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골에 가면 부처가 있고 탑골에 가면 탑이 있다?

[신라 불교 500년의 역사가 경주 남산에 있다] ⑪ 감실부처와 부처바위

등록 2008.01.27 17:17수정 2008.01.2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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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골 감실부처를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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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동쪽 사면 지도: 주황색이 진행 방향이다. ⓒ 이상기


오늘의 주 답사 지역은 남산의 동쪽 사면이다. 시내에서 가까운 부처골에서 시작 남산리 유적까지 보고, 남산의 또 다른 정상인 고위봉에 오른 다음 천룡사를 지나 천룡골로 내려갈 계획이다. 그러므로 등산 용어로 도상 거리가 가장 긴 날이다. 그렇지만 전체 거리의 절반 정도를 차를 타고 운행하도록 되어 있어 그렇게 길고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우리는 시내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불국사 방향으로 가다 낭산을 지난 다음 통일전 방향으로 가는 길로 우회전한다. 그리고 문천에 놓여 있는 화랑교를 지나자마자 바로 우회전하여 천변도로를 따라 부처골까지 간다. 도로변 부처골 입구에는 차를 대여섯 대 정도 댈 수 있는 임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이곳에 차를 놓고 서쪽 골짜기로 감실 여래좌상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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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골 감실여래좌상 ⓒ 이상기


윤경렬 선생이 쓴 책 <경주 남산. 겨레의 땅 부처의 땅>에 보면 이곳 부처골에는 세 개의 절터가 있고, 세 번째 절터에 감실 부처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절터를 찾아보려는 것이 아니어서 바로 감실 부처를 찾아간다. 부처골 입구에서 한 사오백 미터쯤 올라갔을까? 대나무 군락이 보이고 그것을 지나 오른쪽으로 넓지 않은 공간에 크고 울퉁불퉁한 바위가 하나 서 있다. 바로 이 바위의 아랫부분에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부처를 고부조 형태로 조각하였다.

6세기 말 7세기 초라면 정말 초기 불교 조각품이구만

부처골 감실여래좌상은 공식 명칭이 불곡 석불좌상(보물 제 198호)이다. 부처골의 한자 표현이 불곡이고, 감실은 부처를 모시기 위해 바위나 나무를 파서 만든 공간을 말하며, 여래는 부처의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석불은 돌로 만든 부처를 말하며, 좌상은 앉아 있는 형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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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서 올려다 본 부처님 ⓒ 이상기


부처님 앞에 서니 이른 아침의 햇살이 감실 안으로 비쳐 든다. 얼굴에는 아직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몸체에는 밝은 빛이 비쳐들기 시작한다. 부처님의 첫 인상이 할머니 같기도 하고 아주머니 같기도 하다. 한 마디로 아주 편안하다. 불상의 머리에 나발이니 육계니 하는 조각이 뚜렷하지 않고 보자기를 쓴 것 같아 아주 서민적이다.

이 석불좌상은 적당하게 살이 붙어 동그란 얼굴을 다소곳하게 숙인 채 사색에 잠겨 있다. 감은 듯한 눈, 오똑한 코, 윤곽이 뚜렷한 입가에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지금까지 얼굴 윤곽선이 이처럼 뚜렷하게 남아 있는 부처님을 별로 볼 수 없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아래로 길게 흘러내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다. 가사의 왼쪽 부분이 오른쪽 부분에 여며지도록 하였고, 옷 주름을 몇 개의 선으로 단순화시켜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옷자락을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표현하여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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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윤곽선이 단순하면서도 뚜렷하다. ⓒ 이상기


그러나 양손은 가사 속에서 마주 잡은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수인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부처가 초기 불교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부처가 6세기 말 7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감실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손과는 다르게 발은 결가부좌하여 일반적인 수법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대좌는 연꽃의 피어오름을 표현한 것 같은데, 약한 돋을새김과 윤곽선으로 연꽃을 형상화했다.


탑골 마애조상군을 부처바위라 한다
 
부처골에서 탑골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에 가려면 차를 탑골 마을에 놓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 길 오른쪽으로 탑골에서 내려오는 물이 흘러내린다. 한 이삼백 미터쯤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옥룡암이 나타난다. 옥룡암은 최근에 지어진 암자지만, 이곳에는 7세기 중엽에 신인사(神印寺)라는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일제시대 이 부근에서 신인사라는 명문 기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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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암 법당: 추사 글씨를 사용한 '일로향각' ⓒ 이상기


옥룡암에는 훼손된 3층석탑이 있어 옛 절의 역사를 말해주고, 주변에 있는 법당 글씨가 형태와 내용면에서 아주 특이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일로향각(一爐香閣)’이라는 글씨를 보니 추사체다. 추사가 직접 써준 글씨는 아니고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복제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씨 하나 때문에 옥룡암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또 현판 아래에 ‘조비육죽세식일색(祖備六竹世識一色)’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조사스님이 6개의 대나무로 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을 알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앞뒤 문장을 알면 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사실 조금 자신이 없다.

옥룡암을 지나 서남쪽으로 가니 큰 바위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것을 부처바위라고 부른다. 부처바위는 사방에 부처들이 새겨져 있는 사방불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한 면에 한 분의 부처가 모셔진 형태가 아니고 불국정토의 모습을 여러 가지 도상을 통해 표현하고 있어 특이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북쪽면이 환희국정토라면 반대편 남쪽면은 유심정토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동쪽면은 극락정토이고 서쪽면은 유리광정토라고 일반적으로 얘기되고 있다.

부처바위 사방불을 하나하나 뜯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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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바위의 북쪽면: 탑 조각이 특이하다. ⓒ 이상기


부처바위는 옥룡암을 지나서 있기 때문에 북쪽의 환희국 정토를 먼저 보게 된다. 이곳 북쪽 바위면 양쪽에 두 개의 탑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 석가여래 부처가 연꽃 위에 앉아 선정에 든 것 같기도 하고 설법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두 개의 탑 중 왼쪽에 있는 동탑은 9층 목조탑으로 기단부의 너비가 2.05m, 높이가 3.9m이다. 이에 비해 오른쪽에 있는 서탑은 7층의 목조탑으로 기단부의 너비가 1.53m, 높이가 3.44m이다. 이 탑을 통해 우리는 사라진 황룡사 9층탑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골짜기를 사람들은 탑골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이 탑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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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바위 서쪽면: 석가여래와 보리수가 보인다. ⓒ 이상기


서쪽면의 유리광정토에는 석가여래가 좌우 두 그루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있다. 보리수는 깨달음의 상징이다. 부처님이 선정에 들었다가 깨달음을 얻는 장면으로 보인다. 동쪽의 극락정토는 조각이 가장 다양하고 화려하다. 이곳에는 극락정토의 주불인 아미타여래가 새겨져 있다. 아미타여래 왼쪽에 협시보살이 있고 오른쪽 협시보살은 분명치 않다. 이곳에는 또한 수도하는 승려상, 승려공양상, 비천상 등이 있어 정말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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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바위 동쪽면의 부처들 ⓒ 이상기


이곳 서쪽면을 보고 나서 남쪽면을 보려면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언덕 위로 먼저 3층 석탑이 보이는데, 탑에 장식이 없고 조각기법이 단순하여 예술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높이도 4.5m로 그렇게 높지 않지만 언덕 위에 있어 높아 보인다.

남쪽면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도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 앞을 평탄하게 하고 그곳에 불단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신인사라는 절이 이 부처바위의 남쪽 앞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쪽 면에는 세 가지 도상이 새겨져 있다. 벽면 가운데 삼존불이 좌정하고 있고, 그 왼쪽 조금 떨어진 곳에 또 다른 부처님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오른쪽 조금 앞 다른 바위에 명상에 잠긴 스님상이 조각되어 있고, 왼쪽으로 독립된 형태의 석조여래입상이 서 있다. 이들 모두는 일관성이 없어 한꺼번에 만들어진 건 아니고 시차를 두고 새겨 넣고 옮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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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바위 남쪽면의 부처들 ⓒ 이상기


이 부처바위는 높이가 9m, 둘레가 30m나 되는 자연석이다. 신라 사람들이 이 바위의 사면을 이용하여 여래상, 보살상, 비천상, 조사상, 탑, 사자 등을 새겨 넣어 불국정토를 표현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탑골 마애조상군이다. 탑골 마애조상군은 예술적인 면에서보다 내용적인 면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다. 이 마애조상군을 지나 해목령 쪽으로 올라가면 남산성을 만날 수 있다.   
#남산 동쪽사면 #부처골 #감실부처 #탑골 #부처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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