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평등파는 패배한 것이 아니라, 승리한 것이다!

등록 2008.02.05 10:07수정 2008.02.0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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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3일은 진보세력에게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것이다. 민노당 혁신안이 부결되고,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인 민노당이 분열의 위기를 맞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드디어 한국 진보 세력이 ‘빨갱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역사적 기회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은 소수 특권층이 아니라,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서민들의 이익을 옹호한다.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나라를 꿈꾼다. 보다 많은 평등을 통해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려고 한다. 따라서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진보 정당이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이상한 일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민노당은 2000년 창당 이후 신생 정당으로서는 보기 드문 세력 확장을 보여 왔다. 득표율을 보면 2002년 지방선거 8%에서 출발하여,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3%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민노당 득표율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12%로 꺾기더니, 급기야 2007년 대선에서는 3%로 급락했다.

 

왜 그럴까? 분명 민노당이 등장하면서 어렵고 힘든 삶을 살던 많은 국민들이 서서히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의구심도 싹트고 있었다. 첫 번째 의구심은 과연 이들이 말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두 번째 의구심은 과연 이들이 실제로 자신들을 대변하려는 ‘진정성’을 갖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민노당 의원들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전달되고, 당비로 운영되는 깨끗한 정당의 이미지가 확산되면 민노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은 높아졌다. 그러나 난데없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자고 난리치는 사람들 틈에 민노당의 깃발이 나부낄 때, 각종 시위현장에서 죽봉 든 민노당 당원의 모습이 보도될 때, 급기에 민노당 고위간부가 간첩죄로 구속될 때, 민노당은 더 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라 ‘빨갱이’라는 이미지와 오버랩핑 된다.

 

‘빨갱이’란 누구인가?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를 일으켰고, 세계에 유래가 없는 세습독재체제를 만들었고, 북한 국민을 헐벗고 굶주림에 빠뜨린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이들의 추종자들 아닌가? 이들의 지상목표는 남한이든 북한이든 민중들의 삶을 향상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유지에 있다. 민노당이 이들에게 발목이 잡혀 ‘빨갱이’라는 오명과 누명을 뒤집어쓰고 있다면, 민노당 의원들이 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국민들은 민노당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

 

2008년 2월 3일. 민노당 비대위는 당 혁신안을 제안했다. 친북정당 이미지에서 탈피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결되었다. 이른바 일심회 사건. 민노당 당내 동향과 당직자들의 성향을 북한에 보고했던 사람들이 간첩죄로 구속된 사건이다. 자주파는 이들을 당에서 제명시키자는 비대위 안을 거부했다. 설상가상으로 자주평화통일을 위해 ‘더 친북해야’ 라는 구호마저 등장했다.

 

민노당 고위 간부가 한나라당에 정례적으로 당내 동향을 보고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주파는 이를 제명시키지 않고, 허용할 것인가? 민노당 당원이 정부에 당직자 성향을 보고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주파는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할 것인가?

 

자주파는 자주평화통일을 주장한다. 누가 이를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자주평화통일이 간첩행위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가? 간첩행위는 남북을 이간질할 뿐 평화와 통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자주파는 간첩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명 국가보안법은 악법이다. 무고한 사람들을 친북으로 몰아 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철폐가 간첩을 양성화하기 위한 것인가?

 

자주파는 3%로 지지율로 떨어진 이번 대선을 ‘참패’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단지 ‘실망스런 결과’라는 것이다.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국민의 지지에 별 관심이 없거나.

 

지난 총선까지 민노당을 지지했던 13%의 국민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진정 민노당을 버린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지금 표류하고 있다. 한 때 갈 곳 없어 정치 초년생 문국현 후보에게 6%의 지지율을 안겨주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대변자를 찾고 있다.

 

과연 지금 정치적 대안세력이 있는가? 아니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야당이라도 있는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사람이 제1야당을 준비하고 있지만, 초록은 동색이다. 이념과 정책이 다를 것도 없고, 다만 무능할 뿐이다. 비노 세력, 친노 세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정계를 떠나든지, 아니면 이념도 진보도 포기한 채 정치적 생존에만 매달려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차기 대권을 망상하고 있던가.

 

진보세력은 잃었던 지지율을 회복하고, 무주공산이 된 야권의 대안세력이 되어야 한다. 이제 그 기회가 왔다. 고맙게도 그 동안 발목을 잡았고, 지지율 하락의 근본 원인이었던 자주파가 친북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제 평등파에게 국민을 위한 ‘진정성’을 보여줄 활로를 열어주었다. 평등파는 패배한 것이 아니라, 승리한 것이다. 이제 이 길로 가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문성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2.05 10:0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문성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민노당 #평등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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