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장? 아니 코리아치즈!

배천조씨 종부가 들려주는 설음식의 새로운 변신

등록 2008.02.04 16:50수정 2008.02.0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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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에서 명절증후군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쯤이면 저는 오히려 물 만난 고기가 되죠. 이번 명절엔 어떤 음식들로 종가 어른들을 대접할까 하루 24시간 온통 그 궁리죠. 종가어른들의 입맛은 오랜 세월 종가 전통음식에 단단히 길들여진 이유로 새로운 음식에 많이 인색하신 편이에요. 그런 어른들께 합격점을 받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지요. 그러나 어른들의 그 깐깐한 입맛이 오히려 제겐 훌륭한 자극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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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씨의 요리는 양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양념은 산야초소스에서 시작된다. ⓒ 김정혜

몇 날 며칠 걸려 허리 휘어지게 장만해야 했던 명절음식도 전화 한 통이면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 김현숙씨 같은 사람은 사실 별종(?) 취급받기 딱 좋다.

전 두어 가지, 나물 서너 가지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미달도 한참 함량 미달인 맏며느리인 나로서는 김현숙씨의 설음식 이야기에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 게 사실이다. 

거기다 김현숙씨는 늘 새로움을 모색한다는 특별한 음식철학을 고집한다. 설음식도 마찬가지다. 밑바탕은 철저히 전통음식을 고집한다.

그러나 혀끝이 느끼는 미각은 그때그때 다르다. 어찌 먹으면 옛날 맛 그대로인 것 같고, 어찌 먹으면 생전 처음 맛보는 것 같은 생소함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재료와 양념의 차별, 나아가 그것들의 적절한 조화를 전통음식에 접목시킨다는 것이 김현숙씨의 음식철학이다.


된장, 고추장, 간장은 죄다 몇 년씩 숙성된 채 장독대를 지키고 있다. 마늘, 생강 같은 것들도 항아리에 차곡차곡 재어 숙성시킨 후 그 국물을 사용한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산야초소스이다. 15~20여 종의 온갖 산야초를 항아리에 차곡차곡 재어 숙성시킨 산야초소스는 설탕, 물엿, 식초를 대신할 만큼 새콤달콤한 것이 그냥 들이켜도 보약이다. 

이 모든 기본양념이 적절한 재료와 찰떡궁합을 이루어 새로운 설음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묵은 묵인데 속노랑고구마 묵, 보쌈은 보쌈인데 약선보쌈, 집장은 집장인데 코리아치즈, 족편은 족편인데 박대족편 등 오랜 세월 종가를 지켜온 종가음식이 이렇듯 변화를 꾀했다.

그럼에도 종가어른들로부터 단 한 번의 불호령도 듣지 않았다. 물론 김현숙씨의 손끝에서 나오는 음식 맛이 원체 탁월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모든 음식의 기본은 바로 전통음식에서 뿌리가 뻗어져 나왔다는 것이다.

“시어머님께 오랜 세월 우리 종가에서 전해지는 설음식을 배웠어요. 워낙에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탓에 명절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어요. 70~80명 되는 종가어른들을 대접할 명절음식을 만드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맛있다. 시어머니 못지않게 음식 맛이 좋다’라는 칭찬이라도 한마디 들을라치면, 일년에 명절이 한 너댓 번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 시어머님이 연로하셔서 언젠가부터 제가 명절음식을 도맡아 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제 나름대로 차츰차츰 음식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어요. 재료도 바꿔보고 양념도 바꿔보고…. 그럴 때마다 종가어른들의 불호령이 떨어질까 여간 노심초사한 게 아니었어요.”

종부로 살아온 그 긴 세월 동안 명절은 아직도 김현숙씨를 설레게 한다. 새내기 종부 시절엔 그저 시어머님께 종가음식을 전수받는 것만으로도 뿌듯했고, 요즘엔 그렇게 전수받은 종가음식에 새로운 변신을 시도할 수 있어 명절이 기다려진다는 김현숙씨. 천생종부로 태어난 여자다. 한정식집(古家)을 운영하느라 한 시간을 두 시간으로 나누어 쓸 만큼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명절 음식 준비에 부지런을 떤다.

일요일(3일). 미리 준비해야 될 설음식 몇 가지를 장만한다는 귀띔에 종가 댁을 찾았다. 한정식집 '古家'는 휴일이면 특히 가족 단위 손님이 많다. 손수 손님상을 차려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김현숙씨에게 있어 일요일은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 와중에 설음식까지 꼼꼼하게 준비하는 열성이 가히 놀라웠다. 배천조씨 종가 종부 김현숙씨가 소개하는 배천종가의 설음식 몇 가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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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노랑 구구마 묵 무침이다. 산야초소스의 달콤 새콤한 맛이 묵과 잘 어우러져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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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노랑 고구마 묵. 만드는 과정이다. ⓒ 김정혜


속노랑 고구마 묵이다. 일반적으로 도토리나 메밀을 이용해 묵을 쑤는데 반해 김현숙씨는 인근 강화나 김포에서 주로 생산되는 속노랑 고구마를 이용해 묵을 쑨다. 속노랑 고구마는 소화가 잘 되며 생목이 오르지 않고 특히 변비에 효과적이며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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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선보쌈김치. 우엉,연근,마를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 김정혜


약선보쌈김치다. 주재료로 우엉, 연근, 마 등 뿌리채소를 재료로 쓴 것이 특징이다. 뿌리채소는 공통적으로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칼로리가 낮다. 특히 우엉은 뿌리채소 중 식이섬유가 가장 풍부해 '장청소부'라 불리기도 한다. 우엉에 들어 있는 아르기닌성분은 유아기의 필수 아미노산성분으로 성장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고 철분이 많아 조율작용을 해준다. 또 간의 독소를 제거하여 피를 맑게 해주며 신장기능을 도와 당뇨와 신장병에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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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선보쌈김치의 재료들이다. 우엉, 연근,마를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 김정혜


연근은 열을 내려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진정작용 즉 신경과민이나 스트레스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 또 몸의 독소를 빼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특히 흡연자의 니코틴을 제거 시켜주는 해독작용을 한다. 그리고 고혈압 예방과 콜레스테롤 저하에 효과적이며 치질, 설사, 야뇨증에도 이용된다.

마는 녹말과 당분이 많고 비타민 B, B2, C, 사포닌성분이 함유돼 있다. 특히 마의 점액질에는 소화효소와 단백질의 흡수를 돕는 ‘뮤신’ 성분이 들어 있다. '뮤신'은 사람의 위점막에서 분비되며 이것이 결핍되면 위궤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마를 섭취하게 되면 위궤양 예방 치료와 소화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 이외 자양강장에 특별한 효험이 있고 소화불량이나 당뇨병, 기침, 폐질환 등에도 효과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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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껍질을 이용한 박대족편이다. 쇠족을 이용해 만들던 족편에 쇠족 대신 박대껍질을 쓴 것이 특징이다. ⓒ 김정혜


박대족편이다. 쇠족이 주재료인 족편을 박대를 재료로 해 만든 것이다. 박대는 가자미 목 참서대 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이다. 전라도가 고향인 김현숙씨가 족편에 박대를 이용하게 된 것은 어릴 적 향수 때문이다. 박대는 우리나라 서해에서 많이 잡히는 어종이었으나 불법어업으로 어획량이 현저히 줄어 요즘은 구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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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코리아치즈'. 김현숙씨의 시어머님이 붙여 주신 이름이다. 금방 만든 뜨끈뜨끈한 두부가 주재료이다. 보름 정도 항아리에 숙성시키면 밥도둑이된다는데...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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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치즈' 만드는 과정이다. 항아리에 꼭꼭 눌러 보름정도 숙성시켜 밥에 비벼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는데... ⓒ 김정혜


집장의 새로운 변신인 '코리아치즈'. '코리아치즈'라는 이름은 김현숙씨의 시어머니가 붙였다. 시어머니가 만든 전통집장을 김현숙씨 나름대로 새로이 변화시킨 것이다. 전통집장은 곱게 빻은 메줏가루를 보릿가루, 고춧가루와 함께 찹쌀죽에 섞은 뒤 소금에 절인 야채를 박아 넣고 숙성을 한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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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장과 두부장조림의 주재료인 두부. 산야초소스를 곁들인 양념장에 찍어먹으니 그 맛 또한 일품이다.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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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릇노릇 구운 두부를 짚위에 얹어 말려 두부 장조림을 만든다. ⓒ 김정혜


그런데 김현숙씨는 이 집장을 손수 만든 뜨끈뜨끈한 두부로 만든다. 두부에 메주가루, 고춧가루, 천일염을 잘 섞어 항아리에 꼭꼭 눌러 넣고 보름정도 숙성을 시킨 것이 바로 '코리아치즈'다. 종가어른들도 설이면 이 '코리아치즈'에 밥을 비벼 한 그릇 뚝딱 해치우신단다.
#종가 #종부 #설음식 #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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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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