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 모여서 ‘시 읽는 잔치’ 꾸리기

[배다리 골목길 이야기 16] 2/23, 김윤식 시인 모시고 네 번째 시잔치

등록 2008.02.23 13:40수정 2008.02.23 13:42
0
원고료로 응원
 
a

시 읽는 잔치 시 읽는 잔치를 열었습니다. 오늘도 엽니다. 지난날, 김학균 님을 모시고 시 읽는 잔치 열었을 때 모습입니다. ⓒ 최종규

▲ 시 읽는 잔치 시 읽는 잔치를 열었습니다. 오늘도 엽니다. 지난날, 김학균 님을 모시고 시 읽는 잔치 열었을 때 모습입니다. ⓒ 최종규
a

시 듣는 사람들 넓지 않으나 좁지도 않은 곳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시를 듣고 함께 읽습니다. ⓒ 최종규

▲ 시 듣는 사람들 넓지 않으나 좁지도 않은 곳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시를 듣고 함께 읽습니다. ⓒ 최종규

 

 

 (1) 새소식

 

 오늘 2008년 2월 23일 토요일 낮 두 시,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에 자리한 〈배다리, 시가 있는 작은 책길〉(아벨전시관 시 다락방)에서 네 번째 ‘시 읽는 잔치’를 엽니다. 오늘 시잔치에는 인천에서 터잡으며 시쓰기와 시나눔을 해 오고 있는 김윤식 시인을 모십니다. 시잔치에는 누구나 함께할 수 있으며, 바라는 분들은 손수 시 한 꼭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시 읽는 시간을 마친 다음에는 시인 아저씨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집니다.

 

 (2) 헌소식

 

 지난 1월 26일 토요일에, 세 번째 시잔치가 열렸습니다. 이날은 김학균 시인을 모시고 시 이야기를 듣고, 시를 함께 읽었습니다. 김학균 시인은 1944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1955년에 인천으로 옮겨온 뒤, 죽 인천에서 지냈습니다. 마흔 해 넘는 세월을 시 하나를 붙안고 살아왔습니다.

 

 〈귀가길〉

 

 나는 지금 옛 대성목재였던 만석동 똥 둥둥 떠 있는 바다 냄새가 이끄는 길을 따라 귀가한다.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 따라 더 이 길이 전당포 가는 길 같다. 무엇을 맡기고 찾아오지 못하는 차압된 치매와 변명으로 얼룩진 아라비아 숫자들이 말문을 잠그게 한다.

 

길을 뒹구는 낙엽들이 말을 하며 눈을 치켜세운다.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하는 내가 떨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살아온 날들의 소인이 찍히고 신용불량의 사건이 고스란히 적힌 독촉장! 차일피일 미루며 갚는다는 결심 한 번 이루지 못한 작심삼일들이 바람에 밀려 저 세상으로 간다.

 

해넘이 하며 보내는 낯뜨거운 기억을 타박타박 걸어가는 보도블록 위 틈 사이 고개 드는 질긴 잡초 무던히 참은 게지. 기쁨 한 톨 없이 슬픔만 보이는 모습 또 밟으며 간다. 또 일어나는 풀, 세상에는 이런 풀 많다고 했다.

 

그러나 나의 귀가길에는 없다. 희망의 풀커녕 지랄도 없다. (2006)

 

a

사진 찍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시인이 시를 읽고, 할아버지 한 분은 뒤에서 디지털사진기로 사진을 담고. ⓒ 최종규

▲ 사진 찍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시인이 시를 읽고, 할아버지 한 분은 뒤에서 디지털사진기로 사진을 담고. ⓒ 최종규

 

 시 〈귀가길〉을 읽은 뒤 김학균 시인이 몇 가지 생각을 들려줍니다. 이 시를 지을 때 느낌이면서, 시를 써온 마흔 해 남짓 한 세월 품어 온 느낌이라고 합니다.

 

“천석꾼에게는 천 가지 걱정이 있고, 만석꾼에게는 만 가지 걱정이 있어요. 시 하나 쓰고 사는 것은 찬란한 극빈입니다. 걱정은 딱 한 가지예요. 내일 어떻게 사느냐로 걱정 하나만 하는데, 정말 행복하지 않습니까.”

 

 이번에 새 정부 장관이 된다는 분들 재산 평균이 40억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이분들 재산에서 맞돈 말고도 아파트며 땅이며 골프회원권이며 모두모두 더한다면, 앞으로 벌어들일 새로운 돈을 헤아린다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돈일까요.

 

이분들은 무슨 일을 하셨기에 이다지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까요. 문화부장관 내정자인 유 아무개 님은 “내 재산 많다고들 하는데 배용준 봐라” 하고 말씀하는데, 유 아무개 님이 보아야 할 사람은 배용준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라든지 설 땅이 없어서 실업자로 지낼밖에 없는 장애인이라든지, 저잣거리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들이 아닐는지.

 

 그런데 이렇게 많이 벌어들인 돈을 왜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들 있으신지. 벌 줄은 알아도 쓸 줄은 모르셨을까요. 자기 재산으로 삼을 줄은 알면서도, 이웃과 나눌 줄은 모르셨을까요.

 

a

이야기 들려주기 시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인천 이야기, 세상 이야기 들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 최종규

▲ 이야기 들려주기 시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인천 이야기, 세상 이야기 들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 최종규

 〈폭염〉

 

 어린 아기가

 맨발로 마당을 아장거린다

 열 개의 지구덩어리를

 발가락에 매단 아기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안으로 손을 쑤-욱 집어넣은

 어린 아기가

 씨뻘겋게 달궈진

 내 심장을 꺼내들고

 이글이글 웃고 있다.

 

 아주머니가 시 하나 읽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따라서 온 어린이가 시 하나 읽습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도 시 하나 읽습니다. 젊은 아가씨도 시 하나 읽습니다.

 

어느덧 할아버지가 된 시인 김학균 님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 한 자락 풀어놓습니다.

 

“서울에 있는 사람이 뭐 대단해요? 인천이 뭐 주변부예요? … 더 잘살게 해 주는 건 감언이설이라고 봐 … 서울에 청계천을 살리는데, 왜 인천 동구에서 수문통을 복원을 못해? 정화시설만 갖춰 주면 망둥이도 잡을 수 있을 텐데 … 생활사에 대한 역사는 정말 우리 것이 진짜거든요.”

 

이번에는 김학균 시인이 당신 입으로 당신 시를 읽습니다. “이 시는 제가 읽겠습니다. 걷다마는 흐르고 있다. 말 그대로입니다. 걷고 있습니다만은 흐르고 있습니다.”

 

 〈걷다마는 흐르고 있다〉

 

 그저 생각도 없이 걸었습니다 뼈마디 쑤시는 보도블록을 밟으며 길 따라 간판 따라 전신주 한 칸 앞서가던 바람 돌아보며 푸른 신호등처럼 채근했지만 축축하게 윤기나는 지렁이 보느라 길섶 강아지풀 어르느라 아장장 걸었습니다

 

그 옛날 장터의 흥정소리, 팔려가는 강아지 우는 소리, 수수빗자루 마당 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크나 작으나 엄마 찾는 소들의 행렬도 보았습니다 땅속에서 올라오는 율려의 소리가 심장 박동으로 들리는 순간 물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다리를 넘어 배까지 그래도 그저 그렇게 걸었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2007)

 

 낱말 하나하나 꼭꼭 씹어서 먹듯이 야무지게 시 하나 읽은 뒤 말합니다.

 

 “(인천) 송도, 청라에 불도저 갖다 놓고 쏟아붓는다고 해도 거긴 역사성이 하나도 없어요. 바람만 있을 뿐이지. 역사가 아니고 바람이에요. 삶이 아니라 돈이에요 … 한양서 오는 사람들은 알렌 별장(지금 이 자리에는 교회가 들어서 있습니다) 보면서 후유 다 왔구나 했고, 한양 가는 사람들은 알렌 별장 보면서 언제 가나 했던 길이, 바로 여기 우각길입니다.

 

여기가 바로 역사가 살아 있는 길입니다 … 지주의 아이들은 (식민지 때) 쌀이 아닌 보리를 먹었겠지만, 그것도 아닌 서민들은 뭘 먹었느냐는 겁니다. 꿀꿀이죽이라도 먹죠. 그걸 한 주먹이라도 먹는데, 먹으면 하루라도 삶이 연장된다는 거지. 쇼빵(식빵) 깨진 거, 찌끄레기, 그리고 또 뭐, 풀뿌리, 부끄럽지만 수탈의 문화, 비극의 문화가 다 역사라는 거거든요. 우리는 그렇게 살면서 버텼어요.”

 

a

시 읽기 앞에서 한 분이 시를 읽으면, 자리에 앉은 분들은 속으로 시를 함께 읊습니다. ⓒ 최종규

▲ 시 읽기 앞에서 한 분이 시를 읽으면, 자리에 앉은 분들은 속으로 시를 함께 읊습니다. ⓒ 최종규

 역사책에는 적히지 않는 서민들 삶입니다. 임금님 수라상은 ‘역사 고증을 거쳐 복원’이 되지만, 서민들 밥상은 어느 한 번도 ‘역사 고증’을 받은 적도 없고 ‘복원’된 적도 없습니다.

 

 지난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시골 풀집(초가)은 “가난한 사람 상징”이 되어서 죄 없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시골 풀집은, 자연에서 얻은 집감(집짓는 재료)였으며, 썩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사람과 땅을 살리는 거름이 되었습니다. 쓰레기 하나 나오지 않는 ‘100% 옹근 자연사랑 삶’이었어요.

 

그렇지만 이런 서민들 삶, 보통사람들 삶, 가장 밑바닥에 있던 사람들 삶은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또한 문화나 즐거움이나 너그러움이나 넉넉함으로 살펴지지 않고, 오로지 ‘돈이 얼마나 있고 없고’에 따라서만 살펴졌습니다.

 

그래도 우리들 서민이자 보통사람이자 밑바닥 사람들은 도시 한귀퉁이에 작달막한 판자집 하나 마련했고, 이 판자집은 지난날 풀집 문화를 이어서 도시 문화와 도시 역사와 도시 사회를 이루어냅니다. 그리고 우리들 서민 삶터는 ‘돈을 더 많이 벌어들여야 한다는 재개발 경제 논리’에 짓눌리고 치이고 밀려나면서 사라져야 할 판입니다.

 

 〈전어구이〉

 

 너 굽는 냄새 때문에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다고 호언장담했지

 

 ‘그리고’라는 말을 할 때 멋쩍음

 ‘그러므로’라는 말의 허망함

 ‘그러나’라는 말을 할 때의 죄책감

 

 그래 네 몸 태우며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오게 해 보렴

 

a

시가 있는 다락방 여느 때에는 시 전시터이자 시쉼터로, 한 달에 한 번씩은 시 읽는 마당으로 바뀌는 곳입니다. ⓒ 최종규

▲ 시가 있는 다락방 여느 때에는 시 전시터이자 시쉼터로, 한 달에 한 번씩은 시 읽는 마당으로 바뀌는 곳입니다. ⓒ 최종규

 

 시를 다 읽고 시인 이야기도 다 듣고 난 다음,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손을 들고 일어나서, “저요, 저 한 마디 해도 될까요?” 하고 묻습니다. 아하, 박태순 아주머니네요. 우리 이웃에 사는 ‘박 의상실’ 아주머니. 암에 걸려 당신 가게 일을 못하고 거의 죽을 동 살 동 하다가 기적처럼 살아나서 ‘한 번 더 주어진 삶’을 보낼 수 있다며 날마다 웃으며 다니는 아주머니.

 

“저는요, 세 살 때 경기도 화성에서 인천으로 와서, 중구에서 예닐곱 해를 살고, 동구 창영동 여기로 와서 죽 살았어요. 저는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폭염〉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마음이, 마음에서 뭔가 울리는 것 같은 걸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밑바탕에 깔려 있구나 느끼고요.

 

그런데, 그런데요, 김학균 선생님 같은 분들이 조금만 더 마음을 이쪽(배다리)에 쏟아 주셔서, 과연 배다리가 어떤 모습으로 되면 좋겠는지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서울 인사동이라는 곳을, 이만큼(나이 예순 가까이) 살면서 처음 갔어요. 지난해에. 인천에도 이런 곳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내는 배다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배다리가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a

시인 자리 시인이 앉는 자리입니다. ⓒ 최종규

▲ 시인 자리 시인이 앉는 자리입니다. ⓒ 최종규

 박태순 아주머니는, 이 동네 하유자 아주머니와 함께, ‘인천시가 동네를 꿰뚫는 산업도로 본질’을 처음으로 깨닫고, 이 문제를 이웃사람들한테 알리며 ‘잘못된 도로 정책은 백지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첫 번째 사람입니다.

 

벌써 세 해째, 이 잘못된 도로 정책을 반대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쓰면서 많이 힘들어하고 버거워합니다. 늘 낮은 자리에 있는 아주머니 한 사람 힘으로는, 목소리로는, 시청 직원실에도, 종합건설본부 사무실 전화통에도, 신문사 편집국 책상머리에도 가 닿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꼿꼿이 싸우고 부딪히고 함께하면서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시인은 ‘천석꾼 만석꾼처럼 움켜쥐고 사는 것이 없어 걱정도 없다’지만, 시잔치 주인공이 된 김학균 님도 어쩔 수 없이 걱정 한 가지를 늘려야 할 테지요. 시쓰기 걱정 하나에,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동네를 지키는 데에 뜻을 모을 걱정 하나.

 

 “자연이 순환하는 것을 보아야 하는데. 나뭇잎 흔들리는 것 감출 것 없고 저항하고….” 시인 할아버지는 몇 마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그러고 보니, 바야흐로 봄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3) 다음 소식

 

 다가오는 2008년 3월 넷째 주 토요일 낮 두 시에는, 다섯 번째 시잔치 주인공으로 이가림 님을 모십니다.

 

a

시잔치 모습 1 시잔치 모습 ⓒ 최종규

▲ 시잔치 모습 1 시잔치 모습 ⓒ 최종규

 

a

소아과 의사선생님 인천 배다리에 1947년부터 소아과를 열어 병원을 꾸려 온 김관철 의사선생님입니다. 병원을 꾸리는 한편, 지역 문화와 사회 가꾸는 일에도 오래도록 한손을 거들며 힘써 오신 분입니다. ⓒ 최종규

▲ 소아과 의사선생님 인천 배다리에 1947년부터 소아과를 열어 병원을 꾸려 온 김관철 의사선생님입니다. 병원을 꾸리는 한편, 지역 문화와 사회 가꾸는 일에도 오래도록 한손을 거들며 힘써 오신 분입니다. ⓒ 최종규
 
a

시잔치 모습 2 인천 작가회의 회원 분들도 함께 앉아서 시를 듣고 읽습니다. ⓒ 최종규

▲ 시잔치 모습 2 인천 작가회의 회원 분들도 함께 앉아서 시를 듣고 읽습니다. ⓒ 최종규
a

시잔치 모습 3 시읽기와 이야기나눔을 마친 뒤, 단출한 먹을거리를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사진에 나온 아주머님은, 이곳 시 다락방을 열어 놓은 헌책방 아주머니) ⓒ 최종규

▲ 시잔치 모습 3 시읽기와 이야기나눔을 마친 뒤, 단출한 먹을거리를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사진에 나온 아주머님은, 이곳 시 다락방을 열어 놓은 헌책방 아주머니) ⓒ 최종규
a

네 번째 시잔치를 기다리며 오늘 열릴 네 번째 시잔치를 기다립니다. 이제부터 한 사람 두 사람 이곳을 찾아와서 빈 자리를 채워 주겠지요. ⓒ 최종규

▲ 네 번째 시잔치를 기다리며 오늘 열릴 네 번째 시잔치를 기다립니다. 이제부터 한 사람 두 사람 이곳을 찾아와서 빈 자리를 채워 주겠지요.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인터넷방 으로 들어가시면 "시 다락방" 소식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2008.02.23 13:40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으로 들어가시면 "시 다락방" 소식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시잔치 #인천 #배다리 #산업도로 #김학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자식 '신불자' 만드는 부모들... "집 나올 때 인감과 통장 챙겼다"
  2. 2 10년 만에 8개 발전소... 1115명이 돈도 안 받고 만든 기적
  3. 3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4. 4 어떤 고위 공직자에게 하고 싶은 말 "ㄱㅈㄱ ㅅㅅㅇ ㅈㅋㅈ"
  5. 5 윤석열 정부, 가나 빚 상환유예... 가나 전 대통령 '땡큐'
연도별 콘텐츠 보기