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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인권위가 독립기구로 남아야 하는 네 가지 이유

등록 2008.01.23 18:17수정 2008.01.2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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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3일 오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독립성 확보를 위한 인권사회시민단체 긴급 기자회견'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참가자가 "인권은 대통령의 하수인이 될 수 없습니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

23일 오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독립성 확보를 위한 인권사회시민단체 긴급 기자회견'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참가자가 "인권은 대통령의 하수인이 될 수 없습니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23일 오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독립성 확보를 위한 인권사회시민단체 긴급 기자회견'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참가자가 "인권은 대통령의 하수인이 될 수 없습니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를 입법․사법․행정부로부터 독립된 무소속 독립기구로 두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차기 이명박 정부를 준비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대통령 직속으로 둘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국내 정치 지형에서 출발한 이 논란은 국내 인권단체나 야당뿐만 아니라, 급기야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이나 국제인권기구 조정위원회 같은 국제기구를 비롯해 국제 엠네스티 같은 대표적 국제인권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르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권위를 행정부에 '종속'시킬 것이 아니라 무소속 독립기구로 '존속'시켜야 한다. 그 이유를 대별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독립된 국가인권기구는 세계적 추세이자 대세다. 모든 나라에 법무부나 복지부 같은 인권 차원의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가 있음에도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국가인권기구나 인권옴부즈맨 설립이 줄을 잇고 있다. 필연적으로 국가 권력을 감시해야할 임무를 띤 인권기구가 정부 부처 내에 있을 수 없고, 정치권력 바깥에서 견제와 감시를 해야 한다는 시대적 변화의 반영이었다.

 

양차 세계대전을 교훈 삼아 1948년에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졌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권문제는 여전히 각국에 커다란 해결과제로 남아있었다. 결국 지난 역사에 대한 반성과 각오를 바탕으로 국제사회가 다시 한 덩어리가 되어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일명 파리원칙)'을 만들어 유엔 총회의 결의를 거쳤으며,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는 각국이 국가인권기구를 설립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유엔 총회 및 전 세계가 합의한 국제회의와 파리원칙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은 것이 바로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이었다.

 

둘째, 외국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국가인권기구에 독립성이 없을 때 얼마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할 수 있는가는 호주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호주는 한국보다 15년 앞선 1986년에 국가인권기구(인권 및 기회평등 위원회)를 설립하면서 국제사회의 인권기구 설립 흐름에서 선봉장 노릇을 자임했다. 그러나 1996년 3월 자유당을 주축으로 하는 보수연립내각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가인권기구와 마찰을 빚던 정권은 인권기구의 예산을 삭감(40%)한 후 기구 축소, 인원 감축, 기능 축소 조치를 연이어 취했다.

 

그 결과 한때 245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6개주에 각각 지방사무소를 운영하던 호주 인권위는 기구가 현저히 감축돼, 지금은 시드니에 직원 100여명의 중앙사무소만 남아 연방검찰청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1993년 세계 최초로 수립된 호주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은 1994~1998 이행년도를 목표로 야심차게 구상되었으나, 수립 당시 정치권의 힘을 받을 때와 달리 인권기구에 적대적인 정권이 들어선 1996년 이후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오죽하면 바로 옆 나라인 뉴질랜드에서는 호주의 인권위 및 NAP 실패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2001년에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NAP 수립 권한을 인권위로 일원화했을까?

 

a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바라는 게 '땡전뉴스식 예스맨' 인권위인가

 

셋째, 이미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를 현 정부도 인정해야 한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과 전 세계 국가인권기구 회의체인 국가인권기구 조정회의(International Coordinating Committee, ICC)에서 '인권위의 독립성 훼손 우려'를 거듭 경고하는 것처럼 한국의 인권위는 짧은 역사 속에서 국제인권기구의 중심축으로 성장해 왔다.

 

아태지역 국가인권기구(APF) 의장국 역임 및 ICC 부의장국이라는 지위가 이를 말해주고 있고, 지난 6년 남짓의 짧은 역사 속에서 1000여명의 외국인이 방문해 한국의 인권위를 모범 사례로 연구해왔다. 아직 인권위가 없는 일본의 법무성, 변호사회, 시민단체, 학자들이 여러 차례 방문하여 한국의 인권위를 모범 사례로 연구하고 돌아갔으며, 동남아 및 아프리카의 개발도상 국가들은 물론 인도와 중국정부의 간부들도 한국의 인권위에 찾아와서 운영 방식을 연수받고 돌아가고 있다.

 

그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며 경탄하는 것이 바로 인권위의 독립성이었으며, 이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인권위가 이미 널리 인정받고 있는 반증이다.

 

마지막으로, 독립성이 없는 인권위는 그야말로 '정권의 시녀'로 전락하게 된다. 공개된 지면에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주변국가 중 상당수의 국가인권기구는 정권의 '알리바이' 기구로 전락하거나 아예 태생부터 그런 지위가 부여된 사례가 많다.

 

생각해 보라. 대통령 산하의 인권위가 기존처럼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대드는' 전례로 회자되는 이라크 파병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비정규직법안 반대, 사형제 폐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인정 및 대체복무 실시, '제2의 국가보안법' 시도로 간주되었던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등의 목소리를 내며 지휘·감독자를 견제할 수 있겠는가! "소속만 대통령 산하이지 독립적"이라는 인수위 측의 주장은 공허할 뿐이다.

 

인권위는 국가권력의 자기 성찰적 기구로 태어났지만, 전 세계적으로 국가인권기구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반기는 정권은 거의 없었다. 아니 전무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뉴질랜드 인권위원회는 2000년 인권보고서 첫머리에 "이 보고서는 정부가 원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노골적으로 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하는 인권위야말로 정말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인권위일 것이다.  정부는 동북아를 넘어 세계의 주역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경제적 주역도 중요하지만 기왕에 동북아와 세계 속에서 인권 주역을 담당하고 있는 인권위의 위상을 흔들지 말기를 바란다.

 

a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 김귀현

국가인권위원회. ⓒ 김귀현

덧붙이는 글 | 정영선 기자는 전북대 법대 교수이며 인권법을 전공했습니다.

2008.01.23 18:1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정영선 기자는 전북대 법대 교수이며 인권법을 전공했습니다.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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