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성축제의 한 장면
김홍주선
머리에 연꽃을 쓰고 검정 치마를 껑충 올려입은 심청이가 소리높여 외치자 남인사동 마당을 메운 관객들이 박수를 보낸다. 극단 옥토를 이끌며 <자기만의 방>을 연출했던 이영란 씨가 경희대 연극영화과 제자들과 함께 참여했다. 신화 속 여성을 발굴해서 과거와 현재를 접목하는 소재를 올해(2008년) 여성 축제 주제로 예정한 이프토피아. 최인숙 사무국장이 전래동화 다시 읽기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전래동화는 어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접해서 일반문학보다 영향이 더 클 수 있습니다. 관습이 완전히 배인 동화에 알게 모르게 세뇌를 당하는 거죠. 외국에서는 백설공주 뒤집어보기 같은 시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전을, 버리지 않고 새롭게 현대적으로 재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서예은 학생의 어머니 공지애(40)씨는, 딸과 함께 우연히 인사동 길을 지나다가 여성축제에 머물렀다.
"두 자매의 엄마가 되고 나니 관심이 더 생겼습니다. 여자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현대적인 창작동화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효성에만 갇히지 않으려는 심청이의 반란은, 사실 역사가 깊다. 김승희 시인의 시에서 심청이는 인당수에 빠지는 대신, 어머니께 점자책을 사드린 바 있다.
인당수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어머니,/저는 살아서 시를 짓겠습니다.//공양미 삼백석을 구하지 못하여/당신이 평생 어둡더라도/결코 인당수에는 빠지지 않겠습니다.//…그 대신 점자책을 사드리겠습니다./어머니,/점자읽는 법도 가르쳐 드리지요/우리의 삶은 이와 같습니다./우리들 각자가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외국어와 같은 것.//어디에도 인당수는 없습니다./어머니,/우리는 스스로 눈을 떠야합니다. (<배꼽을 위한 연가 5> 중에서)"내 며느리는 천고에 영웅 군자로다"<공감적 자기화를 통한 문학교육 연구 : <심청전>의 이본 생성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박사과정 논문)을 쓴 목원대학교 서유경 교수는 고전이 다양한 이본들로 전래되어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심청전>의 비교적 초기 경판본에서 후기 완판본으로 오면 인물 구성이나 장면 장면에서 차이가 있다.
후기 판본에서 인당수에 빠질 때에 가다가 쓰러지고 가다가 쓰러지고 하는 모습은 맹목적인 효성보다 심청이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여성이 필사한 판본에는 “ 제대로 된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네”라는 필사후기가 덧붙여 있어, 당시 여성 독자에게 심청이가 표면적 효 주제를 넘어 다양한 의미로 읽혔음을 짐작케 한다.
한편 <한국 고전 여성문학회>의 회원인 조혜란 교수는 심청이는 ‘효 자체는 미덕이나, 지나치게 희생을 강요하는 인물이라 위험할 수 있다’며 다양한 고전들을 소개한다.
"고전 소설은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합니다. <금방울전>과 같은 작품도 당대 맥락에 따라 여성인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지요.<포의교집>이나 한문단편 <범여>와 같은 작품에서도 주체적으로 사랑을 리드해가는 여성을 읽을 수 있습니다. <범여>는 양반집 소저의 몸종으로 칼쓰는 하층여성입니다. 자기가 남자를 선택하고 떠나는 흥미로운 인물이죠."조혜란 교수에 따르면 군담 소설의 30%가 여성장군이 주요 소재였다. 이외에도 학계에서 고전 여성 문학 발굴은 꽤 진척되었다. <한국의 여성영웅 소설>(정병헌, 이유경 엮음. 태학사, 2000)은 여성 영웅 소설을 세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 유형은 여성주인공이 남성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경우이다. <박씨부인전> <금방울전> <신유복전> <황부인전>이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여성주인공이 남장을 한 후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직접 공적인 영역에 진출해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이다. <김희경전> <이대봉전> <옥주호연> <황장군전> <이봉빈전>이 있다.
두 번째 유형이 정체가 밝혀진 후 가정으로 돌아가는 반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획득한 지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세 번째 유형이 <홍계월전> <정수전전> <방한림전> <이학사전> 등이다.
보국 원수에게 하직하고 돌아와 부모전에 욕본 사연을 낱낱이 고하니 여공이 그 말을 듣고 대소하여 칭찬하여 왈, "내 며느리는 천고에 영웅 군자로다"(<홍계월전>)/계월이 비록 네 아내 되었으나 벼슬이 그저 있어 놓지 아니하고 의기 당당하여 족히 너를 부릴 사람이로되 예로써 너를 섬기니 어찌 심사를 그르다 하리오(<홍계월전>)"가시내? 갓 쓴 애가 왔다!"고전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려면 현대어로 다시쓰기가 필수. 딸을 키우는 부모라면 눈이 번쩍 뜨일 어린이책 <가시내>도 있다. 나라에 전쟁이 났는데, 여자라서 전쟁터에 받아주지 않는다, 주인공은 갓을 쓰고 정체를 숨긴 채 맹활약을 펼쳐 적을 무찔렀다. 적들은 외친다 '갓 쓴 애가 왔다!' 그 이후 '갓 쓴 애'는 입을 타고 '가시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