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오리구이는 뜨고, 거우부리만두는 졌다

[해외리포트] 시장화 바람 속에서 활로 모색하는 중국 전통기업 라오쯔하오

등록 2008.01.24 09:01수정 2008.01.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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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중국요리 중 하나로 꼽는 베이징 카오야. 취안쥐더가 키우고 발전시킨 음식이다.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중국요리 중 하나로 꼽는 베이징 카오야. 취안쥐더가 키우고 발전시킨 음식이다. ⓒ 취안쥐더


요즘 중국 셔우뤼(首旅)그룹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돈다.

셔우뤼는 1998년에 세워져 호텔 관리 및 투자, 여행상품 개발, 관광 서비스 등 업종에 주력하는 기업. 낮은 경영 실적의 대명사인 국영기업이다.

이런 셔우뤼의 분위기가 밝아진 것은 자기업인 취안쥐더(全聚德) 때문이다. 2004년 지분 65.47%(6910만7000주)를 사들여 인수한 식당 체인 취안쥐더의 주가가 잇따라 상종가를 갈아치우면서 모기업인 셔우뤼의 기업 가치도 급상승하고 있다.

취안취더, 주식 상장 1분만에 매매정지된 까닭

취안쥐더는 14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 최대의 식당 체인이다. 베이징 최고의 전통요리인 '카오야'(烤鴨, 북경식 오리구이요리)를 주 메뉴로 영업하는 취안쥐더는 작년 11월 20일 중국 증시에 상장했다.

취안취더의 주가는 상장 첫날 개장 1분 만에 치솟아 매매정지를 당했다. 1시간 45분 뒤 다시 매매가 재개되어, 하루 만에 주가는 예상시가를 훨씬 뛰어넘는 42.3위안(한화 약 5287원)에 마무리됐다.

상장일에 무려 271.4%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거래액이 9억5600만위안(약 1195억원)에 달했던 취안쥐더는 올해 들어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상장 이후 최고가인 78.56위안(9820원)을 기록하면서, 상승액이 발행가(11.39위안)의 6배를 넘어섰다.


지난 며칠 동안 취안쥐더의 주가는 등락세를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상승장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8월 8일 올림픽 개최를 전후하여 베이징을 찾을 국내외 관광객들이 대표적인 지역 요리인 카오야를 찾을 것이 불을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취안쥐더는 중국이 자랑하는 '라오쯔하오'(老字號) 브랜드의 선두주자다. 저우징위안(周靖苑) 싱예(興業)증권 애널리스트는 "취안쥐더는 미식가 뿐만 아니라 국내외 소비자에게 브랜드 이미지가 최고인데다 전국에 산재한 식당이 지닌 부동산 등 고정자산도 저평가되어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저우는 "취안쥐더의 상품 가치는 앞으로도 상승 여지가 크고 가격도 오르고 있다"면서 "취안쥐더의 성장 전망은 아주 밝다"고 평가했다.


a  2007년 중국 라오쯔하오 브랜드 가치에서 2위를 차지한 우량예(五粮液) 생산공장. 라오쯔하오 기업의 대부분은 식품, 약품, 공예품, 의류, 차 등 중국 전통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2007년 중국 라오쯔하오 브랜드 가치에서 2위를 차지한 우량예(五粮液) 생산공장. 라오쯔하오 기업의 대부분은 식품, 약품, 공예품, 의류, 차 등 중국 전통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 모종혁


평균 140년 역사의 라오쯔하오, 90%가 경영 어려워

취안쥐더의 주 메뉴인 카오야는 화로에 구운 오리고기를 얇게 썰어 전병에 파와 양념장을 싸서 먹는 음식이다. 베이징 전통요리 중 하나인 카오야가 베이징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취안쥐더의 존재 때문이었다.

취안쥐더는 1864년에 문을 열어 한 세기여 동안 1억1000여만 마리의 오리를 구워 팔았다. 베이징 첸먼(前門)에서 시작된 취안쥐더는 오늘날 중국 내 27개 성에 60개의 체인점을 열었고, 홍콩·미국·독일·버마 등 해외에도 진출하여 라오쯔하오의 위상을 떨치고 있다.

라오쯔하오는 명·청 시대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온 유래깊은 업체로, 평균 14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라오쯔하오 기업은 주로 중국 전통문화에 바탕을 두고 식품·약품·공예품·의류· 차 등 업종에 종사한다.

2006년 12월 중국 상무부에서 발간한 <라오쯔하오 발전보고서>에 따르면, 1949년 공산화 이전에 라오쯔하오 기업 수는 1만여 개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무부로 통합된 무역부가 1991년에 인정한 전통 브랜드 기업의 수는 1600여 개로 크게 줄어들었다.

전통문화를 압살한 문화대혁명 등을 거치면서 강제로 문을 닫기도 했던 라오쯔하오 기업들은 개혁개방 이후 무한시장경쟁을 거치면서 빠른 속도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2006년 4월 상무부는 '라오쯔하오 진흥 프로젝트'를 통해 사라져가는 전통기업을 보호하고 무한한 지적재산권을 갖춘 라오쯔하오를 육성하려는 정책을 수립했다. 이에 중국 각 성시에서 967개 기업이 상무부의 인증서를 받기 위해 신청했으나, 요건에 부합하는 기업 수는 그 2/3인 651개였다.

<라오쯔하오 발전보고서>는 "라오쯔하오 기업의 70%가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고, 20%는 장기적인 적자로 도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10%만 빠른 성장을 구가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중국 라오쯔하오의 대부분은 중소기업으로 직원 수가 100명 이하인 기업이 전체의 35.1%를 차지하고 있다. 100~1000명인 기업 수는 9.2%에 불과하다. 등록자금도 100만 위안(약 1억2500만원) 이하인 기업이 전체의 63.4%이고, 100만~1000만 위안은 19.7%, 1000만~1억 위안은 13.3%, 1억 위안(약 125억원) 이상은 3.6%이다.

a  중국 라오쯔하오 기업 업종별 분포도.

중국 라오쯔하오 기업 업종별 분포도.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생존을 위한 활로 찾기에 몸부림하는 라오쯔하오

기자가 찾은 바오두펑(爆肚馮)도 직원 수가 수십명인 베이징의 라오쯔하오 식당 중 하나다. 청나라 광서제 때 문을 연 100여 년 역사의 바오두펑은 회족 펑리산(馮立山)과 그 후손이 운영해왔다.

바우두펑은 루쉰(魯迅), 바진(巴金), 딩링(丁玲) 등 저명한 문학가와 예술가가 즐겨 찾았지만, 문혁 시기 강제로 문이 닫히면서 발전할 기회를 빼앗겼다. 펑윈팅(馮雲亭) 매니저는 "1985년 식당을 재개업했지만 이미 현대화되고 거대한 식당들이 우후죽순 들어서 규모의 시장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a  1669년 청나라 강희제 때 개업하여 339년의 역사를 지닌 중국의 대표적인 제약기업 퉁런탕(同仁堂).

1669년 청나라 강희제 때 개업하여 339년의 역사를 지닌 중국의 대표적인 제약기업 퉁런탕(同仁堂). ⓒ 퉁런탕


치열한 시장경쟁 속에서 라오쯔하오는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제품 관리, 서비스 등에서 현대적인 기업에 따라가지 못하자, 중국정부가 나서서 정책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베이징·상하이·항저우 등 지방정부는 자금지원, 관광상품과의 연계 등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아 라오쯔하오 발전을 돕고 있다. 현재 라오쯔하오 기업의 절반은 베이징, 상하이, 텐진 3개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라오쯔하오 기업도 자체적으로 생존을 위한 활로 찾기에 힘쓰고 있다. 라오쯔하오 기업은 식품·외식업·의류업·중의약 등에 집중되어 있고 일부 지역에 국한되어 성장 동력에 한계가 따른다.

오랜 시간에 거쳐 형성된 라오쯔하오 브랜드는 단일한 제품만으로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시장에서 발전하는 데 문제가 있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품질은 뛰어나지만 구식이고 진부한 브랜드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톈진(天津) 거우부리(狗不理) 만두는 현대화에 실패한 라오쯔하오의 대표적인 사례다. 거우부리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아무런 가맹조건 없이 체인점을 늘려갔다. 거우부리는 전국적인 식당 체인화에는 성공했지만, 관리의 체계화와 독특한 맛을 유지하지 못했다.

각 지역 체인점의 만두 맛은 천차만별이었고, 거우부리라는 브랜드 이미지만 손상됐다. 별명이 개똥이인 주인이 맛과 모양이 기가 막힌 만두를 빚었던 거우부리는 적자만 쌓아가다가, 2005년 베이징의 대표적인 라오쯔하오 제약회사인 퉁런탕(同仁堂)에 인수됐다.

a  150년의 역사를 지닌 만두집 거우부리. 청나라 말기 중국 대륙을 쥐고 흔들었던 서태후가 즐겨 찾아 유명해진 식당이다.

150년의 역사를 지닌 만두집 거우부리. 청나라 말기 중국 대륙을 쥐고 흔들었던 서태후가 즐겨 찾아 유명해진 식당이다. ⓒ 거우부리


ISO 획득에 영어 이름까지... 소비자 기호에 맞춰 활로 모색

거우부리와 달리 취안쥐더는 체인점 형식을 취해 시장을 전국적으로 확대했고, 전통 오리구이의 기술을 데이터화해서 취안쥐더표 카오야의 맛을 지켰다. 취안쥐더는 엄격한 관리와 서비스로 식당의 품격을 높이고 고객을 유치했다. 재료 배합, 불의 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취안쥐더만의 오리구이 비법이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하여 서구 프랜차이즈 기업 못지않은 경영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전통제약회사인 퉁런당은 젊은 소비자의 기호에 맞춘 피부 미용 화장품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퉁런당의 화장품 출시는 제품 다각화 뿐만 아니라 '라오쯔하오 제품은 노년층만 이용한다'는 인식마저 없애는 효과를 낳고 있다.

광둥(廣東)성의 라오쯔하오 제약회사 왕라오지(王老吉)는 전통음료인 '량차'(凉茶)를 포지셔닝이 적절한 광고를 통해 '여름에 더위를 예방하는 음료'로 탈바꿈시켰다. 왕라오지 량차는 기호음료로 젊은 층의 사랑을 받게 되고, 건강에 좋은 음료로도 알려져 중국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빠르게 변하고 국제화된 소비자의 욕구에 맞추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조미료의 하나인 굴 소스를 판매하는 리진기(李錦記)는 기존의 핵심제품을 고수하는 한편 시장 수요에 맞춰 XO소스·고추맛 간장 등 신제품을 부단히 개발하여 성장일로를 걷고 있다. 취안쥐더는 식당 내에서 유럽산 포도주를 판매하고 방송 드라마에 직접 투자하여 전방위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일부 라오쯔하오 기업은 올림픽을 맞아 기업이나 음식 이름을 영어로 짓고, 국제 표준인 ISO 획득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의류업체로 유명한 헝위안샹(恒源祥)은 아예 베이징올림픽 스폰서로 나섰다.

수많은 업체 간의 격렬한 시장 경쟁은 라오쯔하오 내의 명암을 더욱 뚜렷이 할 전망이다. 중국 브랜드연구소는 '2007년 전통 라오쯔하오 브랜드 100강'을 발표하면서, "1위인 마오타이(茅台)의 브랜드 가치는 145억2600만 위안(약 1조8157억원)이지만, 100위인 추허는 1000만 위안에 불과하다"면서 "라오쯔하오 기업 간의 브랜드 가치에서도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a  2007년 중국 라오쯔하오 브랜드 가치 TOP 15.

2007년 중국 라오쯔하오 브랜드 가치 TOP 15. ⓒ 중국 브랜드연구소

#라오쯔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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