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받는 나부상은 한 마디 말이 없건만

[여행] 정화공주의 비원이 서린 강화도 정족산 전등사

등록 2008.01.29 15:50수정 2008.01.2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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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 내려다 본 전등사 전경. ⓒ 안병기

산 위에서 내려다 본 전등사 전경. ⓒ 안병기
 
삶이라는 형벌을 벗어나고 싶을 때 찾고 싶은 곳
 
때때로 사는 게 마치 벌 받는 기분이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내게도 삶이라는 가혹한 형벌을 피해 찾아가고 싶었던 곳이 있다. 강화도 전등사가 그런 곳이다.
 
전등사 추녀 네 귀퉁이에는 속칭 '벌 받는 나부상'이 있다. 두 팔로 추녀를 받치면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나녀상과 나란히 벌서고 싶다. 세상에 동병상련이란 감정보다 더 큰 위로가 있을까. 그러나 그 생각은 늘 마음 안쪽에만 머물 뿐이었다. 내 발길이 외면한 것인지 아니면 강화도가 외면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제부도, 석모도, 덕적도 등 인천 근방의 섬들을 둘러본 적이 있지만, 이상하게 강화도 쪽으로는 발길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새해 첫 여행지로 강화도 전등사를 택했다. 강화대교를 건너자,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이 합해져 서해에서 만나는 물머리를 막아선 강화도가 빠끔히 얼굴을 내민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예로부터 한반도의 중심부를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요충지라는 말 속엔 비극이 함축돼 있다. 역사의 수난을 피해갈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전등사는 정족산 삼랑성 안에 있다. 강화도의 주봉인 마리산의 한 줄기가  북동쪽으로 뻗어 길상면 온수리에 이르러 세 봉우리를 이룬 것이 정족산이다. 고려말 최씨 무인정권 이래 단군 유적으로 성역화된 이곳은 풍수가들에 의해 길지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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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성 동문. ⓒ 안병기

삼랑성 동문. ⓒ 안병기
 
오후 1시. 전등사 입구에 도착했다. 겨울 햇살이 슬슬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시간이다. 겨울 햇살이 멍석을 깔자, 나른함을 이기지 못한 사물들이 제 그림자들을 슬슬 땅 바닥에 누이기 시작한다.
 
전등사는 삼랑성의 동북쪽에 있다. 삼랑성은 단군이 부소·부우·부여라는 세 아들에게 각각 정족산 봉우리 하나씩을 맡겨 쌓게 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성이다. 민중은 자신의 좌절된 희망을 전설이란 형태로 의역해낸다.
 
삼랑성의 동문(東門)을 통해서 성 안으로 들어간다. 이 동문은 암문(暗門)이다. 암문이란 적의 눈에 띄지 아니하는 곳에 만든 성문이다. 평소에는 돌로 막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비상구로 사용하는 문이다. 그러나 이 암문은 이제 전등사의 천왕문이나 금강문 노릇을 하고 있다.
 
나는 누구의 짝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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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대조루 아래 공터에 서 있는 윤장대. ⓒ 안병기

전등사 대조루 아래 공터에 서 있는 윤장대. ⓒ 안병기
 
소나무들의 그림자를 즈려 밟으면서 서북쪽으로 난 길을 걸어간다. 좌측에 보이는 공터에는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새뜩한 윤장대가 놓여 있다. 경북 예천 용문사의 윤장대를 흉내낸 것이다. 걸음을 멈추고 윤장대를 한 번 돌려본다. 용문사 윤장대와는 달리 손잡이가 손아귀에 꼭 들어와 잡히는 맛이 없다. 얼핏 고은 시인의 시 한 편이 머리를 스쳐간다.
 
짝퉁
이 낱말을
내 사전에 올리리라
 
무섭구나
나는 누구의 짝퉁이냐
 
그 누구는
누구의 짝퉁이냐
 
밤길 철새
연달아 가는
이 상호텍스트의 한 낱말을
내 원시어사전에 꼭 올리리라
짝퉁은 진짜의 꿈 아니냐 그 지긋지긋한 진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냐 - 고은 시 '짝퉁' 부분
 
나는 누구의 짝퉁인가. 참나를 찾지 못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짝퉁일 수밖에 없을 터이니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2층 누각 대조루의 누하를 지나 절 마당으로 올라간다. 대웅보전이 남쪽을 굽어보며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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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78호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 안병기

보물 제178호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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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끝의 수막새를 고정시키는 백자 蓮峯(연봉). ⓒ 안병기

지붕 끝의 수막새를 고정시키는 백자 蓮峯(연봉). ⓒ 안병기
 
대웅전을 바라보자, 맨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지붕 끝의 수막새를 고정시키는 백자 연봉(蓮峯)이다. 백자 연봉은 다른 건축에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까만 기와들 사이에서 문득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이 악센트 하나가 지붕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전등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다. 1942년에 편찬된 <전등본말사지>는 전등사가 서기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11)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그때는 진종사(眞宗寺)로 불렀다 한다. 그러나 강화도가 고구려 영토가 된 것은 거의 1백 년이 지난 장수왕 63년(474년)의 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 기록은 허구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이런 류의 기록 왜곡은 오래되었다는 것으로 절의 격을 높이려는 작태에서 나온 것이리라.
 
전등사란 이름은 정화공주가 이 절에다 옥등(玉燈)을 시주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당시 고려 불교계의 주류이던 조계선종의 법맥과 종지를 밝히는데 필수적인 책이었던 <경덕전등록>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대웅전 지붕의 추녀 끝이 마치 날아갈 듯 들려 있다. 조선 중기 이후 사찰 건축의 백미라는 말이 전혀 허랑하지 않게 느껴진다.  
 
원(願)과 원(怨)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사랑이라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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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녀를 받치고 있는 나찰상. ⓒ 안병기

추녀를 받치고 있는 나찰상. ⓒ 안병기
 
마침내 대웅전 네 귀퉁이 추녀 밑으로 바짝 다가가 보머리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추녀를 떠받치는 괴상(怪像을 바라본다. 한 마리 붉은 원숭이 같다. 그러나 전등사에 내려오는 전설은 대웅전을 짓던 도편수가 자신의 순정을 배반하고 그가 맡긴 돈을 챙겨 줄행랑을 친 아랫마을의 주모를 응징하고자 새겨넣은 나부상이라고 우긴다.
 
광해군 때 이 대웅전의 건립을 맡은 도편수가 공사중에 우연히 마을의 한 여인을 알게 되었다. 그는 곧 깊은 사랑에 빠졌고 틈만 나면 마을에 내려가 그녀와 사랑을 분배했다. 노임이라고 받으면 즉시 그녀에게 갖다줘 버렸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건립불사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그는 그녀와의 오붓한 생활을 꿈꿨다. 그러나 그 사이에 마음이 변한 그 여인은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가지고 멀리 다른 곳으로 도망쳐버렸다. 사랑에 실망한 그는 도무지 살맛이 안났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법당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법당의 기둥에 그녀의 모습을 조각해 넣고, 무거운 지붕을 받들게 했다. - <전등사>(일지사. 1978)
 
전등사는 고려 말 충렬왕비인 정화공주의 원찰이었다. 그러나 충렬왕은 원나라 세조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에게 강제로 장가들게 된다. 그 바람에 정화공주는 왕비의 자리를 박탈당한 채 별궁에 내동댕이쳐져 왕과는 얼굴조차 대면할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한다.
 
왕의 사랑을 잃고 외롭게 갇혀지내던 공주에겐 마음을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공주는 전등사를 자신의 원찰(願刹)로 삼았다. 아마도 공주는 틈틈이 한양에서 가까운 전등사에 와서 원나라의 멸망과 고려 국운의 회복을 빌었으리라. 또한 공주는 인기(印奇) 선사를 원나라로 보내 송나라 대장경을 가져다 이곳에 보장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부상의 전설은 <고려사> 열전 제2 충렬왕 제국대장공주전에 기록될 만큼 음탕했던 제국대장공주의 행실을 저주하고, 정화공주의 처지에 동정적이었던 당시 고려 민중의 정서가 반영된 전설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은 이 괴상한 형상이 불전을 수호하는 나찰상이라는 허균(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문양대사전 자문위원)의 견해에 동조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한 손으로 추녀를 받치고 다른 한 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는 북서쪽 나찰상이다. 파란 눈동자는 불교의 다른 신중(神衆) 계통의 인물상에선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까짓 벌 받는 나부상이 아니면 어떤가. 나 역시 고려의 민중처럼 벌 받는 나부상이라고 
믿고 싶은 것을. 저 나찰상을 굳이 나부상이라 믿었던 고려 민중과 나의 심리의 밑바닥엔 무슨 심리가 깔려 있을까. 자신을 배반하고 떠나버린, 기억의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옛사랑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서 저 추녀 아래 나부로 상정하면서 은밀한 복수를 꿈꾸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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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79호 약사전. ⓒ 안병기

보물 제179호 약사전. ⓒ 안병기
 
대웅전 왼쪽으로는 향로전(香爐殿), 약사전, 명부전이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약사전은 건물의 안팎의 형식이 대웅전과 거의 흡사한 것으로 봐서 함께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약사전 안을 들여다보니, 약사여래좌상이 가만히 앉아 계신다. 결가부좌를 틀고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여래좌상은 유난히 귀가 크다. 세상 사람들의 아픈 사연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거의 반쯤은 병이 고쳐진 거라는 걸 아시는 분인가 보다. 선정인을 한 수인 속에는 보주가 들어 있다. 병의 근원을 찾아 반드시 낫게 해주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수인이다.
 
약사전의 바깥을 지붕 그림자가 장엄하고 있다. 그지 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병이 나을 것만 같다.
 
강화도는 반성하려고 찾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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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밭. ⓒ 안병기

부도밭. ⓒ 안병기
 
삼랑성 남문께에 있는 부도밭에 잠시 들르고 나서 전등사를 떠난다. 오후 4시. 여행지를 떠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다. 황혼을 보고 못 하고 떠나는 여행은 반쪽 자리 여행에 지나지 않는다.
 
반성하고 싶은 사람이 떠나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생이 허망하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허망하기 때문에 더 맹렬하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어떤 이는 잠시 잊고 살았던 삶의 가치를 되새기기도 한다. 그리고 황혼은 반성의 시간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황혼을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것은 아무런 반성 없이 그냥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난 반성 없이 여행을 끝마친 나를 반성한다.
 
더욱이 강화도 땅은 반성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강화도를 떠나면서 생각한다. 이 뻔뻔스런 한반도는 강화도에 몇 번이나 제대로 된 사과를 했을까. 강화도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하여, 그 수치스러움에 대하여 과연 몇 번이나 진지하게 반성했을까를.
2008.01.29 15:50 ⓒ 2008 OhmyNews
#강화도 #정등사 #나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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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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