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자연 경관만 있다구요?

[거문도 여행 2] 오롯한 역사와 문화가 배어있는 섬, 거문도

등록 2008.01.21 11:41수정 2008.04.10 10:45
0
원고료로 응원
a 장촌 마을 표지석 과거 거문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던 곳으로, 표지석 뒤로 거문도 뱃노래 전수관이 보입니다.

장촌 마을 표지석 과거 거문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던 곳으로, 표지석 뒤로 거문도 뱃노래 전수관이 보입니다. ⓒ 서부원



택시를 불렀습니다. 섬에 달랑 한 대뿐인 탓에 귀한 존재이긴 하지만, 멀어야 5킬로미터 남짓의 짧은 거리만 오가다 보니 오래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은 없습니다.


미터기가 달렸긴 해도 굳이 쓰지는 않습니다. 인원에 상관없이 무조건 먼 곳은 만원, 가까운 곳은 5천원입니다. 거칠고 가파른 도로 사정과 빈 차로 돌아올 것을 감안하면 그리 비싸다 할 수는 없습니다.

뭍에서 온 관광객이 아니라면 주로 면사무소와 보건소가 있는 고도와 서도를 오가는 주민들이 주로 이용합니다. 특히 거문도에는 병원이 없기 때문에 보건소는 주민들에게 있어 각별한 존재일 수밖에는 없는데, 이 경우 택시는 대중교통 수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구급차입니다.

여섯 시간 남짓 걸린다는 종단 등산로가 정비돼 있지만, 그럴 요량이 아니라면 서도는 걸어서 둘러보기에는 무리입니다. 서도는 남북 방향으로 10킬로미터쯤 되는 비교적 큰 섬입니다. 면사무소가 있는 고도와 아직 다리로 연결되지 않은 동도를 합한 것보다도 훨씬 더 넓습니다.

고도가 영국군과 일본인에 의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거문도의 중심은 서도였습니다. 뭍은 오가는 쾌속선이 거문도항에 닿기 전에 들르는 서도리(장촌)와 해군 부대와 거문중학교가 있는 삼호교 너머 마을, 덕촌리는 거문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서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거문도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함께 옛 섬사람들의 자취, 더불어 최근 개발되는 모습을 두루 살펴볼 수 있습니다.

a 장촌 마을 전경 거문초등학교 서도분교에서 내려다 본 장촌 마을 전경입니다. 서도 분교는 거문도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로, 건물 옆에 백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장촌 마을 전경 거문초등학교 서도분교에서 내려다 본 장촌 마을 전경입니다. 서도 분교는 거문도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로, 건물 옆에 백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 서부원




녹산 등대가 곧추서 있는 섬의 북쪽 끝은 서도리(장촌)입니다. 넓지는 않지만 아늑하고 물빛이 눈이 시릴 정도로 맑고 푸른 이곡명사해수욕장이 있고, 거문도 뱃노래 전수관과 거문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학교(거문초등학교 서도분교)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a 서산사 입구 만해 김양록의 위패를 모셔놓은 서산사는 찾는 발길이 뜸한 탓인지 안내판이 넘어져 있고, 잡풀만 무성합니다.

서산사 입구 만해 김양록의 위패를 모셔놓은 서산사는 찾는 발길이 뜸한 탓인지 안내판이 넘어져 있고, 잡풀만 무성합니다. ⓒ 서부원


특히 마을회관 옆에는 마을의 유래와 배출한 인물 등에 관한 각종 사료를 진열한 유물전시관이 갖춰져 있어 마을의 오롯한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마을 이름을 내건 전시관은 뭍에서도 쉬이 찾아볼 수 없습니다. 평상시에는 잠겨 있지만, 마을회관 2층에 상주하는 이장님께 부탁하면 내부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장촌 유물전시관 바로 옆은 거문도 뱃노래 전수관입니다. 전남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거문도 뱃노래는 400여 년 전부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이어져 내려온 남도의 대표적 노동요입니다.

지금도 해마다 5월 즈음이면 대규모로 풍어제를 열고 있는데, 이곳에 전수관이 들어선 것도 여전히 때 묻지 않은 어촌인데다 뱃노래의 신명나는 흥취가 가장 잘 간직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마을 안 소담한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막다른 곳에 학교가 있습니다. 거문초등학교 서도분교입니다. 자랑스럽게 서 있는 백주년기념비가 쓸쓸하게 보일 정도로 퇴락했지만, 서도리뿐만 아니라 거문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해(內海) 건너 귤은 김유의 사당이 있는 동도의 유촌 마을은 물론, 저 멀리 고도까지도 손에 잡힐 듯 가깝습니다.

삼산도, 삼도 등으로 불리던 이곳이 학식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는 뜻에서 거문(巨文)으로 바뀌었다고 전하는데, 만해 김양록의 위패를 모셔놓은 서산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귤은 김유와 함께 거문도가 배출한 대표적인 유학자로, 효심까지 지극하여 자신의 피를 먹여 병든 부모를 봉양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서산사는 찾는 발길이 뜸한 탓인지 관리가 잘되지 않아 안내판이 넘어져 있고 잡풀만 무성합니다. 다만 바다 건너 동도의 귤은 김유를 기린 거문사와 마주한 채 서서, 거문도의 역사와 문화가 뭍에 견줘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며 외치는 듯합니다.

a 박옥규 제독 송덕비 덕촌 마을 입구에는 2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이 고장 출신 박옥규 제독의 송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박옥규 제독 송덕비 덕촌 마을 입구에는 2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이 고장 출신 박옥규 제독의 송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 서부원



바닷가 벼랑에 매달린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10분쯤 내려오면 고도를 잇는 삼호교 못 미쳐 제법 큰 마을이 자리합니다. 덕촌리입니다. 군함 몇 척이 정박해 있는 해군 부대 뒤로 비탈진 곳에 자리 잡은 계단식 마을입니다. 그 맨 꼭대기에 거문중학교가 있고, 이곳 운동장에 서면 면 소재지인 고도가 한눈에 담깁니다.

덕촌리를 갓 벗어나면 복주머니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유림해수욕장의 고운 백사장이 드러납니다. 흔히 거문도해수욕장으로 불리는 이곳에는 국립공원관리사무소와 함께 야영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거문도의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인 셈입니다.

a 돈헌 임병찬 순지비 이곳으로 유배와 끝내 숨을 거둔 돈헌 임병찬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돈헌 임병찬 순지비 이곳으로 유배와 끝내 숨을 거둔 돈헌 임병찬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 서부원



해수욕장 조금 못 미친 길가에 낯선 비석 하나가 자못 당당한데, 조선 말 위정척사파의 거두 돈헌 임병찬의 순국 기념비입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면암 최익현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는 등 항일투쟁을 벌이다 체포돼 이곳 거문도에 유배를 당한 돈헌은, 1916년 끝내 이곳에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남해의 절해고도, 거문도의 존재를 외부에 알린 또 하나의 역사적 인물, 돈헌 임병찬은 큰 비석으로 남아 겨울철 아무도 없는 해수욕장을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저 못 본 척 지나가기에는 망국을 지켜보며 세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던 그의 분노와 설움이 너무 큽니다.

a '목넘어' 전경 목넘어는 거문도 등대가 있는 수월봉과 서도를 잇고 있습니다. 파도가 높으면 통행이 어렵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차가 다닐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저 뒤로 고도와 서도를 잇는 삼호교가 보입니다.

'목넘어' 전경 목넘어는 거문도 등대가 있는 수월봉과 서도를 잇고 있습니다. 파도가 높으면 통행이 어렵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차가 다닐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저 뒤로 고도와 서도를 잇는 삼호교가 보입니다. ⓒ 서부원



백사장을 돌아 가파른 산비탈을 넘으면 동백나무 숲이 울창한 수월봉이 보입니다. 거문도의 명물, 등대에 가려면 '목넘어'를 지나 이 산을 에둘러 올라야만 합니다. 차가 들어갈 수 없으므로 걸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수면 위로 간신히 드러난 암반이 다리 역할을 하는 까닭에 파도라도 높게 칠라치면 수월봉은 섬이 됩니다. '목넘어'라는 지명도 그런 연유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a 거문도 등대와 전망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나란히 선 등대(오른쪽)와 전망대가 오누이처럼 다정합니다.

거문도 등대와 전망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나란히 선 등대(오른쪽)와 전망대가 오누이처럼 다정합니다. ⓒ 서부원



거문도 등대에 가는 길은 온통 동백숲 터널입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걷노라면 1킬로미터 남짓한 산책길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울창한 동백숲의 끝, 에메랄드빛 바다와 푸른 하늘이 만나는 그곳에 거문도 등대가 서 있습니다.

등대와 전망대가 오누이처럼 정겹게 선 이곳은 기실 삼면이 섬뜩할 정도로 가파른 벼랑입니다. 전망대에 오르면 장쾌한 풍광에 놀라기에 앞서 거센 바람과 파도 소리에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싶은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망망대해.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는 수평선 근처에서는 아예 하늘과 만나 분간이 되지 않을 지경입니다. 드넓은 태평양이 이곳에서 비로소 시작됨을 알겠습니다.

a 관백정과 남해 바다 백도를 볼 수 있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맑은 날 이곳에 서면 수평선 위에 걸린 백도가 또렷하게 보입니다.

관백정과 남해 바다 백도를 볼 수 있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맑은 날 이곳에 서면 수평선 위에 걸린 백도가 또렷하게 보입니다. ⓒ 서부원



a 서도에서 바라본 거문도 등대의 모습 절벽 위에 세워진 등대와 거문도 기암괴석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울립니다.

서도에서 바라본 거문도 등대의 모습 절벽 위에 세워진 등대와 거문도 기암괴석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울립니다. ⓒ 서부원


등대 바로 아래에는 '관백정(觀白亭)'이 세워져 있습니다. 백도를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에 서면 대, 소삼부도가 지척이고, 저 멀리 수평선에 떠 있는 백도도 윤곽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합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 때문이지만, 이곳에서 28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국가 명승 제7호, 백도는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습니다.

거문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멋진 풍광이 갈무리되는 곳이 바로 이곳 등대입니다.

뭍으로 떠나는 뱃시간에 맞춰 서둘러 돌아가야 하건만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거문도 #장촌 유물전시관 #수월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5. 5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