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 물러간 자리 선홍빛 입술이...

[북한강 이야기 275] 매화꽃 망울에 봄기가 돌아

등록 2008.01.27 12:03수정 2008.01.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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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영하15˚를 오르내리니 정신이 없습니다. 게다가 산꼭대기에서 칼바람 불어와 귀때기가 얼얼하고 코가 탱탱하게 얼어 만지면 터질 것만 같습니다. 동장군 대비 유비무환(有備無患)을 단단히 했건만, 하도 춥다 보니 지하수와 김치 광이 얼어붙고 기침감기가 찾아와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a  강추위가 얼궈낸 얼음꽃이 수정처럼 곱습니다.

강추위가 얼궈낸 얼음꽃이 수정처럼 곱습니다. ⓒ 윤희경


개울물이 얼어붙느라 쩌렁쩌렁하고 밤마다 우렁우렁 귀신 우는 소리 같은 것이 골짝을 뒤흔들고 지나간 자리에 신비스런 얼음나라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느 미술작품보다 더 신비하고 위대해 보입니다.

a  동장군이 만들어낸 위대한 예술품, 어느 미술가가 이보다 더 멋진 작품을 연출할까 자꾸만 웃음이 나옵니다. 특히 배꼽과 어린아이 잠지는 일품입니다.

동장군이 만들어낸 위대한 예술품, 어느 미술가가 이보다 더 멋진 작품을 연출할까 자꾸만 웃음이 나옵니다. 특히 배꼽과 어린아이 잠지는 일품입니다. ⓒ 윤희경


매화나무를 심은 지 올 해로 여섯 해가 되어갑니다. 매화도 매화지만 사라져가는 참새들이 보고 싶어 매화나무를 심습니다. 참새는 매화나무를 좋아합니다. 그래서일까, 매화도를 보면 거의 참새와 함께 합니다. 매화나무가 자라며 신기하게도 참새 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이젠 제법 식구가 늘었습니다. 참새들이 매화나무 가지에 모여 짹짹 아침을 여는 모습을 보는 순간 또한 행복입니다.

a  동장군 앞에 참새마져 얼어죽었습니다. '내 몫까지 살아주오'라며 가녀린 목소리가 안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동장군 앞에 참새마져 얼어죽었습니다. '내 몫까지 살아주오'라며 가녀린 목소리가 안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 윤희경


참새 한 마리 추위를 견디다 눈 위에 가녀린 발톱을 옹크리고 달달달 겨울잠을 자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이 지경입니다. 얼마나 추웠으면 얼어 죽었을까요. 참새 몸뚱이가 얼음장처럼 차갑습니다. 머잖아 봄이 오면 매화꽃 구경 같이 하자 약속하고선 눈발 아래 머리 풀어 구름에 얹고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한참이나 새털을 쓰다듬다 매화나무 눈 더미 속에다 가매장을 해놓습니다. 봄이 와 매화꽃 피어나면 툭툭 털고 일어나 꽃구경 같이하자 하얀 눈을 자꾸만 끌어 모읍니다.

강추위 속에 땔나무 장작을 자르고 패느라 땀을 흘렸더니 기침 감기가 찾아와 멈추지를 않습니다. 다른 건 다 참겠는 데 기침은 대책이 없습니다. 쿨룩쿨룩... 칵칵... 목에서 마른 장작 튀는 소리가 납니다. 병원을 몇 번 다녀왔으나 좀처럼 떨어질 기세가 보이지 않습니다.

콜록대다가도 한겨울 푸른 생명들을 만나면 정신이 번쩍 납니다. 목련나무 밑 눈구덩이 속에 강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푸른 잎을 흔들며 싱싱하게 겨울을 이겨내는 식물이 있습니다. 맥문동입니다. 맥문동(麥門冬)은 산과 들에 그늘진 곳에서만 자라납니다. ‘맥’은 보리와 같은 수염뿌리로, ‘동’은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끈덕지게 살아남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a  칼바람 눈더미 속에서도 되알지고 싱싱하게 살아남는 맥문동, 뿌리는 도라지와 함께 감기와 기침을 다스리는 데 탁월한 효험을 갖고 있습니다.

칼바람 눈더미 속에서도 되알지고 싱싱하게 살아남는 맥문동, 뿌리는 도라지와 함께 감기와 기침을 다스리는 데 탁월한 효험을 갖고 있습니다. ⓒ 윤희경


맥문동은 민초를 닮아 생명력이 강하고 꿋꿋합니다. 성격도 민중적이어서 깐깐하다거나 까탈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수더분하고 수수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이 등을 밀고 차가운 눈이 온몸을 덮어도 푸른 생명을 잃지 않습니다. 인고를 헤치고 겨울 숲 속을 건너와 추위를 데워내는 차질긴 생명입니다.

성격도 차고 서늘하며 달착지근한 맛이 납니다. 한방에선 맥문동은 폐를 보호하고 강장효과가 뛰어난 약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갈증해소와 기력회복을 돋우는 데 효험이 많다 전해오고 있습니다. 오미자와 인삼과 맥문동이 함께 만나면 ‘생맥산’이라 하여 두통에 그만이랍니다.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고열을 식혀주고 인후의 가려움증이나 마른기침에 효험이 많다 하니 지난 가을에 채취해 말려 논 맥문동 뿌리를 달여 기침을 다스려내야 할까 봅니다.


a  입춘을 앞두고 매화꽃 망울에 미소가 돌고 있습니다.

입춘을 앞두고 매화꽃 망울에 미소가 돌고 있습니다. ⓒ 윤희경


아무리 매서운 맹추위 속에도 끄떡 않는 맥문동을 보며 이 겨울 한파를 건너갑니다. 곧 봄이 오려나 봅니다. 달력을 들춰보니 입춘(2.4)이 며칠 앞입니다. 그래서일까, 칼바람이 내리치고 얼음이 꽁꽁한 눈 쌓인 오두막집 처마 밑 창가에도 매화꽃 몽우리가 피어나 선홍빛 붉은 입술을 배시시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 농촌공사 전원생활 포탈사이즈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이야기'를 클릭하시면 시골과 고향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 농촌공사 전원생활 포탈사이즈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이야기'를 클릭하시면 시골과 고향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맥문동 #얼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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