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 내린 나훈아 "보여줘야 믿겠습니까"

[기자회견 전문] 나훈아 "밑에가 잘렸다고?"

등록 2008.01.25 16:52수정 2008.01.2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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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야쿠자? 바지 벗으면 믿을텐가?" 25일 가수 나훈아씨가 각종 루머에 대해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나씨는 갑자기 책상 위로 올라가 바지 지퍼를 내리며 "바지 벗으면 믿어주겠냐"며 기자들을 향해 거세게 항의했다. ⓒ 김호중


놀라웠다. 일본 야쿠자의 신체 절단설까지 나돌며 대한민국 모든 소문의 핵으로 떠오른 나훈아 기자회견장은 놀라웠다. 25일 오전 11시로 잡힌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기자회견장은 대한민국 연예담당 기자란 기자는 모두 동원된 듯 했다. 아침 일찍부터 그랜드힐튼 호텔은 기자들로 북적였다.

기자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랜드 힐튼호텔로 가주세요"란 말에 택시 기사마저 "나훈아 기자회견장에 가세요?"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25일 전 국민의 눈은 나훈아 기자회견에 쏠린 듯 했다.

기자회견장에 당도한 기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눈을 부라렸다. 혹시 나훈아가 도착하는 현장을 잡을까. 일부 기자들은 호텔 입구를 지키고, 일부 기자는 일찍부터 기자회견장에 진을 쳤다. 기자들뿐만 아니라 나훈아를 보러 나타난 중년 여성, 중년 남성들도 간간이 보였다. "여기 어떻게 왔냐"는 기자들 질문에 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나훈아를 응원하러 왔다"고 대답했다.

11시 정각이 되자 나훈아가 나타났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회색 머리를 나훈아 특유의 스타일로 넘긴 채 등장했다. 검정색 수트를 빼입은 모습은 말쑥하기 이를 데 없었다. 회색이 점점이 박힌 검정색 넥타이도 우아했고 새하얀 셔츠도 빛이 났다. 나훈아가 나타나자마 팬들의 환성이 터졌다.

"오오, 오빠, 여기요." 여성 팬들이 소릴 질렀다.

성큼성큼 걸어 대뜸 준비된 단상 앞에 선 나훈아는 좌중을 둘러봤다. 그는 빼곡히 늘어선 방송 마이크 앞에서 결연한 표정으로 단호히 말했다.

"오늘 아침 날씨가 차가웠다. 오늘 시간 내주신 여러분 고맙다."


나훈아는 결전장에 나선 장군처럼 강렬한 눈빛으로 기자들을 내려다보며 폭포처럼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말하는 간간이 침묵을 삼키며 강렬한 눈빛으로 기자들을 노려봤고, 조금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준비된 종이도 없었다. 그는 작정했다는 듯이, 이 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 시간 가까이 말을 쏟아냈다.

다음은 나훈아의 기자회견 발언 전문


해명은 내가 아니라 언론에서 해야

"오늘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길 하려 한다. 일부 언론에선 해명을 하려 한다고 얘길 하는데, 해명이란 것은 어떤 사건을 문제가 됐을 때 그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밝고 명확하게 설명을 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해명이라 생각한다. 저는 한 게 없기 때문에 해명을 할 게 없다. 이 해명은 확실치 않은 얘기들 제대로 실제에 근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오도를 한 기자나 언론에서 해명을 해야 된다.

저는 절대 이런 자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절대 나와서 이런 얘길 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 하지 않으려고 했는지는 얘길 하면서 제가 말씀 드리겠다. 저는 40년을 노래했다. 오늘 여기 모이신 기자 여러분, 또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는 여러분들……. 만약에 마흔 살이 되지 않은 분들은 제가 노래를 시작할 때 태어나지도 않았다. 마흔살이 조금 지난 분들은 아장아장 걸음을 걸어갈 때 전 시작했다.

40년을 했기 때문에 예우를 하란 얘기가 절대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 언론에서 예우하지 않는다는 걸, 그런 정서가 없단 걸 알기 때문에. 예우하란 건 아니지만, 기사를 다룰 땐 적어도 신중했어야 한단 얘기다. 더 알아보고 더 챙겨보고, 진실을 바탕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대중들에게 알려야 하는 거고, 진실은 어디로 가있고 엉뚱한 얘기들만, 하나부터 열까지 난무했다.

만약에 이런 식이라면 뭐 하러 목숨을 담보로 전쟁에 가서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하는 기자들이 있겠나? 나는 오늘 아무것도 준비를 하지 않았다. 나는 들어와서 아무도 만나서 오늘에 대한 이야길 한 적이 없다. 그러고 뭘 써가지고 나온 것도 없다. 왜냐? 하고 싶은 얘길 있는 그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래서 혹시 얘기 중에 두서가 없거나 말이 좀 안 맞는 게 있어도 이해를 해달라. 끝까지 질문하지 마시고, 오늘은 제가 얘기할 차례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할 테니까, 끝까지 들어주셔야할 책임을 갖고 있는 분들이다. 여기는.

나는 그냥 소문난 것 적기만 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챙겼어야 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썼기 때문에 조금 쓴 것 뿐이야? 방조자다. 나는 한 줄도 안 썼어?  방관자다. 적어도 말도 안 되는 억측을 써내려갔을 땐, 대한민국 언론 중 한 군데라도 '아, 이건 아니다. 우리 신중했어야 한다.' 말 한 마디라도 나왔어야 했다. 그래서 난 끝까지 안 나오려 했다. 유독 이 연예계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 우선 처음부터 하나도 빠짐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지며 말하겠다. 그리 길진 않을 거다. 얘기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에게 얘기할 내용에 아셔야 될 부분이 있기 때문에 미리 말씀드릴 게 두 가지가 있다. 왜냐? 무슨 일이든 시작이 있고 진행이 있고 끝이 있다. 중간 토막만 잘라 얘기하면 어떤 결론이 나오냐면, 어떤 사람이 길가에 피를 흘리고 두들겨 맞고 쓰러져있다. 이걸 본 사람이 '야. 참 안됐다. 누가 저걸 때렸어? 저걸 때린 놈 나쁜 놈이야? 어찌 이럴 수 있어?' 했는데, 알고 보니까 두들겨 맞은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폭행을 하고 자기 어머니를 때리고 이 세상에서 못된 짓은 다 하는 사람이 저렇게 맞아 쓰러져있다 생각하면 '아. 이거 잘 맞았다' 그렇기 때문에 앞뒤 무 자르듯이 말할 순 없고, 앞에 설명 두 가지만 하겠다.

하난, 우리가 공연을 할 땐, 내일 공연하니까 '오늘 하자!' 해서 절대 안 된다. 길게는 1년 전, 짧게는 4~5개월 전에 준비를 마쳐야만 공연이 가능하다. 다시 풀어 말하면, 공연 장소를 계약을 하는데 한 달 두 달 전엔 계약이 안 된다. 그래서 모든 게 1년 전, 아니면 5~6개월 전에 성립되어야 할 수 있다. 여러분들이 알아보라. 그건.

두 번째, 저는 40년을 노래했다.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내가 공연할 때, 표가 없다. 표를 구하려 해도 표가 구하기 어렵다. 이 세상에 공짜가 없는 법이다. 이렇게 40년 오기까지는, 내 나름대로 느끼는 '아, 꼭 이렇게 해야만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박수를 쳐줄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게 내 개인생각이다. 다른 사람은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적어도 40년 한 나로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 요 다음 이야기하기 위해서 설명 드리는 거다.

이렇게 공연하려면 성공적 공연 하려면, 3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 이건 언제 만나자. 어떻게 하자 약속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제 공연 구경 왔을 때, 그 기대를 하는 건 제가 만들기 때문에 오신 분들하곤 무언의 약속이다. 그래서 오신 분들 절대 실망시키지 않게 공연하는 게 약속이다. 물론 공연 펑크 난다든지 공연을 지 멋대로 스케줄 바꾼다는 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거다.

두 번째, 진실해야 한다. 진실이란 말은, 우리처럼 긴 세월 노래하면 노래를 잘하는, 쉽게 하는 법을 알 수 있다.  느끼실지 모르지만, 처음 안 그러지만 세월 가면 박자를 당겼다 내렸다, 힘든 부분은 슬쩍 도망간다. 이걸 오시는 분들이 다 안다. 그래서 무대에서 거짓말하지 말고 노래해야 하고, 노래 전체를 거짓 없이 해야 한다. 그 땀이 나게 돼있다. 무대에서 땀을 댓 바가지로 흘리더라도 진실 되게 해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 이게 제일 중요하다. 첫 번째 약속, 두 번째 진실해야 한다는 건 하자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하자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바로 꿈이다. 우리는 꿈을 파는 사람들이다. 무대 공연할 때 몇 억씩 하는 조명 하나가 수십 개 달린다. 그리고 무대 출연하는 사람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예쁜 옷, 보통 거리에서 입지 못할 고급 옷들 입고 나간다. 막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그 무대는 꿈이어야 한다. 두 시간 이상 혼자 끌어나가기엔, 이 꿈이 없이는 힘들다. 꿈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꿈을 팔자면 제가 더 꿈을 많이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매년 공연 똑같이 해본 적이 없다. 어떻게 바꿔도 꼭 바꾼다. 그렇게 바꾸려면 정말 기가 막힌 아이디어도 나와야 하고, 사람들이 보고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할 정도의 무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자! 뭐가 필요하겠느냐? 꿈이 필요하다. 내가 꿈을 팔려면 제가 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 꿈을 어디서 충족하느냐? 2탄서 풀어나겠다.

이 꿈 이야긴 중요하다. 내 지금까지 노래 해오면서 5~6년 전부터 이 꿈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힘들기 시작했다. 꿈이 조금씩 고갈돼오는 느낌을 누구한테 말하지 못 하고 갖고 있다. 그런데 가장 제 측근 있는 사람들은 내가 했던 말을 들어왔던 사람이다. 4년 전, 늘 해왔듯이 공연 끝내고 내려오는 계단에서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아. 내년엔 어떡하지? 어떻게 이 공연을 또 할 수 있지? 두려움도 있었고 그래서 나는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우리 스태프들 우리 식구들, 전부 앉아서 파티를 한다. 언제나 공연이 끝나면 나는 꼭 파티를 한다. 그런데 마지막 날은 좀 크게 한다. 그때 제가 이런 이야길 했다. 우리 겸손하자.

세종문화회관 공연? 잡힌 줄도 몰랐다

왜 이야기를 하느냐. 이건 가는 데마다 표가 없지. 가는 데마다 자꾸 관객도 젊어져서, 관객의 박수나 이게 꼭 젊은 가수들이 공연하는 것처럼 그리 되다 보니까, 우리 스태프들이 좀 경거망동을 할 수 있단 거다. 그래서 우리 겸손하자. 겸손하잔 이야길 수 십 번 수 백 번 했다. 물론 책임자, 아까 (나훈아 기자회견 전에) 나와 얘기했던 사람, 그 사람한테도 한 발짝만 다른 사람 뒤에 서자. 앞에 나서지 말고. 그리고 겸손하자. 말 많이 했다.

난 우리 스태프들이 공연 끝나고 1월 2월엔 인솔 하에 우리 스태프 장들을 외국에 보냈다. '가서 뭔가 가져오고 뭔가 느끼고 오시오' 하고 보냈다. 무슨 말이냐? 내가 말하는 건 꿈이다. 우리 스태프도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한 마음이 되니까.

이 설명은 상당히 중요한 얘기다. 아까 말한 대로,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별안간 취소하고 내지는 펑크를 내고 돈까지 물어줘 가면서 공연을 취소했다. 이 이야기부터가 웃기는 얘기다. 세종문화회관이 문제가 있으면 내가 그걸 돌연 취소 시켰으면 세종문화회관 뿐만 아니고 전국적으로 문제가 생겨야 한다. 하필이면 세종문화회관만 문제가 생겼느냐? 몰랐으니까.

난 세종문화회관 공연이 있는지 몰랐다. 작년이지. 1년 전 얘기니까. 재작년에 '다음 해 공연은 잡지마라' 미리 얘기했기 때문에, (공연이) 잡혀있음 안 된다. 몰랐다. 그런데 공연 기획사 측에서 세종문화회관 잡아놓고 '혹시나?' 했다. 왜? 세종문화회관은 다른 데보다 까다롭다. 그래서 잡기도 어렵고 뭔가 상당히 어렵다. 거긴. 이 이야길 따로 하려면 시간 많이 걸리니 그건 빼겠다. 까다로워선 안 되지. 그런데 우리 세종문화회관이 까다롭다.

아무튼 그래서 까다롭다 보니까 요걸 하나 쥐고 있던 거다. 혹시 맘 변해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거 같다. 내 생각은. 하지만 난 몰랐다. 고 상황을 세종문화회관 하나 문제를 몰랐다. 있었던 이야길 하는 거다. 그대로. 그런데 이제 그걸 쓴 기자가, 한 발짝만 움직이면 이 사실을 아는 거다. 그러기 쉽지 않았다. 그때 기획사만 만났으면 이 문제는 제대로 밝혀졌다. 그런데 지가 가고 싶은 대로 가니까, 발품 팔지도 않고 글로 가는 거다. 그러니까 회사도 문을 닫았다 쓴 거다. 아라기획? 아라 '아'짜에 제 성을 따 이름 지었다. 제가 안 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회사다. 내가 쉴 땐 같이 쉬어야 하는 회사다. 너무 당연하다. 그랬더니 잠적했다. 잠행했다. 행방이 묘연하다. 하는 식의 단어를 써가면서 여기저기서 잠적했다는 거다.

잠적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그날, 신문에 방송에 이 말이 나오는 날, 나는 우리 스태프들하고 휴가를 가고 있었다. 여기 아마 오늘 오랜만에 봤기 때문에 그 휴가를 갔던 사람이 있었을 거다(그가 그 말 뒤 좌중을 둘러보자, 기자회견장 한쪽에서 누군가 크게 "네!"하고 소릴 질렀다. 다시 한 번 크게 "네!"하고 소릴 재차 질렀다).

거기서 텔레비전을 켰더니 나훈아 잠적했다 하니까 우리 스태프들이 '저 왜 저럽니까? 저 왜 저래요?' (내가) 딱 한 마디 했다. 끄라고. 말 같지 않은 이야기 나왔다. 왜냐? 늘 그래왔듯이 변태처럼 말도 안 되는 소릴 써서, 네티즌을 들끓게 만들고, 이거 누가 하는 거냐? 쓸 데 없이 인신공격하고 이런 네티즌 많지? 그러나 이걸 부추긴 사람이 누구냐?

잠적? 휴가 가고 있었다.

자, 아까 꿈 이야길 했다. 휴가를 갔다 들어와서 나는 늘 해마다 공연 끝나고 1월 2월엔 꿈을 가슴에 채우러, 외국 가서 좋은 공연도 보고, 좋은 풍경 보면서 가슴 찡한 것도 보면서 그렇게 꿈을 담는 거다. 가슴에. 가슴이 마르면 안 되니까. 꿈이 가득할 때 좋은 가사도 쓰게 되고, 좋은 곡도 만들게 된다. 그걸 제가 언제부턴가 알게 됐다. 제가 지금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꿈이다. 그렇게 해왔는데 이렇게, 왜 금년엔 쉬게 됐느냐?

작년엔? 아. 이거는 아니다. 무슨 획기적으로 변화가 하나 있어야지. 이렇게 해서 만약 관객 속에서 '야? 늘 보는 게 그게 그건데' 조금 지겨워한단 소리가 나올라 하면 그건 이미 늦는다. 그러기 전에 내가 다시 꿈을 키워야 된다. 어디까지 갔냐? 심각하다. 획기적으로 뭔가 바꿔 공연할 수 있을까? 깊은 산골짜기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전라도 남원에서 뱀사골에서 경상도까지 걸어갔다. 사람이 오면 없는 쪽으로 해서 걸어갔다. 물론 모자 써서 가린 상태지만. 그러나 주의가 깊은 분들은 얼굴을 알아본다. 될 수 있으면 피하면서 갔다.

제일 힘든 게 식사 해결이다. 사람 있으면 들어가기 어려우니까. 참 세상 물정 모를 것 같은 나이 많은 할머니가 뭔가 만드는 것 같은 식당 들어가고. 그런데 찾다보니 하루 종일 굶을 때도 있다. 그러다 할머니가 '이봐요. 따뜻한 국 하나 더 드시요' 할 때 가슴에 꿈이 들어온다. 강원도 삼척, 춘천, 광명……. 해서 옛길이라고 선비들이 한양 올 때 그길로 걸어왔다. 그길로 서울 근처까지 걸어왔다. 죽는 줄 알았다. 걷지도 않던 사람이 그리 걸으니 죽을 것 같았지만 걸어왔다.

그런 동안에 신문에 뭐라고 났냐? 남의 마누라 뺐어갖고, 가정 파괴범…(말 멈추고) 실제는 물론이고, 꿈에라도 남의 마누라를 탐냈다든지, 가정을 파괴하는 마음이 요래 눈곱만큼만 있었더라도 오늘 여러분만 아니고 여러분 집에 키우는 개새끼……. 혹시 집에 개 없는 사람? 옆집 개, 건너 집 개라도 좋다.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엄연히 간통죄라는 게 있는 법치국가다. 만약 그렇다면 벌써 법적으로 문제가 일어나야 한다. 왜 말을 안 했냐하면, 상대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 나는 긴 세월 노래했기 때문에 많이 당했다. 옛날에. 그래서 특히 연예계 매스컴 속성 잘 안다. 아니면 아니다카더라 쓰고. 난 안다. 또 시끄럽게 떠들 수밖에 없다. 여러분들이 잘 알거다. 내가 애기하는 뜻을. 아마 여기 온 분들 잘 알거다. 그래 법대로 해라.

'코는 코대로 간다'란 경상도 말이 있다. 진실은 시간 걸릴 뿐이지 꼭 발견 된단 말을 난 믿는다. 자, 이제 이게 스포츠 신문이고 뭐고 월간지고, 월간지는 여러분 알지? 한 번 나간 건 한 달 동안 돌아다닌다. 그러다보니까 여기저기 수군수군 댔고, 내 아는 사람이나 친척도, '무슨 일이야?' 그러더라. 참 대답하는 것도 힘들다. 그 사람은 한사람이지만, 난 여러 사람 상대해야 한다.

할 수 없이, 전국을 샅샅이 돌아다니고 싶었던, 가다가 고아원에도 가보고 싶었고, 이런데 저런데 다니고 싶었지만 고민하다 외국엘 갔다. 학교 들어갔다. 학교가 대학교는 대학교인데, 정규 대학생은 아니고 스페셜 프로그램 있었다. 강의 들을 수 있는데 물론 간단한 걸 거쳐야 한다. 숙제 하면서 밤새면서 그랬다.  밤 새가며 꿈을 새면서 꿈을 담았다. 정말 오랜만에 느꼈던, 하고 싶었던 거다. 프레젠테이션 있으면 밤새고, 저보다 한참 어린 교수가 내 별명을 '얼리 버즈'라 별명 지어줬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란. 날마다 내가 제일 먼저 학교 와있다. 그런데 결국 그 학교에 한국 학생들이 몇 사람 하나둘 다니다 보니까, 나를 알아보기 시작하는데 내가 이제 또 행동반경이 어려워졌다.

내가 누군지 모를 땐 학교 가든 말든 아무 상관없던 것이, 이제 내가 누구라고 애기하면 대한민국 태극기가 내 등에 있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다. 정말 힘들었다. 1년만 다니고 싶었는데 못 다니고 들어왔다. 들어왔더니 이젠 나를 죽이는 거다.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거다. 부산 모 병원에서 입원했는데 후두암이 걸려서 아니면 몹쓸 병이 걸려서, 죽을병에 걸렸다고 한다. 아시는지? 멀쩡한 사람을.

내가 죽었다니? 멀쩡한 사람을

부산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작년 시작되고. 그런데 부산 모 병원에 입원해서……. 그래. 부산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결과가 뭔가? 내가 단언컨대, 공공장소에 대한민국 공공장소에 3분 이상 서있어 가지고, 내가 거기 온 게 소문이 안 난다면, 여러분들 뭐 시키고 싶은 대로 다 갖고.

내가 부산 병원 입원했다면 틀림없이 어떤 경우든 어떤 형태든 나를 본 사람 있을 테고. 다 안다. 뻔히. 꾼들이기 때문에 벌써 기자들이 써나가는 글귀를 보고, '아. 이거 냄새난다. 아. 이거 기자가…….' 인터넷 하면 여러분 다 안다. 읽어보면 대충 감이 잡힌다. 그리고 찾아가서 '아니다.' '못 봤다.' 하는데도 여기저기서 계속 나온다. (침묵) 그래요. 여러분이 팬으로 저를 죽인 거다. 그때 옆에서들 이런저런 얘길 할 때, 또 맘대로 해라. 말할 가치도 없고, 대꾸할 이유도 못 느끼니까, 이제 죽은 사람이 눈 뜨고 다니는 내가 이상해졌다. 거꾸로.

여러분, 다 읽고 나서 보면 별거 아닌데, 위에 제목이, 나훈아 죽었다더라. 나훈아 암에 걸렸다더라. 나훈아 부산 병원 입원했다더라. 성질 급한 사람 위에 제목만 읽는다. 그래놓고 다른 사람한테 '야. 죽었다더라.' 이런 식으로 말이 퍼지는 거다. 그래요. 죽었다. 그래서 또 나가는 거다. 왜냐? 사람 자꾸 찾아오지. 귀찮게 하지. 결국 여러분들 나를 못 찾는 이유는 아까 얘기했던 대로, 내가 40년을 노래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물론 잘못한 것도 있겠고, 뭘 했는지 모르지만 못한 것도 있겠지. 날 탁구대 올려놓고 핑퐁을 치고 북을 치고 장구를 치고 다 한 거다. 그래. 그래서 떠났다. 내가 여기 갔다 이런 얘길 하는 거는 잠행 했다. 잠적했다 해서 말하는 거다. 들으십시오. 카이로에서 카사블랑카 갔는데 몇 시간 걸리느냐. 내가 밤비행기 탔기 때문에 마침 거기에 이슬람 우리 같으면 추석 같은 큰 날을 앞뒀기 때문에 비행기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귀에서 피가 나고 코에서 피가 나고…….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비행기에서 그랬다. 아마 감기 기운에 스트레스 때문일 거다. 그런데 며칠 만에 거기서 약도 없이 나았다. 거긴 병원도 갈 수 없고. 건강하게. 암에 안 걸렸다.

그 다음에 어느 나라엔 사원인데 거기에서 시체를 태운다. 내 눈앞에 흐르는 시냇물을 건너서 사후에 시체가 타고 있었다. 맨 오른쪽에 있는 시체는 거지요. 맨 왼쪽에 있는 시체는 상당히 부자 시체였다. 그런데 그 타는 모습은 똑같았다. 난 움직이지 못하고 거기 앉아서,
난 남 앞에 울 줄 모른다. 울면 약하다 안 된단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뱄는데, 그날은 가슴이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이 뜨거워지는 건 가끔 있는 일인데, 결국 수건까지 꺼내야 했다.

뭔가 모르지만 마음이 약해진 건지 모르겠다. 이 얘길 왜 꺼내냐? 나는 그날 가슴이 아프고 막 했지만, 내 가슴은 꿈은, 그런 게 참 많이 들어와야 한다. 내가 쓴 가사 중에, '고니'란 제목의 노래가 있다. '살다보면 알게 돼요……. 임이 그리워…….' 그런 거 보면서 이런 가사 말을 쓰는 거다.

그런데 14개국을 다녔다. 그 도시까지 합하면 스물 몇 군데를 다닌 거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까 3류 소설이라고도 볼 수 없는, 기가 막힌 거다. 야쿠자가 등장한다. (잠시 침묵, 탁자를 노려보다) 제가 공부하는 중간에 'Seeing is believing'이란 말이 있었다. 지금부터 여기 올라서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

신체절단설? 벨트 풀고, 지퍼 내리며, "밑에 잘렸다? 보여드리겠다"

(나훈아가 거침없이 지퍼까지 내렸다. 기자회견장엔 돌연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였다. 기자회견장에서 한 여성 팬이 소릴 질렀다. "믿습니다. 나훈아님을 믿습니다." 나훈아는 그 말에 잠시 좌중을 노려보다, 다시 지퍼를 올리고 벨트를 채웠다. 그리고 단상에서 내려와 말을 이었다.)

밑에가 잘렸다는 거다. (앞을 노려보며) 자. 여러분. 제가 오늘 나온 이유가 바로 이제 이야기하는 거다. 저는 아마 제 주위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 안 나올 것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런데 후배 배우들이, 황당무계하고 기가 막히고, 여러분! 여러분 펜대로 사람 죽이는 거 아시나? 의지만 약하고 그런 성격 갖고 있었다면 이 두 여인은 자살까지 가는 거다. 여러분 펜대로 사람을 죽이는 거다. 말하자면.

나는 여러분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 결심을 하고 한국에 연락을 한 게 언제냐? 일요일이었다. 그때 뭐가 나를 힘들게 했느냐? 이 두 여인이……. 아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라. 그 사람들이 그 처자들이 아직 결혼 전이다. 그런데 여러분이 모르는 남자친구가 있고 가족까지 만나는 사람이라면, 이거 황당 안 한가? 이걸 어떻게 얘길 해야 하나? 아마 그 집에서 모르긴 몰라도, '야.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냐?' 뭐라고 대답하나? 우리 한국은 굴뚝도 없는데 연기를 피우는 데다.

그러더니 또 '네가 처세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소리가 나오냐?' 할 말 없다. 여러분, 왜 둘이 나왔을까? 하나도 아니고 왜 둘이가 나왔을까? A, B, C……. H 이니셜을 써가며 야리꾸리하게 적어놓은 거다. K는 뭐고 C, D, A……. 그게 사람 죽이는 거 모르나? 알지 않나? 아니면 그만이고, 맞으면 한탕 하는 거고, 뭐 그런 게 아니겠나? 왜 이러나? 그래. 연예인이 사람들의 호기심이 많은 직업이다. 그래도 엇비슷해야지. 그거 왜 그런 줄 아나? 모르겠나?

신문사 사정은 모르겠다. 일의 분량이 많아서 제자들 기를 수 없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뛰어서, 정말 진실에 가까운 걸 얘길 해야지. 애매모호하게 배우 K 하니까, 김혜수 김선아 등등해서, 차라리 이름 댔으면 한 사람만 당혹하고 힘들고, 한 사람이라도 살지? 그런데 K라고 글래머 K라고 하니까, 김선아다, 김혜수다. 이리 나오는 거지. 알지 않나? 여러분. 이건 아니다. 여러분. 이래선 안 된다. 내가, '아. 이건 네 맘대로 해버려. 납두라.' 하기에는 이 처자들은 아직 젊고, 지금 내가 나서질 않으면 그나마도 구겨진 그나마도 엉망진창이 된 걸, 하나라도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면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해서 지금까지 가만있던 걸…….

어떤 신문은 검찰이 내사에 들어가니까 심리적 압박을 받아서? 웃고 말겠다. 경찰들은 우리 세금으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소문 같은 거에 그럴 필요 없다. 그것도 죄송하다. 정보과들이 있지 않겠냐? 정보과 이리 슥슥 해보면 대번에 나온다.

여러분, 거의 다 얘기했다. 지금 나온 얘기들이 전부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이렇게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이러니 여자가 누가 있겠나? 아니다, 기다도 정도지. 이런 걸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이런 걸 좋아할 자식이 누가 있겠나? 창피해서 얼굴 들고 다니고 있겠나?

그래. 난 어차피 엉망진창이고, 여러분 손에 찢어져 아무것도 없다. 꿈이고 자시고 없다. 아주 엉망진창이다. 괜찮다. 오늘 제가 얘기한 토대로 멋대로 써라. 여러분 쓰고 싶은 대로 써라. 그런대 마지막으로 여러분, 김혜수, 김선아 우리 후배 처자들, 바로잡아 달라. 꼭 바로잡아 주십시요. 바로 잡아주셔야 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십시오. 그래야 대한민국 연예계 언론이 하나 더 업그레이드 하지 않는가.

나는 멋대로 써도, 김혜수, 김선아는 바로 잡아달라

진솔하게 정말 진솔하게 김혜수, 김선아 바로잡아 달라. 그것 때문에 오늘 나온 거다. 여러분, 다시 말씀드린다. 난 괜찮다. 어차피 허연 머리에다, 머리도 다 쉬고, 그래, '아니다' 하면 끝이다? 아니다. 이 후유증은 길다. 아니던 이 후유증은 길다. 이 후유증이 잠잠해지기까지 기다리기엔 나는 너무 머리가 많이 쉬었다.

나는 이번에 이렇게 힘들 때, 정말 누가 뭐라 하거나 말거나, 나를 믿고 나 때문에 일 해주는 전국에 나를 사랑하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 나는 꼭 체크를 하거든. 그 사람들 때문에 아픈 것들을, 그래도 다닐 수가 있었다. 고맙다. 참 고맙다. 그런데 자신이 없다. 여러분. 여러분이 괜찮다 해도 내가 자신이 없다. 나는 너무 이걸 채우기엔, 꿈이 왜 중요하냐는 걸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는데, 내 가슴에 꿈이 없으면 못한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떠밀려서가 아니고, 내가 힘들다. 사람 일은 한 치도 모른다고 하지. 글쎄.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가슴은, 이건 안 된다.

다시 한 번 간곡히 말씀 드린다. 김혜수, 김선아 바로잡아주시라. 나는 멋대로 쓰십시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훈아 #기자회견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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