늘 부럽고 존경스러웠던 분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요양 중으로, 당분간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해 들었다.

 

남편 선배는 올해 51세, 대학원 동기는 54세이다. 우리 나이가 이런 때인가. 인생 팔십 시대를 넘어 구십 시대, 백세 시대를 구가하며 젊게 사는 어르신들을 질리도록(?) 많이 보면서 사는 처지라서 그런지 중년의 치명적인 발병은 늘 충격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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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아버지와 함께한 하루> ⓒ 도서출판 꽃삽

▲ 표지 <아버지와 함께한 하루> ⓒ 도서출판 꽃삽

책 <아버지와 함께한 하루>의 주인공 '네이선'은 41세. 자나깨나 일밖에는 모르는 사람이다. 어느 날 다니던 공장에서 추락사고가 일어나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치료와 검사 과정에서 폐에 흰 반점이 발견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직장에서는 간접적으로 퇴직을 유도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직장, 그러나 자기 자리는 이미 다른 젊은이에게 넘어가 있고 네이선은 분노와 배신감에 어쩔 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옆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다.

 

교사인 아내와 딸아이의 여름방학을 맞아 세 식구는 네이선이 나고 자란 고향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연세가 많지만 아직도 정정하신 외할머니가 계시고, 무뚝뚝한 아버지가 계신다.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마지막 순간 자리를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간직하고 있는 중년의 아들은 아버지와의 만남이 불편하기만하다. 노년에 이른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과 말씨로 옆에 머문다.

 

그러다가 그랜드캐니언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게 되는 부자(父子). 감정의 갈등, 의견 차이 등등의 우여곡절 끝에 두 남자는 목적지에 이르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생각지 못한 화해와 소통을 경험한다.

 

어떻게 보면 시한부 인생이 된 사람이 주위 사람들과 화해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뻔한 이야기같지만, 사이사이 삶의 전환기에 이른 중년의 처지와 사람이 노년기에 이르러 느끼는 회한, 또 그에 상응하는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아들에게 이야기한다.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 모두가 시한부 인생이야. 각자 처해 있는 단계가 모두 다를 뿐이지."

 

맞다. 간암이나 폐암, 혹은 책 속의 네이선처럼 폐에 흰 반점이 생긴 사람만 시한부 인생인 것은 아니다.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 다만 남은 시간의 길이에 서로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중년에 맞은 커다란 위기에 네이선은 처음에 당황하고 화내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결국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물론 거기에는 가족들의 도움과 협조와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

 

이제 좀 자리가 잡힌 듯하고, 그저 열심히 벌어서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면 다 될 것 같은 순간에 닥쳐오곤 하는 삶의 위기. 중년은 그래서 안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면서도 또한 그 어느 시기보다 위태로운 때이기도 하다. 

 

아, 이 어려운 때에 무엇을 붙잡고 걸어가야 하나. 눈앞의 일들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떨어져 삶을 조망해 보는 눈을 갖도록 하는 게 중년의 발달 과업 아닐까. 중요한 것은 그 일은 그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것. 바로 중년에 이른 내가 손수 해야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중년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아버지와 함께 한 하루, Live Like You Were Dying>(마이클 모리스 지음, 김양희 옮김 / 꽃삽 2007)

2008.01.18 17:10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아버지와 함께 한 하루, Live Like You Were Dying>(마이클 모리스 지음, 김양희 옮김 / 꽃삽 2007)

아버지와 함께한 하루

마이클 모리스 지음, 김양희 옮김,
꽃삽, 2007


#아버지와 함께한 하루 #중년 #노년 #나이 듦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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