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사장 퇴진' 주장하는 KBS노조의 딜레마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정치권력에 KBS 문호 열어줄 수도

등록 2008.02.22 11:57수정 2008.02.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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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이다. 최근 KBS노조(전국언론노조 KBS본부)와 일부 언론의 정연주 사장 퇴진 주장이 그렇다.

 

일부 언론과 KBS노조의 정 사장 퇴진 요구는 사실 '뉴스'가 아니다. 정 사장 퇴진 운동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동아일보를 비롯해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들은 정연주 사장이 취임할 때부터 그의 퇴진을 요구해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인사'와 이념적 편향성 등을 주로 문제삼았다.

 

그러나 정연주 사장이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이들 보수언론을 '조폭언론'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해왔던 것이 그 주된 배경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KBS노조 또한 이미 오래전부터 정연주 사장의 퇴진을 요구해왔다. 2005년 노조사무실 불법녹음 파문 때 노조에서 처음으로 정 사장의 퇴진을 거론했지만, 그 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포함한 경영혁신안에 대한 노사대립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노조는 이후 정 사장 연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틈나는 대로 정 사장의 퇴진을 요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노조와 일부 언론의 정 사장 퇴진 요구가 새삼 '뉴스'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이 정권교체기 때문이다. 새 집권세력의 의중과 맞물리면서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퇴진 논의의 전개 방식이 KBS노조와 보수언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보조를 맞추는 식의 패턴을 보여 더욱 그렇다.

 

정연주 사장 퇴진요구가 '뉴스'가 되는 이유는?

 

KBS노조는 13일자 노보를 통해 정연주 사장의 퇴진을 사실상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실었다. 비교적 조심스런 입장 표명이었지만, 정 사장의 용퇴를 촉구한 글이었다. 노조는 이 글에서 "정권교체기에 KBS 사장의 자질과 거취를 논하는 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사장님의 거취에 관심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 사장의 퇴진운동을 펴거나 할 생각은 없다는 취지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세간의 인심도 정권교체=KBS 사장교체라는 등식을 비교적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적기도 했다.

 

바로 하루 전인 12일 <동아일보>는 'KBS 차기 사장 물밑 경쟁'(손택균 기자) 기사를 실어 바람을 잡았다. "새정부 출범이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KBS 사장 교체 가능성이 방송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으며 새정부가 방송통신위원회 신설이나 국가기간방송법 등 미디어와 관련해 큰 변화를 도모함에 따라 KBS 사장도 바뀌는 게 '순리'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방송계 '분위기'를 전했다. <동아일보>가 바람을 잡고 KBS노보가 그 뒤를 이어간 모양새였다.

 

이번에는 KBS노조의 행보를 <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이 증폭시키는 패턴을 취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 사장의 거취에 관심이 없다고 했던 노조가 19일 중앙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를 갖고 정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 와중에 KBS 내부 게시판에 정연주 사장이 박승규 노조 위원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른바 '비리폭로 협박'을 했다는 내용의 글이 실렸다. KBS 기자협회 운영위원회 명의였다.

 

바람잡는 <동아일보>와 그 뒤를 따르는 KBS 노조

 

<동아일보>가 21일 이를 크게 보도했다. 사설도 실었다. <조선일보>도 사설(KBS 정 사장, 질 때라도 깨끗이 져라)을 싣고 정 사장에게 조용하게 물러날 것을 종용했다. <조선일보>는 특히 이 사설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임기를 지키겠다"는 정 사장의 말을 '어이없는 논리'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그 이유나 근거 역시 "정 사장이 독립성을 말하기엔 원칙적 흠결을 지니고 있다"는 노조의 주장에 기댄 것이다.

 

KBS노조는 자신들의 사장 퇴진 요구와 보수언론의 정연주 사장 퇴진 요구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새정권의 의중과는 더더욱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안팎의 시선과 명분을 의식한 KBS노조의 자기합리화로 치부될 개연성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점에서 정연주 사장의 퇴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정권교체에 따른 중도 사장 교체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 결과 또한 일반적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KBS노조의 이런 입장은 역풍을 맞을 개연성도 적지 않다. 당장 21일 <동아일보> 사설만 하더라도 KBS노조를 '남의 탓만 하는 KBS 부실의 공동 책임자'라고 비난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동아일보> 사설의 이런 지적이야말로 사실은 KBS노조의 현재 위상을 가장 적실하게 지적한 것일 수 있다.

 

KBS노조 역풍 맞을 개연성 높아

 

KBS 내부적으로도 노조의 이런 입장이 과연 얼마나 큰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결의문에서 노조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0% 이상'이 '정 사장에게 KBS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정 사장 퇴진 여부를 물은 문항의 조사 결과는 밝히지 않았다. 비대위원들에게 공개한 바에 따르면 '정 사장이 퇴진해야 한다'는 응답은 '68.5%'였다.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2년전 유사한 조사 때의 83% 때보다는 많이 낮은 수치다. 게다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는 응답은 30%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응답 추이에 비춰본다면 KBS노조가 '역주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방송계 안팎의 시선도 차갑다. KBS노조의 이런 행보는 결국 정치권력에 KBS의 문호를 다시 열어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지적들이 많다. 언론노조 위원장을 지낸 한 언론계 인사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지금은 절제가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KBS노사 "<동아>보도 사실과 다르다"

"KBS를 흠집내기 위한 왜곡기사"

KBS 노사는 20일 각각 성명을 내고 정연주 KBS 사장이 노조가 계속 퇴진압력을 넣을 경우 회사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말했다고 <동아일보>가 21일 보도한 데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강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KBS 경영진은 '경영진 일동' 명의의 성명에서 <동아일보>의 21일자 '"나를 건드리면 KBS 비리 폭로"/정연주 사장 발언 파문' 기사는 사실이 아니며, KBS를 흠집내기 위한 왜곡기사라고 비난했다.

 

경영진 일동 성명은 "지난 1월 22일 저녁 2시간 30분 동안 정연주 사장과 박승규 위원장의 2인 만남에서 회사 전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배석자 없는 노사 대표간 비공식 회동으로 기록으로 남기거나 발표할 내용이 전혀 없었다"면서 "제주송신소 인력문제 등 그밖의 보도된 내용도 사실과 다른 왜곡기사"라고 지적했다.

 

KBS노조 역시 '동아일보는 왜곡 보도를 중단하라'는 성명에서 "동아일보 보도가 KBS 노사간의 갈등 국면을 이용해 공영방송 KBS를 흔들려는 흉악한 시도"라고 비난했다. <동아일보> 기사에 대해 노조성명은 "해당 기자에게 정연주 사장의 발언이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 나온 취중 발언이었고, 거론한 내용도 실제와 다르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사실 관계를 취재하지 않고 기사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그러나 22일 다시 기사("정사장 후안무치…경영 실패 책임묻자")를 싣고, 정사장의 '협박발언' 내용이 알려지면서 KBS 내에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KBS는 21일 경영진 일동 명의로 사내 통신망에 'KBS 비리폭로 기사에 대한 회사 입장'이란 글을 올려 정 사장과 노조간부의 만남은 인정했으나 해당 발언 사실을 부인했다"고 썼다.

 

이어 '정 사장 발언 확산 경위'를 밝히면서 21일자 기사 내용은 KBS기자협회 운영위원회 관계자가 노조 회의에서 들은 내용을 내부 게시판에 올린 '사장퇴진운동'이라는 제목의 문건에 기초해 보도한 것임을 재확인했다.

 

<동아일보>는 21일 '정연주 사장 "나를 건드리면 비리폭로"' 기사에서 "정 사장이 노조 간부와 만난 자리에서 '계속 퇴진 압력을 넣으면 회사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말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KBS기자협회 운영위원회 명의의 내부통신문건을 인용해 "10대 (전임) 노조 때 (2006년 사장 연임 반대를 위해) 철탑에 올라간 사람 등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는데, 11대 노조도 그렇게 하면 법대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정 사장은 그런 비리 사례로 "한 지방 송신소에선 직원 26명 가운데 10명 이상이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지만, 그에 맞는 일은 안 하고 있다"고 말했고, "노조 간부가 이를 공개해도 되느냐고 묻자 사장은 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2008.02.22 11:57 ⓒ 2008 OhmyNews
#KBS노조 #정연주 #노조와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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