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며 베트남을 여행하는 여자

[책으로 읽는 여행 18] '여행하는 사람' 최수진의 <베트남 그림 여행>

등록 2008.01.21 14:00수정 2008.01.2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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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베트남 그림 여행> ⓒ 북노마드

책 <베트남 그림 여행> ⓒ 북노마드

<베트남 그림 여행>의 저자 최수진씨는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여행을 즐기는 여자로 인터넷에서는 꽤 유명하다. 책의 표지 글에 ‘착하고 행복한 작가’로 살고 싶은 여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 싱글녀의 베트남 여행은 가난하지만 여유롭다.

 

그림과 사진, 글들이 뒤죽박죽 엉킨 책의 전개는 마치 한 여성이 겪은 베트남에서의 일상을 엿보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책의 시작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인 호치민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시작한다. 겨우 6줄에 그치는 이 도시에 대한 소개 옆에는 머리를 묶고 창 밖을 바라보는 한 소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여행 정보를 가득 담은 책도 좋지만 이렇게 긴 여행의 감상과 여운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책들도 참 특색이 있다. 저자가 베트남에서 가장 인상적이라고 꼽는 것은 아오자이나 쌀국수가 아닌 구름이다. 동글동글 귀여운 모양의 구름이 낮게 자리하고 있는 베트남의 투명한 하늘은 그림을 그리는 저자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다.

 

베트남의 특징 중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마스크’란다. 햇빛을 막기 위해 재단사들이 총력을 기울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 바로 베트남인데 팔꿈치 위까지 올라오는 긴 장갑, 슬리퍼에 신는 발가락 양말 등 디자인도 그야말로 다양하기 짝이 없다. 광대뼈를 따라 곡선을 그리는 마스크는 너무 다양해서 고르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세계적인 커피 생산국인 만큼 베트남의 커피는 싸고도 맛있다. 갓 끓인 커피를 우리 돈으로 천원 정도면 마실 수 있고 괜찮은 숙소도 1-2만 원이면 해결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은 요새 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덕분에 가난하고도 착한 성품의 베트남 사람들은 관광 수입을 꽤 올리고 있다. 가끔 바가지요금도 눈에 띄지만 우리 물가 대비 그다지 비싸지 않으니 눈감고 봐 줄 만한 여유도 있다.

 

저자는 오랜 여행 경험에 닳고 닳은지라 오토바이 기사나 밥집 주인이 바가지를 씌우면 울컥 기분이 나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돈으로 계산해 보면 기껏해야 5천 원 남짓한 밥값이고 택시를 타고 서울을 돌아다니는 것에 비해 엄청나게 싼 요금이니 그걸로 위안을 삼으며 마음을 달랠 수밖에…. 비록 바가지 때문에 신경질이 나더라도 베트남에서는 여기서 볼 수 없는 많은 것을 만날 수 있다.

 

“소수 민족들은 베트남 내에서도 가난한 계층이다. 변변한 가구조차 없는 이들에게 유일한 오락거리는 바로 TV. 그런데 TV조차 없는, 아니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아 초를 켜고 생활하는 집도 많았다.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사나 싶을 정도. 그런데 이들도 떠돌이 거지에 비하면 한결 낫단다. 가난에도 ‘격’이 있다고나 할까.”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앞부분은 베트남의 첫 여행 경험이고 뒷부분은 두 번째 여행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베트남이라는 장소에 두 번이나 장기 여행을 갈 수 있었다니 저자는 참 행운아이기도 하다. 여행과 그림, 글을 통해 자신의 성숙을 이루고 세상의 작은 아름다움을 보다 많이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마지막에 머물렀던 숙소에서 체크 아웃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여행이 애틋한 건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진짜 아쉬운 건 머물렀던 공간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으로 다시 가지 못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베트남의 아름다운 사파 지역에 대한 추억은 그저 추억으로 남는다.

 

책의 끝에는 부록으로 ‘여행하는 사람’ 최수진이 전하는 베트남 여행 정보가 있다. 그녀는 베트남 여행이 다른 지역보다 쉬운 점을 이렇게 말한다. 영어가 잘 통하고 물가도 저렴하며 음식도 한국인 입맛에 맞는다는 것. 게다가 주된 경로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여행사를 통해 교통과 투어 등을 편리하고도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이 정도면 훌륭한 여행지가 아닌가. 많은 이들이 태국을 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꼽지만 베트남도 장기 여행을 계획할 만큼 볼거리가 풍부하며 지내기 불편하지 않은 여행지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해변을 가도 좋고 하일랜드 투어 등을 통해 깊은 산속이나 소수민족이 사는 마을을 방문해도 인상적일 것이다. 미개발된 자연의 풍요로움은 도시 생활에 갇힌 우리에게 신선한 느낌을 준다.

 

저자가 베트남을 두 번이나 찾게 된 것은 ‘사파’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산골 마을에 빠져서다. 다른 곳에 비해 한적하고 일요 시장이 열리는 마을은 소수 민족을 만나기에도 적합하다. 숙소도 깨끗하면서 저렴한 곳이 꽤 있어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다. 여행사에 문의하면 트레킹 프로그램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차로 이동하는 투어도 가능하다고 한다.

 

베트남도 식민 지배와 국내 전쟁의 아픈 과거가 있는 만큼 역사적인 장소도 꽤 많다. 우리와 외모도 비슷하고 식성이나 생활 방식도 비슷한 점이 많아 친근한 나라 베트남. 오랜 기간 수교가 없어 여행이 어려웠던 곳이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곳.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이곳을 꼭 방문해 보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세상에 많은 여행지가 있지만 우리와 비슷한 편안함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비문명의 세계, 살인적인 서울 물가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드무니 말이다. 게다가 베트남은 한국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아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2008.01.21 14:00 ⓒ 2008 OhmyNews

베트남 그림 여행

최수진 글 그림 사진,
북노마드, 2007


#여행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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