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얼음 위에서의 달콤한 휴식돗자리 얼음썰매를 타다 지친 아이들이 눈을 이불삼아, 베게삼아 뒹굴고, 눕고, 껴 안는다.
이성한
‘안보견학’을 안내하는 선도차를 따라 우리는 제2땅굴로 향했습니다. 나는 그곳으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분단의 땅 철원에서 아이들에게 냉전시대의 유물인 땅굴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북한을 더욱 멀게 느끼게 하고, 적대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 분단에 대해, 우리 민족의 상처에 대해, 그리고 통일에 대해 토론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생각이 극단이 아닌 균형감을 가질 수 있도록 바로 세워진다면 그것만큼 소중한 수확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청아한 하늘아래 펼쳐진 눈 덮인 철원평야를 달리고 있습니다. 가는 도중에 쌍으로 서서 들판의 먹이를 주워 먹고 있는 두루미들을 보았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아이들과 나는 누구랄 것 없이 해괴한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이~히~! 캬~~~아!”
“으억! 와~~아!”
늘씬하고 균형잡힌 몸매로 철원의 들녘을 유유히 거닐며 먹이를 먹고, 사랑을 나누고, 하늘을 나는 천연기념물 두루미와의 조우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안보견학’을 안내하는 선도차를 따라 눈 덮인 철원평야를 얼마동안 달렸습니다. 자동차 창밖 먼 하늘에 정제된 날갯짓으로 주위 사방을 제압하고 있는 독수리의 비행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휴전선 근처 맑디맑은 민통선 고요한 하늘 위를 소리 없이 날며, 동그란 원형의 비행으로 주변을 샅샅이 지배하는 독수리의 위엄 있는 카리스마를 보았습니다. 나는 그런 독수리의 비행을 바라보며 새삼스럽게 ‘숭고하다’라는 냉수처럼 차갑고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제2땅굴에 도착해서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는 도중 습한 기운으로 인해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렸습니다. 군데군데 전등을 달아 놓아 그리 어둡지는 않았지만 음습한 공기에다 천장에서 가끔씩 똑! 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까지 들리니 여러모로 불편했었습니다. 아이들도 뒤를 돌아볼 겨를 없이 앞 사람의 뒤통수만 따라 마냥 아래로, 앞으로만 나아가는 땅굴에서의 전진이 별로 특별할 게 없는 느낌이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한 마디씩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에~잇! 이럴 줄 알았으면 땅굴에 안 들어올 걸 그랬어요!”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가야 돼요? 지겨워 죽겠네.”
나는 아이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 할 만 했지만 기왕 들어온 김에 갈 데까지 들어갔다 나오기로 했습니다. 땅굴 속에서 아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나는 곰곰이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결국 땅굴의 막다른 곳까지 가서 그곳을 지키고 있던 우리 국군 초병 아저씨와 쑥스럽게 인사하고 악수하는 것으로 땅굴의 추억을 마감했습니다. 밖으로 나오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땅굴에서의 소감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오히려 내게 더 궁금한 것을 물어왔습니다.
“북한은 왜 이런 땅굴을 팠나요?”
“북한은 아직도 또 다른 땅굴을 파고 있을까요?”
솔직히 나는 아이들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었습니다.
“과거에 남북한은 미워하고 증오하며, 싸워야 할 적으로 지내왔단다. 그랬기에 서로를 공격하려고 했고, 이기려고 했지. 그런데 이제는 서로가 사과하고, 도와가며 함께 살아가야 할 상대로 존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런 땅굴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단다.”
나는 그쯤에서 아이들의 제2땅굴 방문을 아쉬운 데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