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세상의 배꼽이야!"

[책으로 읽는 여행 19] 멈추는 순간 시작된 메이의 여행 <인도에서 여행을 멈추다>

등록 2008.01.24 12:28수정 2008.01.2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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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세상의 배꼽이야.'

여행 중에 만난 친구가 했던 말이다. 배꼽이라니! 너무 재미있기도 하고 꼭 맞는 말이기도 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물이 흘러내리면 단 한 곳, 배꼽에만 고일 것이다. 그러니 '인도란 생이 흘러가는 동안 한 번쯤은 머물러볼 만한 곳이다'라고 하면 억지일까?

이렇게 시작하는 책 <인도에서 여행을 멈추다>는 평범한 인도 여행 이야기가 아니다. 명상과 가난을 경험하고 봉사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인도를 찾지만 이 책의 저자 메이(작가 왕소희의 필명)처럼 일하기 위해 인도에 머무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저자도 처음에는 인도를 떠돌며 사색에 잠기길 원했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은 한 지역에 머무르며 엉뚱한 일을 하는 것으로 맺어진다.


나뭇가지로 지붕을 얹은 흙집에 살고 들판 화장실로 달려가고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진짜 인도인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메이. 그녀는 인도의 작은 마을 골랄끼또리아에서 교육 사업을 벌이는 친구 람에게 이끌려 우연히 여기에 머무르게 된다. 그녀가 여기서 하는 주된 일은 직접 손으로 공원을 만들고 그 공원을 꾸밀 만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죽어가는 아이, 무기력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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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인도에서 여행을 멈추다> ⓒ 삼성출판사

인도를 가난과 계급의 억압에서 해방 시켜주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도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자라지도 않은 서양인이다. 실제 인도 사람들은 가난과 계급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채 신에게 의지하며 순응하고 사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람이라는 친구처럼 인도인 스스로 자기들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사람을 만나면 놀랍기만 하다.

메이는 이런 람의 행동에 감동 받고 저절로 그가 하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솔 메이트(soul mate)'가 '영혼의 친구'라면 저자는 람과 대화하는 동안 인도에서 진정한 영혼의 친구를 만났다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에는 그냥 이 동네를 지나치는 것으로 끝났지만 여행을 다시 시작해도 람이 하는 일에 대한 강한 인상을 지울 수 없어 메이는 다시 골랄끼또리아 마을을 찾는다.

강물에서 목욕하고 그 물을 마시기도 하면서 진짜 인도인이 되어가는 메이의 삶에는 다른 인도 여행자들이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일들이 많다. 그러면서 저자는 인도인들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한다. 왜 그들이 그토록 무기력하게만 보이는지, 왜 그들은 다른 세상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지를 말이다.


인도인들의 카스트 제도는 너무나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깨기가 쉽지 않다. 간디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인도인들을 카스트와 가난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도 이 제도는 인도인들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메이도 이곳에 머무르면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하층민들의 생활을 실감하고 가슴 깊이 그들의 오랜 억압을 느낀다.

엉덩이가 괴사하는 병에 걸린 아이가 있어서 후원자를 찾기 위해 사진을 찍고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결국 아이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고통스러워하는 아기는 자신의 몸을 새카맣게 덮고 있는 파리를 쫓아낼 힘조차 없다. 불쌍한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후원할 사람을 찾았다고 해도 포커판에 앉아 꼼짝 않는다.

"그는 왜 그랬을까? 나는 서늘한 교실 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다시 한번 콜로니의 아기와 아버지의 사진을 보았다. 아버지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어쩌면 그는 아기를 살리기엔 너무 늦어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병과 가난의 고통에 방치된 채 삶을 마감하는 인도의 하층민들.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저자처럼 가난한 자들이 머무는 마을에 가서 그들이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책에 따르면 어떤 무책임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용품이나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것이 가장 큰 봉사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계속 이런 것을 공급해 주기도 어렵거니와 일시적으로 필요한 것을 나눠주고 사라진다면 외국인은 인도인들에게 자선이나 베푸는 사람으로 각인되기 쉽다.

인도인의 삶 바꾸는데 작은 힘이라도 발휘하길...

실질적으로 그들을 돕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힘으로 노동과 밥벌이를 하고 가난과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교육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이가 인도에 가서 머무르게 된 이유도 친구 람이 벌이는 교육 사업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이 마을에도 공립학교가 있었지만 선생님은 앉아서 신문을 보고 아이들은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람처럼 적극적인 의지로 교육을 실천하고 환경 개선을 추구하는 사람이 없다면 인도는 영원히 가난한 나라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메이가 열심히 교육 자금 마련을 위한 공원 길을 조성하고 벽에 그림을 그리는 동안 한 한국인이 찾아와 말을 건넨다.

'우기가 되면 네가 그린 그림이 다 지워지고 길도 모두 무너지고 말 텐데 뭐하러 이렇게 고생하느냐, 인도에 여행하러 왔으면 여행을 할 것이지 왜 인도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느냐'는 그의 질문에 마음이 울컥해지는 메이. 하지만, 그녀는 믿는다. 자신이 한 일들이 인도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조그마한 힘을 발휘할 것임을.

현재 메이 왕소희씨는 인도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모으고자 '뭄바이 걷기 캠페인'에 참가하고 있다. 그의 솔 메이트 람과 함께 말이다. 문예창작과 출신의 만화가이자 프리랜서 애니메이터인 그녀의 본업을 잘 살린 책 <인도에서 여행을 멈추다>는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던 글을 모은 것이다.

지금 그녀가 걷고 있는 길이 어떤 곳일까 궁금하다. 인도인처럼 생활하니 얼굴도 시커멓게 더러워지고 발바닥도 갈라지고 두꺼워졌다는 메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녀의 인도 여행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마더 테레사처럼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돕기 위한 그녀의 열정이 인도에서 한국까지 전파되는 느낌이다.

인도에서 여행을 멈추다 - 멈추는 순간 시작된 메이의 진짜 여행기

메이 지음,
삼성출판사, 2007


#여행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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