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은 욕심 없는 사람들

내 고장 '수필문학회' 총회에서 본 문인들의 표정

등록 2008.01.31 19:52수정 2008.01.3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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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대전·충남수필문학회'에 참석하는 문인들은 욕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감투'를 차지하겠다고 서로 얼굴 붉히며 다툼하는 모습도 이 모임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대전,충남수필문학회', 회장이나 사무국장 등 임원선거가 있는 정기총회에서는 그래서 정중히 고사하거나 양보하는 '겸양지덕'의 아름다운 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오로지 좋은 수필을 쓰고 싶은 마음, 좋은 수필가를 만나는 즐거움으로 모이는 순수한 문학단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는 자리이다.

 

이런 자리에서 극구 고사할 수만은 없는 과분한 추대를 받았다. 뜻하지 않은 일이라 당혹스러웠다. 전임 회장단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이 부족한 사람을 모임의 일꾼으로 추대해 주니, 몸 둘 바를 몰랐다. 

 

a '대전.충남수필문학회' 2008정기총회  지난 22일 대전 동구 정동에서 열린 '대전.충남수필문학회' 2008년 정기총회에서는 윤승원 경찰문인(아래줄 우측에서 세번째)을 새로운 회장에 선출하고, 강표성 수필가(뒤줄 좌측에서 네번째)를 사무국장에 선임했다.

'대전.충남수필문학회' 2008정기총회 지난 22일 대전 동구 정동에서 열린 '대전.충남수필문학회' 2008년 정기총회에서는 윤승원 경찰문인(아래줄 우측에서 세번째)을 새로운 회장에 선출하고, 강표성 수필가(뒤줄 좌측에서 네번째)를 사무국장에 선임했다. ⓒ 윤승원

▲ '대전.충남수필문학회' 2008정기총회 지난 22일 대전 동구 정동에서 열린 '대전.충남수필문학회' 2008년 정기총회에서는 윤승원 경찰문인(아래줄 우측에서 세번째)을 새로운 회장에 선출하고, 강표성 수필가(뒤줄 좌측에서 네번째)를 사무국장에 선임했다. ⓒ 윤승원

가만히 좌중을 둘러보니, 젊은 축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원로 문인들의 근엄한 표정이 유난히 눈에 크게 들어왔다.

 

온화한 인품으로 후학들에게 늘 용기를 주시고, 좋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시는 존경하는 김영배 선생님, 유동삼 선생님, 홍재헌 선생님, 강나루 선생님, 배인환 선생님, 안태승 선생님, 박권하 선생님, 이정웅 선생님, 김지은 선생님....   

 

그리고 '선비의 문학'이라는 자존심을 한껏 높여주면서 이 지역 수필문학 모임을 헌신적으로 이끌어오신 문희봉 전 회장님과 최중호 선생님,  열정적인 작품활동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육상구 선생님, 강표성 선생님, 윤월로 선생님, 박종국 선생님, 박미련 선생님, 박영애 선생님, 어디 이 뿐인가. 50여명의 내로라하는 회원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그 분들의 곡진한 뜻을 수락하고 보니, 죄송하기 그지 없다. 단상에 올라 소감을 말하고자 하니 사뭇 외람스럽다. 왜 아니 그런가. 작품다운 작품을 써내는 사람이 서야만이 부끄럽지 않은 자리가 아닌가.

 

정서가 메마르다고 하는 직무현장에서 노상 일에 쫒기는 사람이니 마음의 여유도 부족하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박하게 기록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사람이다.

 

존경하는 원로 문인들 앞에서 그래도 용기 어린 소감을 말씀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가지. 등단 당시의 초심, 그 작은 열정이 내게도 아직도 꿈틀대며 잠재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저도 한 때 수필이란 우물에 풍덩 빠졌던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서점에 가서 '수필'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서적이란 서적은 다 섭렵할 만큼 몰입했고, 좋은 수필집 한 권 사서 들고 귀가할 때는 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던 적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남의 좋은 글을 읽는 것만큼 좋은 스승을 만나는 일이 없다는 신념도 그 당시 비로소 가지게 되었지요. 훌륭한 인품이 드러나는 좋은 글을 두루 읽다보면 내 안의 정서도 순화되어 글을 쓸 욕구도 자연히 생기더군요. 돌이켜 보면 야간 비상근무 중에 라디오 방송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는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남모르는 벅찬 감정, 가슴으로 전해오는 작은 희열과 보람, 그리고 스스로 위안이 되었던 시절을 잊지 못합니다. 등단 경로야 모두가 각기 다르겠지만  그 뜨거웠던 열정을 저도 누구 못지 않게 가슴에 품어 보았기에 이런 문학모임에 나올 때면 아직도 가슴이 풋풋하게 설레는가 봅니다.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요, 명예를 얻는 일도 아닌데, 이런 순수 문학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순수한 열정이 아직 식지 않았다는 것을 이런 자리에서 새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일이 고통스럽긴 해도 때론 작은 보람과 위안을 삼을 수 있다는 것은 현직 경찰관 신분인 내게 아이러니한 일이다. 거칠고 삭막한 일선 치안 현장에서 일하는 내게 그것은 또한 '신비한 마력'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두렵고 조심스런 마음으로 평소 글쓰기의 전범(典範)으로 삼고 있는 윤오영 선생의 수필 한 구절을 옮겨본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 스스로 낮아지고자 함이다. 

 

"저속한 인품의 바닥이 보이는 문필의 가식, 우러날 것 없는 재강[糟粕.조박], 미문(美文)의 교태, 옹졸한 분만(憤懣) 같잖은 점잔, 하찮은 지식, 천박한 감상(感傷), 엉뚱한 기상(奇想), 이런 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얼마나 공허하게 하며, 우리의 붓을 얼마나 누추하게 하는가. '절실'이란 두 자를 알면 생활이요, '진솔'이란 두 자를 알면 글이다. 눈물이 그 속에 있고, 진리가 또한 그 속에 있다. 거짓 없는 눈물과 웃음, 이것이 참다운 인생이다. 인생의 에누리 없는 고백, 이것이 곧 글이다. 정열의 부르짖음도 아니요, 비통의 하소연도 아니요, 정(情)을 모아 기(奇)를 다툼도 아니요, 요(要)에 따라 재(才)를 자랑함도 아니다. 인생의 걸어온 자취 그것이 수필이다. 고갯길을 걸어오던 나그네, 가다가 걸어 온 길을 돌아보며

정수(情愁)에 잠겨도 본다. 무심히 발 앞에 흩어진 인생의 낙수(落穗)를 집어 들고 방향(芳香)을 맡아도 본다. - 윤오영의 '엽차와 인생과 수필'에서 -

 

덧붙이는 글 이 소식은 sbs-u포터에도 소개했습니다. 필자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보람을 느끼는 현직 경찰관이자 수필문학인입니다. 1990년 '한국문학' 지령200호 기념 지상 백일장 장원 당선과 KBS 수필 공모에 당선된 이래 '경찰문화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수필집 '삶을 가슴으로 느끼며', '덕담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우리동네 교장 선생님'. '부자유친', '아들아, 대한민국 아들아' 등을 펴냈으며,  충남경찰문집 기획편집위원을 역임했습니다.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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